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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같아 보였어. 휴대폰 좀비"-KBS 2TV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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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1 - [Human Storytelling] - 공존에 ‘도움’이 되는 기술, ‘위험’이 되는 기술

 

KBS 2TV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연출 신미진 나영석)이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처럼 멋지게 포장해 화제를 낳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1회 첫방송 이후 시청자의 호평 속에 정규편성 여부를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질 정도로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아날로그 리얼리티'라는 역발상이 소위 항간에 먹힌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늘 함께하고 있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편리함과,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기억을 찾아가는 추억거리도 함께 제공하고 있기에 그 만큼 시청자들이 반색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휴대폰, 인터넷, TV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없을 수도 없는 생활의 필수품 그 자체지만, 제작진은 과감히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과감히 소거함으로써 벌어지는 리얼리티는 7일간의 합숙을 통해 그대로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개콘에서 현재 대세로 불리고 있는 양상국, 박성호, 허경환, 김준현, 정태호, 김준호 등 6명이 이 버라이어티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들도 역시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휴대폰과 인터넷, TV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길들여져 있던 사람들. 제작진은 사전에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들은 마지막 10분 통화를 하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여러가지 부탁을 했다. 과연 나는 휴대폰이 갑자기 없어진다고 할 때 누구부터 연락하고, 메모수첩에 적어 놓을까. 보통 우리가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와 마찬가지 느낌이 아닐까. 당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그 사람을 소중히!

 

 

 

실험은 앞으로 1주일 간 6명이 합숙하며 24시간 동안 24대의 카메라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앞으로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첫 번째 난관은 제법 빨리 왔다. 사전에 매니저와 교감하지 않은 탓에 양상국은 매니저를 찾아 동분서주했다. 결국 찾아낸 그는 매니저에게 기쁨 반, 불만 반을 표출하기에 이른다. 보통 때 같으면 휴대폰 한 통이면 끝날 것을.

 

 

 

늘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의 허전함도 무시할 수 없는 현상 중 하나.

 

 

 

 

 

 

허경환은 분장하는 사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코디네이터의 카톡 소리에 짜증을 내기 시작하고. 급기야 "너 중독이냐?"며 호통도 친다. 물론 자기가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서서히 상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개콘 회의실에 휴대폰 없이 하루를 보낸 김준호는 평소 마시지 않던 커피를 계속 홀짝 거리고, 종이를 잘게 찢는 증상을 보인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개그맨 대부분이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고개숙인 모습에 절규하기에 이른다. "모두 좀비 같아 보였어. 휴대폰 좀비" 우리도 지하철이나 버스, 회의, 회식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대화가 단절된 그 당연시 받아들였던 현대의 이기적인 문화.

 

 

 

개그맨 박성호는 사랑하는 아내와 떨어져 있게 된다. 여기서 오는 애틋함도 함께 묻어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이후다. 김준호가 스크린 골프장에서 스케줄을 망각하며 자멸하는 장면 직전에, 개콘 회의실에서 김준현과 양상국, 허경환 등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요즘에는 친구 어머니가 왜 아들친구를 예전처럼 많이 알지 못 하는 걸까.

집전화, 혹은 삐삐 시절에는 친구(혹은 여자친구)와 만나려면 직접 집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친구 어머니가 받을 경우에는 "어머니. 저 OO 친구 OO인데요. OO 집에 있나요?"하고 여쭤보면, 친구 어머니는 "그래. 너로구나. 잠깐만 기다려라."하고 바꿔주시곤 했다. 예전 개콘 애정남에서 친구 결혼식 때 진짜 친한 친구 축의금으로 10만 원을 정했는데, 그 근거가 바로 '친구 어머니가 날 기억하실 때'다. 그러니 이제 휴대폰으로 직접 통화가 가능한 이 때, 굳이 한 단계 집전화를 거칠 필요가 없기에, 10만 원 축의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 불편한 진실을 누구에게 토로해야 하는 걸까.

한 가지 떠오르는 건, 여자친구 집에 전화할 때 그집 식구가 받으면 잽싸게 끊던 기억. 혹은 여동생이나 다른 여자 애들에게 부탁하곤 했던 기억은 이제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하는 소중하고 아련한 추억이 됐다.

 

 

결국 실험 첫 날, 스케줄을 망각해 버린 김준호. 모두가 뒤집어 진다.

 

 

 

막상 휴대폰이 없다보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지인은 김준호에게 "도망다니냐?"며 걱정스레 묻기도 하고, 김준호는 상대의 목소리를 소중하게 들으며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내뱉는다. 여기서 잠깐. 과연 전화기의 남는 돈은 거스름돈이 돼 나올까? 아는 사람만 아는 불편한 진실. "안 나온다."   

 

 

 

 

휴대폰이 없으니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단 한 명의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우리는 잃고, 잊은 채로 사는 건 아닐까. 물론 휴대폰 없이 단절됐을 때의 당혹감은 있겠지만 소외감은 아니다. 그런 것 같다고 느끼는 것 뿐이지. 이 모든 게 없었을 때는 어떻게 인맥을 관리하고 커뮤니케이션 했을까.

 

 

 

 

 

 

 

사람이 그리워지며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한 첫 번째 에피소드. 서로 대화하게 되고, 기다리게 되고, 어색함을 풀게 되고,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 소중함을 비로소 느끼게 된 여섯 명의 개그맨들.

 

비단, 휴대폰과 인터넷, TV 없이 생활하는 모습을 리얼리티 있게 담아내는 이 프로그램도 정작, TV를 통해 보고, SNS 통해 정보를공유하고 인터넷 다시보기를 해야만 한다는 건 아이러니. 이 기획을 특집으로 다루려는 월간 웹도,인터넷과 웹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우리 매체 역시 아이러니. 분명한 건, 문명의 이기를 탓하는 게 아니라 잃어가는 소중함을 되찾고, 사람이라는 근본적인 존재를 재확인하려는 의도다.

 

비로소 사람이 그리워지는 그 느낌을 영원히 간직했으면 한다. 

 

(사진=KBS 2TV '인간의 조건'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