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ing Man

로마인 이야기4_율리우스 카이사르 (상)_시오노 나나미 저

율리우스 카이사르. 미국식 발음으로는 시저. 실제로 미드 로마를 보면 '시저'라고 발음한다. 유명한 키케로는 '시저로'라고 발음하고. 이원복 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케사르로도 발음하던데.

그건 그렇고, 실제 이 책을 읽어보면 카이사르에 대한 일화가 많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가 직접 전쟁터에서 써내려간 <갈리아 전쟁기>가 언급이 되고, 미드 로마의 시작 부분인 '루비콘' 강을 건너는 부분까지가 <로마인 이야기4>편이다. 실제 미드 로마를 보고 나서, 틈틈이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 전쟁사/문명사/세계사>(진행 장웅, 허진모)의 '서양전쟁사편' 72화부터 함께 들으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다.

 

 

위에 사진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원로원 주도의 공화정을 마감하고 제정의 로마를 이룩하는 데 밑거름을 조성한다. 실제 그는 개혁이라는 화두를 이루기 위해 원로원 등 많은 정적을 상대하면서도 민중과 자기 군사를 위한 다양한 복지 및 정책을 실시한다. 그는 권력 유지와 창출을 위해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와 삼두정치를 실현하고 집정관 임기(원래는 1년)와 총독 임기를 연장하고, 독재관이 되기도 하며, 결국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을 적으로 두고 한 바탕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한마디로 공화정, 민주정을 그의 손으로 입맛대로(?) 바꿔가는 것을 보며, 내심 속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이래서는 쓰나'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민중을 위한 로마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반대를 무릎쓰고 청사진을 그려나가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라는 것, 정답은 없으면서도 정말 어려운 삶의 궤인 듯하다.

그래도 카이사르는 민중과 자신을 위해 힘을 썼던 부하를 위해 최대한의 성의를 베풀었으며, 군략가 답게 훌륭한 장군으로서의 면모도 보이고, 포로로 잡힌 상대군이나 속주, 동맹군에게도 마치 제갈량의 칠종칠금을 떠올리게 하는 관용을 수없이 베푼다. 그래서 결국 원로원에서 폼페이우스 동상 밑에서 브루투스를 비롯한 정적들에게 무려 23군데를 찔려 숨을 거두는 비운의 사나이기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역사가들과 세간의 평가를 보면 카이사르를 야심에 찬 독재자나 부정적인 평보다는 좀 더 건설적이고, 자도자로서의 자질을 훌륭하게 보여준 인물, 훌륭한 문장가이자 표현가, 군략의 천재 등 더 폭넓은 해석과 호칭이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그는 실제로 빚이 많은 사나이였다. 돈을 내돈, 네돈으로 구분하지않고, 말 그대로 돈 하나로 봤다. 빚쟁이들이 우글우글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다. 빚쟁이들은 돈을 받기 위해 그가 파산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또, 크라수스라는 이에게 빌렸던 막대한 빚은 흉이 아니라 하나의 신용이 된다. 그의 목숨을 빚쟁이들이 보호하는(돈을 받아야 하니까)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한번은 그가 로도스 섬으로 유학길에 오르다 해적에 납치된다. 해적은 그의 몸값으로 20탈렌트를 요구한다. 당시 20탈렌트는 군사 4300여명을 1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거금. 그런데 카이사르는 자기 몸값이 턱없이 낮다며 50탈렌트로 스스로 상향조정(?)한다. 순간 움츠러든 해적들. 종을 시켜 본국에 돈을 가지러간 사이 카이사르는 잠도 편하게 자고, 오히려 해적들과 어울려 놀기도 한다. 마침내 50탈렌틀 받고 풀려나지만, 카이사르는 반대로 군대를 끌고 해적들을 모조리 소통하고 50탈렌트를 되찾는다.

또 하나, 그는 갈리아 전쟁 당시 백부장들에게 돈을 빌려 군사들에게 나눠줬다. 백부장들은 전투에 승리해 돈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싸웠고, 군사들은 카이사르에 감격해 더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카이사르의 대단한 용병술(?)이다.

당대 최고 권력이었던 술라의 명령도 거부한 배짱있는 사나이다. 술라의 살생부에 올랐다가, 측근의 반대로 명단에서 제외됐지만, 술라는 카이사르에게 지금의 부인(술라의 정적이었던 킨나의 딸)과 이혼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면서 아내와 차라리 멀리 망명해버리는 간 큰 남자다.

안찰관에 임명되며 민중의 인심을 얻고 제사장에 오르며 민중을 리드한다. 민중의 심리를 잘 읽고 마음을 차곡차곡, 천천히 얻었으며 마침내 그는 마흔이 넘어 꽃이 피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내 눈길을 끈 것은, 당시 그러니까 기원전 100년 로마의 교육 과목이다. 전혀 기원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무려 2100년 전인데 말이다. 책에 있는 내용을 잠시 옮겨 본다.

초등교육 후기부터 고등교육 초기, 나이로 치면 8, 9세부터 16세까지 배우는 과목

라틴어와 그리스어 문법

말을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적절히 표현하는 기능을 배우는 수사학(레토릭)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터득하기 위한 변증학

그리고 산수, 기하, 역사, 지리

이 모든 걸 한 사람의 가정교사가 가르친다. 로마에서는 기초과정을 마친 뒤의 수업은 선인들이 남긴 글을 읽는 것으로 이뤄진다. 문법, 수사학, 변증학, 역사, 지리 모두 호메로스나 투키디데스나 플라톤이나 大 카토의 저술을 읽음으로써 배워나간다. 다시 말해 교재는 선인들이 남긴 문장이며, 학생들이 쓰는 공책은 밀랍을 먹인 목판이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카이사르의 마지막 갈리아 전쟁 7년째 맞딱드린 강적 베르킨 게토릭스 동상이다. 카이사르가 써내려간 <갈리아 전쟁기>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 허진모 씨는 이에 대해 '자신의 공적을 상대적으로 높이기 위해 일부러 과장한 측면도 보인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도 현대 역사가가 인정하듯이 꽤 능력있고 통솔력도 갖췄으며 실제 인정과 동정심만 없었다면 카이사르를 궤멸시킬 수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한다.

당시 베르킨 게토릭스가 카이사르와 대적하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알레시아로 들어간다. 당췌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대목이다. 이를 알게 된 카이사르는 무시무시한 포위망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결국 베르킨 게토릭스는 포로가 되어 로마로 압송당하고, 카이사르의 개선식 때 죽음을 당한다고 한다.

한번씩 책 중간 중간에 나를 대입하기도 한다. 내가 당시 로마 병사였다면, 원로원 의원이었다면, 25kg이 넘는 짐을 지고 갑옷과 식량 등 총 40kg되는 무게를 이고 시속 5~7km로 일주일 가량 행군한다고 하고, 밀을 주식으로 하며 목욕이나 씻는 것은 물론 처형이나 패했을 때, 또 내가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됐을 때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고 잠이 달아난다. 현대에 태어난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로.

이 한 권으로 내가 깨우치는 게 이렇게 많고, 배우는 것이 다양하다면 이 책은 그 값어치 이상을 해낸 셈이다. 당시의 역사 여행도 했고 말이다. 몽테뉴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