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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Zine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사례에서 본 대중의 공정성 신념

(사진의 인물은 이 포스팅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책을 읽다가 절차적 정의(Processdural Justice)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즉, 공정성에서 우리의 비이성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말인데요, 이 사례는 우리가 공정성에 대해 얼마나 뿌리 깊은 신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지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프랑스판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백만장자 퀴즈쇼)>에 출연한 앙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앙리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수천 명의 신청자 중에서 이 백만장자 퀴즈쇼에 출연합니다.

 

이 퀴즈쇼는 어느 나라에서 진행되든지 규칙은 동일합니다. 출연자들은 객관식 문제를 맞혀야 하는데, 걸린 상금액이 커질수록 난이도도 단계별로 높아집니다. 앞 부분 문제들은 늘 점수따기식 문제들로 출제되고, 만약 출연자가 답변을 모를 경우 찬스를 활용할 수 있다. 찬스는 1) 친구에게 전화걸어 물어보기 2) 객관식 선택지 개수 줄이기 3) 방청객의 의견을 물어보기 등이었습니다.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도 이 퀴즈쇼에 출연해 상금을 획득했다고 하네요.)

 

앙리가 막힌 문제는 "다음 중 지구 둘레는 도는 것은 무엇인가?"였습니다. A. 달 B, 태양 C. 화성 D. 금성

 

스튜디오에는 불길함과 긴장을 즐기는 듯한 묘한 음악이 선을 깔아줍니다. 앙리는 제한 시간이 임박해지자 구조의 손길을 보냅니다. 그러고는 방청객의 의견 물어보기를 선택합니다. 방청객 중 몇 몇이 오답을 말할 수 있어도 집단지성에 의한 방청객 전체의 의견은 틀릴 리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앙리는 곧 공정성에 대한 인간의 비이성적인 지각이 의사결정을 극적으로 뒤흔들어놓는다는 사실을 뼈아픈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곧 방청객의 투표가 시작되자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사회자도 "제가 보기에는 답변이 두 갈래로 나뉜 것 같군요."하고 놀라워했습니다.

 

 

A. 달 42%         B. 태양 56%

 

 

앙리가, 혹은 방청객들이 과학시간에 졸았든 갈릴레오가 모두 아니든 어쨌든 방청객 결과는 이렇게 나왔고 앙리는 역시 다수였던 'B. 태양'을 선택합니다. 방청객 사이에서는 억지로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방청객들은 모두 태양에 버튼을 눌렀던 것일까요?

 

이 퀴즈쇼의 방청객들을 흔들어 놓은 것은 '공정성'이라는 규칙에 대한 준수 의지였습니다. 즉, 기초적인 천문학도 모르는 앙리가 정말 100만 유로를 받는다면 이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이었던 셈이죠. 방청객들은 그렇게 쉬운 문제의 정답도 맞히지 못하는 앙리가 자신들의 도움으로 게임을 계속 진행한다는 사실은 공정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틀린 답을 선택한 것이죠.

 

한 가지 더, 공정성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있습니다. 어느 날 독일에서는 낯선 사람들을 무작위로 두 명씩 짝지어 별도의 방에 배치한 후 10달러를 주며 나누는 방법은 알아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서로 말을 걸 수도, 동전을 던질 수도, 협상을 할 수도 없지만 누구든 한 사람을 무작위로 정해주고 그 사람이 돈을 어떻게 나눌지 결정하도록 한 것이죠. 그렇게 나눈 돈을 파트너에게 보여준 후 파트너가 수긍하면  두 사람은 각자의 몫을 챙겨갈 수 있겠지만, 거절하면 두 사람은 빈손으로 방을 나와야 합니다.

 

나누는 방법은 가장 적절하게 반반씩 나누면 무난하겠지요. 역시 예상대로 그렇게 나눈 실험자들은 대부분 손에 돈을 쥐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돈을 나누는 사람이 절반 이상을 가져가면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경우 파트너는 강한 분노를 느낍니다. 그러곤 아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빈손으로 나오는 것보다 한 푼이라도 갖고 나오는 것이 더 낫겠지만, 이들은 불공평한 몫의 돈을 제안받은 직후 자리를 뜹니다. 그들은 비록 빈손이었지만 그게 더 정의롭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연구진은 돈을 올려 100달러로 진행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돈을 컴퓨터, 혹은 아이가 나눈 일에 대해서는 크게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컴퓨터나 아이가 부당한 제안을 해도 파트너들은 개의치 않았다네요.

 

과정에 대한 공정성과 신념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였습니다. 역시 정의(?)는 살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