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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_잡지기자 클리닉

[잡지기자 클리닉] 경력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간절해라(1)

 

어느 마감 때였다. 나는 A기자를 조용히 불렀다. 따로 큰 소리 내지 않아도 본인이 더 잘 알테니까. 솔직히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말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 경력직이었잖아. 전 직장에서 어떻게 한 거야? 비문천지에, 이걸 어떻게 잡지에 게재할 수 있겠어?”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하지 말고, 네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죄송하도록 해. 당장은 네 바이라인 달고 책으로 출판되는 거야. 그러면 네 가족이, 친지가, 친구들이 볼 텐데,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건데? 전혀 준비가 안돼있었잖아. 난 결과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어.”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여기는 학원이 아니다. 정신차리고 출퇴근 때나 휴일 포함해서 매일 공부해. 지금 잘 시간이 있어?”

“….” 

 

A기자의 눈에는 눈물을 가득 참으려 힘을 주는 것이 보였지만, 그렇다고 내 목소리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럴 때 일수록 A기자에게 메시지를 확실히 전하는 것 역시 내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달 후 또 일이 터졌다. 결정적으로 한 마디 물었다.

 

“내가 봤을 때 A기자는 간절함이 없는 것 같다.” 순간 A기자는 놀란 듯이 날 올려다봤다.

“네.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이제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

 

수초 간 머뭇거리며 어렵게 입을 연 A기자는 순간 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난 그 눈물에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일부러 못 본 척하고 빨리 마무리 했다. 업무 얘기를 하다보면 이런 일이 다반사다. 어떻게 보면 편집장이라는 자리는 이성과 감성에 따라 카멜리온 같은 색을 유지해야 할 때가 많다.

 

김성근 전 SK 와이번스 감독(현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감독). 사실 그는 야신이라 더 알려져 있지만, 그 전에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별명 하나가 있다. 바로 '잠자리 눈깔'이다. 그가 태평양 돌핀스(현 넥센 히어로즈 전신) 감독 시절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는 데서 선수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의 야구 (감독) 실력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야구를 사랑하는 이라면 인정할 정도로 땀의 대가를 반드시 손에 쥐게 하는 명장이다. 명조련사라는 칭호도 결코 낯설지 않다.

 

야구에 관한한 미다스의 손인 그는 매년 최약체로 지목되는 팀을 맡기만 하면 귀신 같이 상위권을 치고 올라오며 강팀들과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친다. 쌍방울 레이더스, 태평양 돌핀스, LG 트윈스, 그리고 최근에는 SK 와이번스와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까지. 그의 리더십에 관한 연구와 강연도 활발히 진행될 정도로 그가 선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사회 직장인들에게도 더 없이 유용하다. 바로 선수들로 하여금 '간절함'을 알 수 있도록 인성교육을 야구보다 우선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훈련량이 제일 많고 힘들기로도 유명하다. 그렇다면 왜 선수들은 김성근 감독의 방식을 아무 말 없이 믿고 따르는 것일까.

 

아무런 목적 없이 성적만을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면 최고참 선수를 중심으로 팀내 강한 반발이 있었을지 모른다. 반대로 그 정도의 훈련을 소화하지 않고도 상위권을 유지하는 팀이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그들의 실력이 최약체라는 데 있다. 자칫 패배의식에 젖어버리거나, 목적이 없거나, 혹은 2군에서 만족하다 선수생명을 마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은 이 부분부터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훈련을 하되 왜 훈련을 해야 하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왜 지금 땀을 흘리는지, 간절함이 있는지를 먼저 깨닫게 한다. 그와 맞물려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인 강훈련을 달게 받아들인다.

 

기자 역시도 기자 본연의 업무는 물론 무엇을 하든지 한계를 높게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기든 지든, 이루던 이루지 못 하던 늘 베스트로 가야 한다. 그것이 곧 승부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자칫 한 번 흐름이 바뀌면 어지간해서는 그 흐름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야구로 치자면 연승모드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연패모드로 전환될 수 있다. 그 누구도 현재의 분위기를 낙관할 수 없다.

 

인턴기자든, 수습기자든, 경력기자든, 왜 기자를 하려고 하냐고 물으면 "늘 책을 좋아했고,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는, 추상적이면서도 주관 없는 답변이 많다. 또 만약 입사한다면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어떤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면 “좋은 기사를 써서 매체를 키우고 싶다” 혹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사”라고 짜맞춘 듯이 말한다. 저마다 의견이 다르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지만, 난 더 명쾌하고 주관적이고, 자신의 인생을 내거는 이유를 대답할 수 있는 기자였길 바랐다.

 

그런 마음가짐부터 살피다보면 입사 후 그 기자의 필력과 취재력, 마감분위기에 그 마음이 그대로 녹아난다. 기사를 보더라도 섭외부터 영 마뜩치가 않다. 마감하기에 급급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섭외를 위한 통화를 본의 아니게 엿들어보면 전혀 섭외의지가 묻어나질 않는다. 목소리는 개미와 통화하는 것 같다. 한두 번의 취재거절에 끈질김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면 한동안 인터넷으로 취재원을 찾느라 머리를 쥐어짠다. 섭외하려는 목소리부터 자신감이 없으니 어느 취재원이 흔쾌히 인터뷰를 승낙하겠나. 그것도 초면에. 자신의 스케줄을 비워가면서 취재에 응할 수 있을 정도의 명분과 신뢰를 취재원에게 전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경력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간절해라(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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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6 - [잡지기자 클리닉] - 경력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간절해라(2)




by 허니문 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