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깨우침의 해우소

[No.32] 생각의 한계가 불러온 처참한 패배

 

*1944년 당시 프랑스군

 

1938년 한 군사 서적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있다. 침략이 아직도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당시 프랑스 예비역 장성 쇼비노가 썼으며, 프랑스 지휘부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얼마나 무책임하고 상황판단이 더딘 전술적 개념을 갖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요새와 화력을 결합할 수 있게 해주는 근대적 기술 덕분에 적군이 넘을 수 없는 방어선 구축 가능

둘째, 공격용 탱크나 비행기는 공격용 무리로 아무런 쓸모가 없다

 

탱크와 비행기의 가공할 전투 능력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새로운 전쟁은 기계화된 부대에 의한 속도전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데도 프랑스는 개의치 않았다.

 

 

*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결국 1940510일 전쟁이 터졌다. 독일은 속도 개념에 입각해 프랑스를 하늘과 땅에서 압박해 나갔다. 프랑스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빠르게 위기를 맞았다. 20세기 역사학에서 큰 족적을 남긴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는 당시 이 전쟁에 참여하며 현장에서 쓴 이상한 패배 : 1940년의 증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일군은 빠르게 프랑스를 침범했다. 프랑스군은 독일군이 수행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가속화된 진동과 연결된 진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매번 후퇴를 해서 새로 진지를 구축했던 거리는 고작 20~30킬로미터. 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던 시절에는 이 거리가 먼 거리였지만 자동차로 반 시간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 제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 기계화 사단

 

실제 독일은 프랑스가 사령부를 옮기는 곳곳마다 빠르게 맹공을 퍼부었다. 블로크는 후퇴하는 곳마다 위협을 당하지 않는 하늘이 없었고, 기계화 부대의 침투력이 거리를 먹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미국의 중심부만큼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브레타뉴 지방의 렌에서 단 몇 분 만에 수백 명이 죽어나가는 참상이 반복됐다고 개탄했다.

 

거리와 속도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프랑스군. 프랑스가 독일에 대응할 만큼 전차, 비행기, 트럭 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던 것은 군 지도부의 잘못된 전략과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나치와의 전쟁이 임박해가자 프랑스는 국경선에 시멘트 보루와 대전차 참호를 건설하는 일에 매달렸으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었나.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프랑스가 당대였던 1940년에 걸맞는 전쟁을 준비하는 대신, 1915년을 떠올리며 요새화된 거점구축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으나 비행기와 전차 공격에 휴지조각이 됐다는 사실이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실제 프랑스 장군들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비행기의 무서움을 체험했음에도 돌아서서는 이 모든 것은 스포츠일 뿐이라고 일갈한 사실에서 이미 전쟁의 승패는 결정 나 있었다.

 

블로크는 독일군의 승리는 본질적으로 지적인 승리라며 2차 세계대전은 현대문명과 그 이전 문명 간의 대립이었고,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현대문명그 이전 문명을 대표했다고 말한다.

 

이 역사적 사실에서 주는 교훈은 딱 한 가지다. 지식과 경험이 옛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시대는 얼마든지 바뀐다. 교훈을 얻되 현 상황에 맞춰 재해석하는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다. 옛 경험은 내가 살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요소와 맞물려 재해석했을 때 의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경험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생각에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1940년대 프랑스군 지휘관은 예전 전쟁 때 대대장이나 중대장을 역임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부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옛 기억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경험을 교육자료로 맹신하고 이에 집착했다. 자신이 경험한 것에서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한다. 장회익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도 지난 17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생각의 한계를 가진 사람들일수록 고집이 셉니다. 그 한계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고 믿어버리죠. 잘못 본 것은 없는지 살피고, 또 새롭게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대부분 꽉 막혀있지요. 나이 들어서도 지적활동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던가.

 

 

이 책은 장정일의 공부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