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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제6권_팍스 로마나_시오노 나나미 저

 

1.

특히 로마인 이야기를 읽을 때는 갈등,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선택을 위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앞서서 읽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할 때 과연 내가 원로원 의원이었다면 로마에 남아서 카이사르에 동조했을까, 아니면 폼페이우스와 키케로 등을 따라 로마를 떠났을까? 또 한때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었던 호민관 안토니우스와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훗날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중 누구를 따랐을까? 잠깐 생각해보건대, 전자에서는 폼페이우스를 따라서 갔을 것 같고, 후자 역시도 당시 대세(?)라면 대세였던 안토니우스를 따랐을 것 같다. 카이사르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 같은 것, 그리고 아직 옥타비아누스가 잘 알려지지 않은 때라 황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엇보다 이 책은 당시의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잘 버무려 풀어놓았기 대문에 당대의 이야기 속에 나를 대입시켜도 나름 재미있다. 전쟁 전에 반드시 실시하는 진지 구축 현장,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 현장, 시속 5km로 행군하는, 그것도 갑옷과 개인 식량 등 약 25kg되는 군장을 메고서 말이다. 또 이 책 마지막 후반부에 소개되는 토이토부르크 전쟁(게르만족)과의 전쟁에서 내가 완전히 전멸하는 로마군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먼길을 걸어와서. 지휘관의 판단착오와 관료적 탁상행정의 실수로 인해 거의 3개 군단이 게르만 숲에서 몰살당한다면 나는 과연 탈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약간은 무서우면서도 소름끼치고 스릴있는 상상도 할만 하다.

 

2.

<로마인 이야기> 제6권 팍스로마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지목된 옥타비아누스가 조금씩 원로원을 달래면서도 뒤에서는 제정으로 방향을 틀어가는 모습이 소개된다. 이어 그가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인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고 프린켑스라는 호칭도 받아들이면서 말 그래도 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무게를 갖추게 된다. 이때 아우구스투스의 밀당(밀고 당기기)가 눈길을 끈다. 줄건 기분좋게 주고(전혀 손해보지 않는), 자신이 챙겨야 할 명분은 반드시 챙긴다.

예를 들자면,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을 양보하는 대신 포기하지 않는 세 가지가 있는데 바로 1)집정관(군 통수권) 2)임페라토르 호칭(카이사르 후예 선포) 3)프린켑스(제 1인자 의미)라는 명칭으로 명분과 지위, 권위를 챙긴 것이다.

또, 아우구스가 진정 바란 건 명예로운 월계관이 아닌, 시민관이었다. 당시 로마군 사이에서는 월계관보다 시민관이 더 의미가 컷다고 한다. 시미관은 아군을 구조한 공로 훈장을 의미하는데, 적지에 먼저 뛰어든 훈장보다 더 높은 포상이 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시민관을 씀으로써 비로소 로마를 구해내고 군인의 명예를 드높인 효과를 계산한 셈이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는 이에 대해 "철저히 합법성을 획득하는 아우구스투스의 탁월한 수단"이라고 칭찬하면서도 "하나하나는 완전히 합법적이지만, 서로 연결하면 공화정 치하에서는 비합법"이라고 일갈한다. 즉, 그가 공화정을 위해 자신이 가진 일부 권력을 내놓고, 대신 권위를 모조리 챙김으로써 제정을 더욱 앞당겼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재미있는 것은 카이사르라는 단어 자체가 훗날 황제의 대명사가 됐다는 점이다. 독일-카이저, 러시아-차르처럼 말이다. 그는 또 호민관 특권도 누렸다. 호민관은 원로원으로부터 유일하게 거부권(비토)를 발동시킬 수 있고, 평민 집회 소집권과 정책입안권이 있었는데 이 권력은 훗날 그의 법안 제정에 큰 지랫대가 된다.

 

3.

내용 중에 그의 오른팔이었던 아그리파와 왼팔 마이케나스가 나온다.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의 미흡했던 군사적 기질을 보충하고, 마이케나스는 외교 등 국내외 정치적인 교섭과 조언을 옆에서 돕는다. 특이한 사실은 아우구스투스는 아그리파와 달리 마이케나스에게는 특별한 관직을 주지 않고 오래 도록 옆에 뒀다는 것. 오히려 관직을 주면 자신과 대면할 일이 적어지는 등 여러 일이 생기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는 역사가들의 해석이 있다. 마이케나스 자신도 큰 욕심과 문제 없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여 죽는 날까지 아우구스투스의 옆에 머물렀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시대는 모처럼 로마에 평화가 도래했던 의미있는 해였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카이사르의 그늘에 있어 늘 비교를 당했지만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갔다. 하지만 그 건장했던 아그리파가 도중에 51세 나이로 죽고, 마이케나스도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남은 아우구스투스는 정책 실행과 결정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 실책 중 하나가 바로 게르만 영역을 넓히기 위해 치뤘던 전쟁 중 토이토부르크에서 제3군단이 몰살당한 일을 겪은 것이다. 이때 수장은 정식 군인이 아닌 관료였다. 적어도 아우구스투스가 카이사르처럼 직접 전쟁터나 속주로 나가 현지를 조사하고 분석하며 자치를 인정하고 그랬다면 상황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갈리아 전쟁기>을 읽었다면 말이다. 그에 대한 반발이 게르만족으로부터 일어나 무시무시한 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내부의 배신도 있었지만 그건 이 패배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아무튼 이 책도 내게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주고 가치를 선사했다. 책에서 내가 발췌하고 깨달은 세 가지를 끝으로 7권 '악명 높은 황제들'로 넘어가기로 한다.

아우구스투스를 통한 깨달음

1.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꿰뚫어 보는 인식력(자신의 능력 한계를 깨닫는 것도 포함)

2. 하루 하루 쌓아올리는 노고의 꾸준함

3. 적당한 낙천성

4. 극단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균형감각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