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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Storytelling

영화보다 더 재미있었던 베를린 리미티드 시네마 토크


아주 좋은 기회에 파워블로거 니자드 님의 초대로 압구정동 CGV로 함께 출발. 볼 영화는 바로 류승완 감독의 초대형 블록버스터 '베를린'.

사실 평소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아니, 극장에 자주 가지 않는 편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하지만 왠지 베를린은 꼭 극장에서 보고싶었던 터였다. 그리고 하정우라는 배우에게도 호감이었는데, 마침 니자드 님이 "영화 상영 마치고 배우들 시네마 토크도 있어요."라는 말에 솔깃.


퇴근하고 부랴부랴 간신히 시간 내 도착. 영화표를 손에 들고 관람. 2시간 후다닥.

나는 매사에 (생각이 많고) 진지하게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습관이 있어서 취미가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처음 영화 상영하자마자 외국인들 등장! 무기거래와 비밀통장 어쩌구 저쩌구 나온다. 난 순간 이렇게 마음먹었다. "이것이 영화의 주는 아닐거야. 자막 읽고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자" 사실 그렇게 어려운 영화가 아닌데 나 혼자 쇼를 한 것이다. 편하게 봐도 된다.

 

 


순수하게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누구는 본 레거시와 비슷한 점을 조목조목 비교하기도 하지만 난 그 영화 역시도 보지 않은 행운(?)을 얻은지라 베를린 자체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하정우라는 배우. 탤런트 김용건의 아들임을 잊게 해준 연기력. 한층 더 성숙해진 전지현과 더욱 능글맞는 연기로 담백하게 돌아온 한석규, 개성파 배우 류승범까지 캐스팅에 있어서도 크게 나무랄데 없다.


남북 비밀 첩보원과의 생존을 위한 결투 속에 분단에 대한 비극과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영화 내내 소용돌이 친다. 욕심, 배신, 사랑, 음모, 연민... 류승완 감독은 시네마 토크에서 두 가지 씬을 편집했다고 밝혔다. 하나는 러시아 북한 대사와 비서와의 불륜(이경영과 김서형 분), 또 하나는 영화 내내 가족의 전화를 받지 못하는 남측 요원 정진수(한석규 분)가 마지막에 홀가분하게 딸의 전화를 받는 장면이었다고. 자칫 불륜의 장면을 넣었다면 영화의 진지함이 떨어지고 겉도는 장면이 될 뻔 했을 것 같다. 반대로 마지막 정진수 장면은 넣어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

 

 


이 영화는 영화의 거대한 음모라는 배경 속에 개인의 감정은 철저하게 자제되고 있다. 간질맛이 날 정도다. 이 정도가 낫다. 주인공 표종성(하정우 분)과 련정희(전지현 분)의 부부지만 이념 속에서의 갈등과 절제된 사랑도 영화에 본질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잘 조절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연의 남발은 아닐지라도 좀더 사실적인 장면이 아쉽다. 바로 이 영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몰아갈 수 있는 길목(장면)인데, 표종성이 북한 요원 동명수(류승범 분)의 도청을 알아내곤 련정희와 도주한다. 이윽고 한 호텔에서 머무는데 마침 들이닥친 북측 요원들과 총격신이 이어진다. 두 사람은 요원들에게 제압당하고 엘리베이터로 끌려가면서 느닷없이 정진수와 마주치며 표종성은 요원들과 다시 격투하는 사이, 아내인 련정희는 외딴 집으로 납치당한다. 그 짧은 사이에 반경 20킬로미터 내 있는 모든 모텔을 뒤지고 마침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다니. 설득적인 요소를 좀 더 가져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묻어났다.

 


(왼쪽부터) 김영진 영화평론가, 류승완 감독, 배우 한석규와 하정우, 방송인 류시현


마지막 시네마 토크 시간.


이 자리는 류승완 감독과 배우 한석규, 하정우, 영화평론가 김영진, 방송인 류시현이 함께 했다. 한석규는 보기와 다르게 수수한 옷차림에 말이 조금 느린 건지 차분한 건지 그 중간 톤으로 말이 길다. 아니 모두 다 길다. 그 만큼 생각과 주관과 영화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 아닐까. 내가 성격이 조금 급해 말을 빨리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한석규 톤을 한번 따라해보기로 했다.


시네마 토크 전에 니자드 님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분명 영화가 잘 되면 2탄이 나올 것"이라며 "이름하야 블라디보스토크"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 관객석에서 그 질문이 나왔다.


류승완 감독이 그 질문 듣자 한석규에게 "잘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고 운을 떼자 한석규는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시나리오 보고"라며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이 영화는 충분히 두 번째 작품을 찍을 정도로 의미있는 영화라 찍는다면 도전하고 싶다"면서 "그때가 온다면 사건 중심이 아닌 인간적인 중심으로 인간 정진수를 풀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석규는 이 자리에서 "우리 아이가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했는데 충격이었다"며 "북한은 우리랑 다른 외국인데 왜 우리나라 말을 써"라고 물었다며 당시엔 굉장히 당황했다고. 아이들마저 북한을 우리 동포가 아닌 전혀 다른 외국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라며 아쉬워 했다. 이어 "내가 남북 소재 영화로만 쉬리, 이중간첨, 그리고 이번에 베를린을 찍었는데 언제가 됐든 남북합작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며 포부도 밝혔다. 그리고 "그 소재는 사극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류승완 감독 역시 "나는 세계 곳곳에 친구가 많다. 프랑스 친구, 미국 친구, 러시아 친구 등 다양하다"면서 "그런데 정작 북한 친구는 없다. 그러면 큰일나는 시대"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류승완 감독 역시 관객으로부터 "만약 1천 만 관객을 넘으면 무슨 공약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내 영화가 그렇게 숫자로 매겨지는 것이 싫다. 싫은 정도가 아니라 반감을 갖고 이다"며 "여기 오신 분들 모두 보시는 대로 베를린이라는 영화에 대한 느낌이 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답변에 분위기가 다소 경직될 것을 우려했는지 "만약 1천 만이 넘으면 휴대폰 모두 끄고 사람들과의 인연도 끊을 것"이라며 폭소를 자아냈다.


하정우라는 배우는 차분하고 다소곳하다. 그 역시도 꿈이 많다. 평생 영화 100회를 찍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한석규도 영화 많이 출연한줄 알았는데 겨우 27편이었다니. 물론 주인공으로만 출연했기에 그 수는 더 적을 수 있지만, 그의 100회 출연을 기대해 본다.


이 영화는 후속편도 충분히 기대된다. 그 때는 정진우와 표종성의 색다른 인연과 전개로 이어졌으면 한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었던 시네마 토크. 영화배우도 매력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