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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Storytelling

계산대에서 몇 백원이 모자랐던 그 할머니

 

 

 

오늘 퇴근 후 마트에 들렀다가 겪은 일입니다.

제 집은 1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시장이 있습니다.

그곳에 200평 규모의 할인마트가 있는데

집과도 가까워서 종종 퇴근 후나 휴일 때 찾는 편입니다.

 

요즘 한참 다이어트 중인데 짜장면이 땡기더라고요.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지 마자 먹고 갈까?'하다가

그냥 면을 사서 끓여 먹자는 생각에 마트를 찾았죠.

 

한 10여분 정도 지났을까요. 짜장면과 귤, 맛살을 사가지고 계산대에 갔습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계신 계산대에는 뒤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로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러곤 제 시선은 한 곳에 멈춰섰습니다.

할머니는 발 밑에 지팡이를 세워두시고 손에는 '바나나맛 우유' 한 개를 쥐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트 직원 앞에는 '50원' 짜리, '10원' 짜리 동전이 깔려 있고, 그 옆에 돼지저금통이 하나 있었지요.

 

마트 직원은 50원 짜리를 세고, 이어 10원 짜리를 세는 사이 저는 바로 옆 계산대로 자리를 옮겨 기다리고 있는데,

'할머니, 돈이 모자라요. 690밖에 안 돼요' 하더군요.

순간,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만 주머니를 뒤지니 1000원 짜리가 두 장 있었습니다.

"저, 이 걸로 계산해주세요."하고는 저도 서둘러 제 물건들을 계산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도 모르셨는지 연실 "내일 줄게, 내일..."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마트 직원이 "저 뒤에 계신 분이 계산하셨다고요."하는 말을 들으시고는

저를 쳐다보셨고,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지금 껏 누구를 돕는다거나 그런 적이 거의 없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죠. 제 자신이.

하지만 그 때 저는 왜 그랬을 까요. 도왔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전 세 가지 생각이 불현듯 스쳤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고,

우리 엄마의 훗날이 생각났고,

나도 언젠가 이런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

 

할머니가 드시려고 그 우유를 사셨다기 보다는

아마, 손주 녀석들 하나라도 더 먹이라고 사러 오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몸도 불편하신데, 본인이 드시려고 굳이 돼지저금통을 깨가며 바나나맛 우유를 사러 오실까요. 갖고 계신 돈도 얼마 없으신가보다 하고 생각하니 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도움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뭐, 제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나눔이라고 할까요.

적어도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젊은이들이 조금 더 상냥하고, 한 번 더 양보해드리는 모습이 필요할까 생각합니다.

 

<스키너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노인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면,

두꺼운 귀마개를 하고, 굽높은 구두를 신고,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쓴채

퇴근 길에 지하철을 타 봐라. 

 

물론, 자신이 얼마든지 노력해서 든든한 노후를 보내면 된다든지, 하는 그런 답변을 들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잡아주는 손길, 바로 그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생각이 앞섭니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없이 나이를 먹고, 늙고, 외로워 지니까요. 저 역시 오늘 일을 잊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