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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_잡지기자 클리닉

[잡지기자 클리닉] 토하지 말고, 통하는 기사를 써라

토하지 말고, 통하는 기사를 써라

 

기자가 특정 사안에 대해 취재한다는 것은 자신이 의도한 정보와 메시지를 독자에게 적시에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에게 통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

 

실무에 임하다보면 동일한 이슈라 할지라도 기자마다 사안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에 담고자 하는 기사의 메시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구구절절 너무 많은 메시지를 페이지에 담으려는 통에 ‘대체 이 기사는 독자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거지?’하고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즉, 너무 많은 것을 토해내는 통에 기사가 산으로 간다는 얘기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나타나는 큰 이유는 처음 기사를 기획할 단계부터 취재하고자 하는 주제와 기획의도를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두루뭉술하게 ‘누구를 만나서, 인터뷰를 나누고, 딕테이션을 풀다보니, 그가 이러한 얘기를 했고, 이 내용도 중요하고, 다른 코멘트를 줄여서, 짠~ 탈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쓰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기사도 굴곡이 들쑥날쑥한 콘셉트가 돼버린 것이다. 쓰는 기자나, 보는 데스크나 서로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신입기자 때 그랬던 시절이 있긴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취재하고자 하는 주제의 타깃을 정확히 조준해야 한다.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감을 잡아야 한다. 또 기존의 기사방식에 젖지 말고 늘 새로운 글 쓰는 방식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모 신문사 신입기자 시절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한국생산성본부 주최의 ‘CEO 조찬포럼’을 취재할 일이 있었다. 당시 현장에는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이 연사로 참석해 방송사에서도 저마다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난 스케치 꼭지를 담당했던 지라 특정한 이슈나 내용의 경중 없이 그가 했던 발언을 스트레이트 기사 형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두 페이지로 써내려갔다. 그 때만 해도 뿌듯했다. 한정된 페이지에 모든 걸 다 담았으니까.

 

탈고한 뒤 우연히 이날 포럼 기사를 검색해 봤다. 물론 기사의 성격은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저마다 매체 특징은 분명했다. 또 기사의 전개가 저마다 달랐다. 리드문 자체도 기자마다 개성이 담겨 있었다.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

 

A매체는 한해 경제성장률 둔화이유와 내년 예상, B매체는 UR과 FTA 관련 발언, C매체는 자동차 수출에 관한 장관 발언과 전문가 코멘트를 인용해 기사를 쏟아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했고 기사의 임팩트가 있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통하는 기사구나. 난 지금까지 토하는 기사를 써오지 않았던가.”

 

이때부터 난 사보와 잡지와 신문기사 방식의 차이를 조금씩 스크랩하며 비교해 다양한 기사 틀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노력은 내게 큰 재산이 됐다. 나아가 이것이 시발점이 돼 잡지를 기획하면서 사보도 기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고, 잡지를 만들면서도 주간지나 신문제장방식을 이해하니 매체의 커다란 시장을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한 선배가 그랬다. 처음 취재 전에 기획이 분명하지 않으면 기사도 중심을 잡기 힘들다고. 그런 사전 준비 없이 인터뷰 후 원고를 정리하다보면 모든 내용이 중요하게 생각되기 때문에 기사의 중심을 잡기 어렵다고 했다. 취재 전에 사전정보를 충분히 입수하고, 질문거리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임팩트 있는 이슈(발언)를 첫머리에 터트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10년여가 흘러 내가 그 선배의 입장에 섰다. 한 신입기자의 인터뷰 원고를 받았다. 분량은 짧은 한 페이지짜리인데 도무지 기사의 중심이 없었다. 인터뷰를 2시간하고 왔으니 모두 담고 싶겠지만, 꼭지에 맞게 중요한 내용 위주의 심플한 기사가 아쉬웠다. 결국 취재원의 취미와 사적인 얘기, 짧은 경력활동 등 굳이 메시지에 어울리지 않는 기사는 모두 쳐냈다. 두세 줄에 하나씩 자리했던 중제(중간제목)도 한 개로 줄였다.

 

다음은 모 기자의 양해를 얻어 소개하는 초고(앞부분)와 수정원고다. 두 원고 간 리드, 인용, 군더더기, 인터뷰 기사 작성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정 중에 그 기자에게 “네가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냐?”고 되묻는 일도 있었다.

 

<초고>

사랑은 회색의 모래 속에 섞인 한 알의 금과 같다 할름은 말했던가. 여기 따스한 감성디자인으로 회색의 모래마저 사랑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가 있다. ‘단절’이 아닌 ‘연결고리’로 또 다른 무채색의 키워드를 만들어 가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OOO 기자

 

무채색 키워드: 세련, 절제, 엄숙, 상실, 고독, 단절.

색채 성향: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침묵의 색’.  기자에게 있어 무채색은 그렇게 어려운? 무거운 느낌이다. 게다가 잿빛을 연상케 하는 회색빛은 더욱이…. 헌데 방안 가득한 회색빛이 따뜻하다. 독특하다. 어둠과 빛이 만들어낸 묘한 조화 때문일까? 공간의 특화된 회색빛이 매력적이다. “Warm Grey 에요. 색채에도 감정이 있습니다. 항상 곁에 있으면서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멀어지면 그리워하게 되는 것처럼…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는 거죠.”

 

<수정원고>

‘사랑은 회색의 모래 속에 섞인 한 알의 금과 같다’고 할름은 말했던가. 여기 따스한 감성디자인으로 회색의 모래마저 사랑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가 있다. 눈이 내려 무채색 하얀 마음에 열정을 심어주듯, 그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열정과 감성으로 세상에 따스함을 더한다.

 

글 OOO 기자

 

기자에게 있어 회색은 무겁고 어려운 느낌이다. 마침 OOO 대표의 방안 가득히 회색빛이 가득했는데 평소와 다른 느낌이다. 공간의 특화된 회색빛이 독특하다. 어둠과 빛이 만들어낸 조화 때문일까?

“Warm Grey에요. 색채에도 감정이 있습니다. 곁에 있어 잘 느끼지 못하지만, 멀어지면 그리워하게 되는 것처럼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는 거죠.”

OO커뮤니케이션은 인테리어 회사가 아니니 오해마시라. 도시경관에 어울리는 건축물 외관의 색채 디자인과 내부의 특화 디자인 등 전반적인 환경색채 디자인과 환경 플랜트 분야를 기획․설계한다. 그에게 ‘Warm Grey’는 하나의 사업철학이다.

 

기사 원문은 굳이 색에 대한 구구절절 주관적 시선을 담음으로써, 기사문장론의 금기사항인 만연체를 썼다. 설명적인 어구를 많이 써서 문장의 호흡이 길어진 것이다. 시작부터 용어정의식 전개는 좋지 않다. 또 문단과 문단사이에 호응 및 논리성도 결여됐고, 기사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읽는 이로 하여금 혼란스럽다. 미사여구도 지양해야 한다.

 

때문에 한 페이지에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데, 공간 부족을 초래했다. 읽다보니 급히 마무리하려는 의도도 엿보였다. 수정본에서는 최대한 미사여구를 자제하고, 바로 팩트(사실)로 리드문을 나열했다. 독자에게 통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다.

 

1. 첫 줄에 임팩트를 줘라(독자의 흥미를 끌어라)

기사는 첫 문장과 이어지는 서너 문자의 임팩트가 중요하다. 읽히는 기사는 여기서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독자 시선을 끌지 못 하면 독자는 중제만 눈으로 훑어보고 책장을 넘기기 쉽다. GQ나 아레나 등 소위 잘 나가는 대중지의 경우 제목과 첫 문장의 임팩트를 위해 대단히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때로는 글 쓰는 시간보다 더 투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2. 논설조나 용어정의 같은 상투적 사용의 리드문을 배제하자

‘로하스(LOHAS)는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줄임말로 건강과 환경,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 등을 심각하게 생각한 소비자 생활방식을 의미한다. 로하스 경영은…’식의 정의론을 독자는 반기지 않는다. 가장 상투적이고 보편적이고 재미없다. 이렇게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개인의 건강만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에서 한 단계 나아가 자신의 건강은 물론 환경까지 생각하는 로하스족(族)이 증가하면서 ‘로하스(LOHAS) 경영’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3. 수동태와 피동형 불완전 동사는 자제하자

‘감소되었다’ ‘~하는 기능 정도로만 여겨졌다’ ‘많이 연구되고 있다’ 등 표현은 잡지나 신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때는 모두 ‘~하다’는 동사(능동태)를 피동형으로 잘못 쓴 경우다. 모두 ‘감소했다’ ‘~하는 기능 정도로만 여겼다’ ‘많이 연구하고 있다’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영어식 수동태 문장과 겹피동도 빈번하다. ‘부르다’를 ‘불리다’를 넘어 ‘불리우다’ ‘불려지다’로까지 쓰는 형국이다. 또 ‘~하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의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는 ‘~할 수 있다’ ‘~의 가능성이 있다’로 바꿔주면 읽기 편하다.

 

4. 중제 하나에 메시지 한두 개만 넣어라

원고의 대제(큰 제목)는 하나의 커다란 뼈대다. 이와 관련 있는 내용으로 원고를 써내려가고, 중제를 달게 된다. 이때 하나의 중제에는 가급적 한두 개의 메시지만 담는 것이 좋다. 짧은 한 단락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중간제목으로 뽑았는데, 마찬가지로 구구절절 나열하는 기사가 돼버리면 중제로서 임팩트를 가질 수 없다.

 

잡지기사는 신문매체와 달리 호흡이 길다. 그리고 글쓰기도 나름 자유롭다. 기사를 소설처럼 풀어갈 수도 있고, 상황극(입체성)을 만들어 시작할 수도 있다. 다양한 인용과 문체 시도가 가능하다. 기획자체도 깊이가 있다. 레이아웃도 다양해 창의적 기사 도출에 유리하다. 분명한 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구구절절 토해내는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군더더기가 많으면 기사도 안드로메다로 간다. 기사가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하자. 글맛 나는 통하는 기사의 그 첫걸음은 기사가 잔소리가 되지 않는 데 있다. 아울러 짧고, 굵고, 임팩트 있게 써내려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기자는 결국 ‘통하는’ 기사로 말한다.



by 허니문 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