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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_제2부 시대의 등불들_조성기 저

 

 

 

이번 2권에서는 조삼모사 이야기와 맹자 어머니의 일화, 그리고 막강한 권세와 세도를 부리던 상앙의 마지막이 눈길을 끈다. 사실 상앙은 초기 진나라가 후에 강대해질 수 있었던 근본을 마련했던 인물인데, 역시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_15p

 

송나라 저공이 원숭이를 키웠으나 갈수록 사정이 여의치 않아 원숭이들에게 하루에 밤 일곱 개만 주기로 하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아침에 밤 3개, 저녁에 밤 4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성을 냈다. 그러자 다시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모두 순순히 엎드리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어차피 똑같은 내용을 이리저리 앞뒤 순서 바꿔서 민중을 울리고 웃기며 희롱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이는 권력자가 백성을 희롱하는 것도, 악법도 고친다고 했다가 뒤로는 더한 부정부패 저지르고, 공장 주인과 백성도 해당한다. 임금이 올라도 뒤로는 물가상승, 보너스 반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꿈 이야기_19p

마을의 누가 열자를 찾아 꿈 해몽을 부탁했다. 열자(열어구) 왈 꿈은 정신과의 교접으로 이뤄지는 법이라고 했다. 꿈은 반대가 되어야 정신건강에 좋다. 실제 주인이라면 꿈에는 노비로, 부자라면 빈자로. 반대로 말하면 노비가 꿈에는 주인으로, 빈자라면 부자로 꿈을 꾸는 것이 정상. 때렸으면 맞고, 맞았으면 때리는 꿈이 정상이다.

 

인생의 앞날은 모르는 게 약_34p

 

하루는 양주가 시장에 나가 곡식을 얼마 사오는 데 길을 가던 사람이 모두 골목길로 숨어들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아니 웬일들이오"

"당신도 빨리 숨는 게 나을 거요."

"저 사람이 누구요?"

"계함이라는 무당이오. 사람둘의 운명을 마치는 데 귀신이오.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 화를 당하고 복되는 것, 일찍 죽고 오래사는 것, 이런 길흉화복을 몇년 몇월 몇순 며칠까지도 정확히 맞히지요."

"그런데 왜 숨는 거요? 오히려 저 사람을 만나는 게 행운 아니오?"

"저 무당은 사람들을 만나면 죽는 날짜를 알려주니 그렇지요. 죽는 날짜를 받은 사람은 모두 그날 죽었어요. 사람이 자기 죽는 날을 알고는 사는 재미가 뭐 있겠어요? 언제 죽을지를 몰라야 영원히 사는 것처럼 활보하며 살 게 아니오?"

충분히 일리 있는 말. 인생은 모르는 게 약이다. 드라마도, 영화도 결말을 알고 있으면 재미가 반감되듯이.

 

 

운명은 자기가 개척하는 것, 얽매이지 말자_38p

양주가 그런 계함을 스승인 열자에게 소개했고, 열자는 양주를 볼 때마다 얼굴을 바꾸며 그의 점을 망가뜨렸다. 결국 계함이 도망가고 열자가 양주에게 말했다.

"계함의 도가 이제 어떤 것인지 알겠느냐? 그는 사람들의 관상을 보고 그 상을 규정지음으로써 상대방의 운명을 결정 짓는 거지. 그래 심기가 약한 대중은 그의 예언의 올가마에 매여 계함이 말한 대로 인생을 살고 마는 거지. 난 관상을 보며 사람의 운명을 예언하는 따위의 짓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남의 말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 직접 보고 판단하라_62p

어느 날 열자(열어구)의 집으로 관리 한 사람이 들렀다. 양주는 관리에게 열자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 관리는 돌아가 정나라 임금 자양에게 열자의 사정을 고하고 곡식을 열자에게 보내도록 했다. 마당에 나와 두 번 절한 열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곡식을 도로 갖고 가십시오. 내가 절한 것은 간곡히 사양한다는 뜻입니다."

관리가 곡식을 마지못해 거두어 간 후 양주가 물었다.

"임금이 내린 곡식인데 왜 돌려보내나요?"

"이 곡식은 임금 스스로 나를 알아보고 보내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보내주었으니, 나중에 남의 말을 듣고 내게 벌을 내릴지 모르잖아."

얼마 후 임금 자양은 다른 사람의 말에 우왕좌왕 실정을 범하면서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뒤이어 임금이 된 자는 자양의 은혜를 받았던 자들을 일일이 찾아내 처단했는데, 열자는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맹자의 어머니_75p

맹자의 이름은 가(軻)였고, 자는 자여(子輿)였다. 맹자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이씨와 함께 추나라로 옮겨갔다. 처음 어머니 이씨는 묘지 근처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 그런데 맹가는 늘 구덩이를 파고 발로 밝아 다지며, 굿일 흉내내기도 좋아했다. 곡하는 소리를 흉내내기도 했다. 이후 이씨는 아이들이 자랄 곳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한 뒤, 집을 시장께로 옮겼다.

여기서 맹가는 장사 놀이를 주로 하며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고, 물건 값을 훤하게 외면서도 막상 외워야 할 문장들은 소홀히 했다. 어머니 이씨는 다시 집을 옮겨 학사 근방에서 살게 됐다. 여기서 맹가는 제사 지내는 놀이를 하고, 읍양진퇴의 예절놀이를 하며 놀았다. 이 이야기는 한나라 유향이 쓴 <열녀전>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나부터 예를 다하여라_76p

맹자가 성인이 된 후 아내 전씨를 맞았다. 하루는 전씨가 방 안에 혼자 있으면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있었다. 마침 외출을 마친 맹자가 아내의 방자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봤다 전씨는 남편이 들어오자 자세를 고쳤지만 맹자는 아내를 용서할 수가 없어 어머니 이씨에게 말했다.

"아내가 가랑이를 쩍 벌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의 무례함을 용납할 수가 없으니 내쫓기를 간청합니다."

"전씨가 그런 자세로 앉아 있는 걸 어떻게 보았느냐"

"제가 방으로 들어서면서 봤습니다."

"네가 방으로 들어설 때 인기척을 내었느냐?"

"아내의 방인지라 그냥 들어섰습니다."

"<예(禮)>에 보면 군자는 방으로 들어설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되어 있느냐?"

"네... 장차 문에 들어가려 하는 자는 누가 안에 있는가를 물어야 하며, 장차 당에 오르려 할 때는 소리를 반드시 높여야 하며, 장차 방에 들어갈 때는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아야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잘 외긴 외는군. 너는 아내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소리도 내지 않고 들어갔으므로 아내가 너를 맞이할 준비도 못하게 했구나. 무례한 것은 너지, 너의 아내가 아니니라."

 

 

진(秦)나라가 목공 이후 계속 뻗어나가지 못한 이유_81p

진(秦)나라가 목공 이후 계속 뻗어나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묵공이 죽을 때 수백 명의 명신들이 함께 순사하여 무덤에 묻혔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C 380년경 헌공이 진나라에서 순사제도를 폐지하고나서부터 다시 강성해지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에는 쉽지 않다.

당초 진나라가 강성해진 이유 중 하나로 서융 정복을 통한 서아시아 지역과의 교류를 꼽을 수 있다. 진나라는 중원의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서아시아와 교통하며 진보된 문화를 받아들이고 갖가지 진귀한 물건을 수입해 중원제국에 전매함으로써 막대한 이익도 챙겼다.

 

강력한 법 위에 국가 기틀 마련한 공손앙_93p

진나라 공손앙(상앙)은 효공을 무턱대고 만나기 전에 진니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민심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진나라는 비옥한 토지보다 인구가 적었고, 봉건 귀족의 막대한 토지 소유, 법률의 불공정 시행, 대가족제도의 방만, 지나친 예의범절, 봉건 귀족들의 요직 차지, 불공정한 논공행상, 병역제도, 세금징수 방법, 행정구혁 개편, 도량형 통일 등을 개혁 대상으로 꼽았다. 그러고선 효공을 세 번 알현 후 마침내 재상에 올라 개혁을 추진했다.

 

공손앙의 삼장지목의 의미_98p

공손앙은 국가의 법과 신뢰의 원칙을 바로 세워주고 백성들로부터 믿음을 받기 위해 삼장지목(三丈之木: 전국시대 상앙이 법의 신뢰 성과 원칙을 보여주기 위해 세워두었다는 나무 막대기)을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막대한 상금을 주도록 했고, 결국 이를 시작으로 진나라는 국가에 신뢰를 보여주고, 법이 바로 서게 된다.

 

법으로만 다스리는 폐단이 이렇게 클 줄이야_309p

재상에 오른 후 10여년 간 권세를 누리며 세도를 부리던 상앙도, 결국 자신을 뒷받침하던 효공이 죽고 태자(혜문왕)가 임금에 오르자 정적들에 둘러싸이게 됐다. 그리고 혜문왕은 태자 시절부터 상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비행으로 인해 그의 사부인 공자건의 이마에 묵형을 가하고, 나중에는 코까지 벳기 때문이다.

결국 상앙은 공자건의 모함과 혜문왕의 미움으로 인해 결국 퇴임을 하고 도망하게 된다. 그러다 함곡관 부근의 한 여관에 투숙하려 하지만, 여관 주인은 당시 신분증인 <조신첩>을 요구하며 재워주지 않는다. 그 법도 상앙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결국 밤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던 상앙은 이렇게 절규했다.

내가 만든 법에 내가 걸려들었구나. 법으로만 다스리는 폐단이 이렇게 심할 줄이야.

결국 위나라로 망명하러던 그의 뜻도 잘 이뤄지지 않은채 마침내 진나라에 잡히게 되고, 차열형에 처해지며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직간하는 이의 말을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_313p

상앙이 재상 시절, 조량을 만나게 된다. 조량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천 장의 양피는 한 조각의 여우 겨드랑이 가죽만 못합니다. 일천 사람이 "네, 그렇습니다."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선비가 "아닙니다."하고 직간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입니다. 무왕은 직간하는 신하들의 말을 들음으로써 창성했고, 은주는 신하들이 바른 말을 하지 않고, 침묵했기에 멸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