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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 전투 전5권_시바 료타로

 

 

분명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이 이길 수 있는 전투였다. 세력(서군 10만, 동군 7만 5,000)으로 보나 진영(이미 이에야스보다 일찍 세키가하라에 도착해 평원 등지 움푹 솟은 산 등지에 먼저 똬리를 틀었다. 그리고 계곡과 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이에야스 진영은 분명 앞뒤로 포위된 진영이었다. 그런데, 전투도 인생처럼 모르는 것이었다. 허망하게 서군이 동군에 져버렸던 것.

 

세키가하라전투 마지막 5권에 삽입된 세키가하라 전투 후 다이묘 영지 변화(청어람미디어) 

 

 

세력으로 보면 서군이 동군보다 앞섰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서군 3만에 동군 10만이 싸웠다고 봐야 한다. 이유는, 전투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에야스가 풀어뒀던 독이 서서히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즉, 서군 측에서 배신자가 쏟아져 나왔다. 그 배신이라고 하면, 꼭 아군을 향해 칼을 들이대는 것만이 아닌, 방관이나 줄행랑도 포함하고 있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키가하라 전투 상황1(유튜브)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키가하라 전투 상황2(NHK)

 

 

사실 미츠나리는 전형적인 관료적인 관념의 인간으로 오직 도요토미 가를 위해서 칼을 든다고 하지만, 그 스스로 너무 많은 적을 이미 내부에서부터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츠나리는 오래 전부터 도요토미의 눈에 들어 관료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계산에 밝았고, 결벽증에 부정을 격할 정도로 싫어했다. 그리고 고지식할 정도로 정치적인 눈치가 전무했으며 기존 다이묘를 이에야스처럼 구슬리는, 입 바른 말로 타이르는 방법도 몰랐다. 직설적이었고, 편협했다. 그런 행동이 도요토미 사후 다이묘들에게 오만방자함과 무례함, 건방짐으로 미움을 샀고, 이것이 나중에 세키가하라에서 그대로 감정으로 표출된다.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동/서 다이묘(청어람미디어)

 

대표적인 인물이 가토 기요마사. 그는 직접 자신의 영지에서 오랜 시간을 떠나 있으면서 침략전쟁에 앞장섰지만 정작 히데요시는 그의 전적을 거의 무시하다시피하고 부정적인 행태만 지적한다. 이것을 미츠나리가 히데요시에게 제대로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오해, 혹은 사실에서 비롯되며 불만의 씨앗으로 작용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미츠나리와 친했던 다이묘들은 모두 봉작을 받거나 성과에 대해 치하를 받았는데 이것이 미츠나리가 대부분의 다이묘의 눈밖에 나는 원인이 된다. 또 속과 달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도 한몫한다.

 

이에야스도 오래 전부터 일본 천하를 지배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획해 왔다. 히데요시의 유언 중 하나였던 인근 다이묘와의 겹사돈을 하지 말라는 명을 깨고 지속적으로 혼담을 이뤄가며 미츠나리를 조금씩 자극했다. 그럼으로써 도요토미가를 둘로 쪼갤 계획을 하고 있던 것. 또한 사전에 미츠나리에 대한 반감이 있는 다이묘나 장수를 편들어 지원하고 선심을 베풀며 마음을 꾸준히 사로잡는다.

 

이렇게 이에야스 진영은 그를 중심으로 가신들이 하나 둘씩 뭉치는 반면, 미츠나리 진영은 모리 진영의 깃카와 히로이에처럼 단순히 이해타산으로 주판알을 튕기며 붙은 이가 많았고, 나아가 사태를 관망해 유리한 진영에 붙고자 하는 이도 많았다. 단순히 배신의 아이콘인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뿐 아니라(사실 히데아키도 미츠나리가 중간에서 히데요시에게 농간해 봉작을 깎이고, 양자에서 파양 당하는 등 온갖 문초를 겪은 뒤라 미츠나리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아치스카 이에마사, 와키자카 야스하루, 조소카베 모리치카, 시마즈 뉴도 등도 여기에 해당했다.

 

책에서 시바 료타로는 미츠나리의 가신인 시마 사콘의 말을 빌려 그를 빗대 "이래도 저래도 손해보는 스타일"이라며 "그냥 밉상에 샌님 스타일로 고생 깨나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대로 된 농담 하나도 못하니 말이다.

 

참, 배신에 대해서는 5권에 모리 데로모토의 생각을 전달한 저자의 이야기를 잠깐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나도 이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다.

 

깃카와 히로이에는(서군, 모리 데루모토 진영 소 다이묘) 어디까지나 이에야스에게 자신의 운명을 걸고 있었다. 이에야스 말고는 다음 세상을 짊어질 자가 없는 것이다. 과연 지금 이 산을 달려 내려가 이에야스의 배후를 친다면, 서군이 이길 것이 분명했고 자기의 본가 당주인 모리 데루모토가 천하를 차지할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데루모토는 평범한 자였다. 그 때문에 천하가 어려지고 겐키, 덴쇼의 할거 시대가 다시 시작되어 결국 테루모토는 누군가에게 살해되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에야스로 하여금 이기게 한다면 전후 60여주 제후들은 모두 활을 내려넣고 귀순할 것이고, 천하는 혼란 없이 수습된다. 이러한 이에야스에게 지금 덕을 쌓아두면 모리 가는 평안할 것이라는 게 히로이에의 관측이자 태도였다. (중략) 히로이에는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키가하라 전투 상황 및 연보

 

결국 서기 1600년 10월 21일(음력 9월 15일)이에야스와 미츠나리와 세키가하라에서 맞붙은 두 진영. 배신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미츠나리는 거의 전쟁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에야스의 교활한 너구리(?)같은 성격도 이 책에서 조금씩 묘사된다. 그러나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이에야스의 너구리같은 표현은, 오히려 이 책을 보고 나서 설명하자면 너무 약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현대인은 더 많은 계산과 배신, 신의 등을 표현하지 않나 말이다. 철저한 정치적 감각과 계산에 천하를 잡으려는 이 정도의 권모술수에 굳이 너구리라는 수식어를 후대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악한 이미지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 이시다 미츠나리와 고니시 유키나가 등은 각각 체포되어 참수당한다. 그리고 이에야스와 도요토미가의 오사카 여름 전쟁과 겨울 전쟁이 끝나고 결국 도요토미가는 멸문당하게 된다. 요상한 것이 세키가하라 전투 때 이에야스 편이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여기서는 도요토미의 편을 들었고, 서군이었던 우에스기 카케카츠(나오에 카네츠구 등)가 이에야스 편이 되어 전투를 벌인다는 점이다. 이 얘기는 이 책에는 없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있다.

 

항간에는 이 <세키가하라 전투> 책을 미츠나리를 찬양하고 이에야스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하는데, 내가 읽어보니 꼭 그렇지 만은 않은 듯하다. 여기서도 미츠나리의 그러한 답답하고 편협함을 책 1권에서 5권 내내 다양한 시각과 시선으로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이에야스에 대한 표현을 담대하고 얌전하게 표현했다고 할까.

 

그러고보면 이에야스는 옛날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오다 노부타가에 오랜 시절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눈치 밥을 먹고, 자신의 야심을 잘 드러내지 않고 야금야금 땅을 따먹는 성격을 지녔다. 그리고 한 번 겪은 것은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습성 또한 뛰어났다. 한 마디로 잘 배우는 인간상이다. 교훈도 잘 살리고, 옛날 유일한 패배였던 다케다 신켄과의 마가타가하라 전투에서 똥을 지릴 정도로 놀란 뒤에, 다케다 신켄의 전술과 오다 노부나가의 전략(첩보, 배신 등) 등을 적절히 잘 사용한 것이 이 책은 물론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 250년이라는 에도 막부가 열리면서 평화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만약 히데요시나 노부나가가 정권을 계속 잡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싶기도 하다. 전쟁이 끝이 없고, 결국 황폐한 응보가 오지 않았을까. 

 

미야시타 히데키의 센고쿠

 

미야시타 히데키의 센고쿠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세키가하라 전투에 서군 진영으로 참여했던 미야모토 무사시도 아주 잠깐 등장하고(한 줄?), 센코쿠 히데히사(미야시타 히데키가 그렸던 동명의 만화 제목)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센고쿠는 일본 현지에서 3부작으로 출시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부에서 멈췄다고 한다.

 

또 NHK 드라마 천지인(2009년 1월 4일부터 11월 22일까지 방영)의 주인공 나오에 카네츠쿠도 나온다. 투구 마에다테를 사랑 '애'로 표현한 특이한 장수다. 특히 그는 우에스기 카케카츠의 오랜 신의로 무장한 가신으로서 세키가하라 전투 전에 이에야스에게 '나오에 장'이라고 일컫는 편지를 전해 이에야스를 노하게 한 바 있다.

 

세키가하라 영화 트레일러(유튜브)

 

 

현재 일본에서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세키가하라> 영화가 한창 개봉 중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개봉이 어려울 듯하다. 나중에 보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재미보다는 다양한 시각에서, 인간의 철학에서, 현세를 살아가는 방법론에서 접근해보면 흥미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