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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 특허전쟁

제3차 세계대전, 특허전쟁

 

종두법을 처음 우리나라에 보급한 지석영 선생이 진작에 특허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허제도는 이후에도 제도화되지 못 했다. 이후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극동으로 세력을 뻗어나갈 즈음 일본과 미국이 시장지배수단으로서 미/일간 ‘특허권 등의 보호에 관한 협정’을 체결, 우리나라에도 특허법의 제정압력이 가해지면서 1908년(순종 2년)에 칙령 제196호로 ‘한국특허령’을 공포한 것이 특허의 시작이다.

 

이 특허령에 의한 최초의 특허는 ‘말총모자’에 관한 특허지만 이 시기가 일제강점기로 우리나라 자생력으로 만들어진 특허법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8?15 광복 이후인 1946년 1월 22일 설립된 특허원(특허청 전진)의 특허법에 의한 ‘황화염료제조법(1948년 11월 20일 특허)’을 우리나라 최초의 특허로 인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렇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게 처음 알려진 특허는 순수의 목적인 ‘일정기간 특허권자에게 독점권리를 제공하고 이를 공개해, 관련 기술의 발전을 꾀한다’기 보다, 앞서 말한 대로 ‘시장지배수단’으로서의 수탈의 의미가 더 컸다.


이 ‘시장지배수단으로서의 특허’가 최근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애플과 삼성의 맞고소 예에서 볼 수 있듯 현재도 그 의미에는 변함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총성 없는 전쟁, ‘제3차 세계대전’으로 해석하는 이도 많다. 소프트웨어 지식재산의 부상으로 인한 시장선점을 놓고 전략적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얼마 전 구글이 휴대폰 제조사인 모토로라 인수를 전격 발표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 IT 전문가들의 시각은 모토로라가 가진 1만7,000여개에 이르는 특허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구글도 이를 크게 부인하지 않았다. 구글은 이번 인수로 인한 특허 확보로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외국 특허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이미 모토로라에 남아 있는 쓸 만한 특허는 단 18개뿐으로, 이것만이 구글을 애플과 MS로부터 보호할 것이며 지적재산권 분쟁에 유용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모토로라에서 분사된 반도체 회사 프리스케일의 무선통신관련 특허는 지난 5월 이미 애플로 넘어갔고, 동영상 압축기술인 ‘MPEG’ 특허는 이미 GE에 처분했다. 남아 있는 것은 위치서비스, 안테나 디자인, 이메일 전송, 터치스크린 모션, 소프트웨어 앱 관리, 3G 무선 등이라는 얘기다. 과연 구글이 이를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애플과 삼성의 맞고소에서 보듯, 과거 ‘특허괴물’의 희생양이었던 국내 대기업들은 ‘특허전사’를 키우며 공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소송제기부터 합의까지 분주히 손익계산에 대한 주판알을 튕기며 외교적 특허 관련 주파수도 맞추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 간에 벌어지고 있는 특허전쟁의 이면에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 국내 IT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등한시 한 채 대단위 장치산업, 즉 하드웨어 생산에만 집중 투자해 몸집만 크게 키워 심각한 내부 불균형을 초래했다. 그것이 대중의 ‘소프트웨어는 무료’라고 인식하는 데 일조했으며,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피를 깎는 노력에도 그에 맞는 대우를 현재까지도 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글로벌 기업들이 팔 걷고 나서는 특허전쟁. 시장지배 수단으로서 특허는 이미 생존의 기반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전경련이 2009년 3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지식재산전담 부서가 있냐는 질문에 전체의 26.7%가 ‘없다’고 한 부분은 우리의 현모습이 아닐까.

 

 

-월간 웹 2011. 10월호 editor's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