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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Storytelling

세상을 바꾸는 황당한 아이디어의 잔치,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을 아시나요?

"하찮은 아이디어라고요? 그것이 오늘의 당신이 편리한 생활을 하는 이유입니다"

 

이그노벨상 제정한 마크 에이브러햄스(사진제공=SBS)

 


생전 스티브 잡스가 말했죠. “세상을 바꾼 그 어떤 아이디어라도 처음엔 모두 황당했다”고요. 남들이 그게 뭐냐고 손가락질 할 때도,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아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이는 그보다 한 수 더 떴습니다. 아예 소위 ‘엽기 노벨상’ ‘괴짜 노벨상’이라 부르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을 제정한 것이죠. 한 마디로 괴짜상입니다.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그 상을 제정한 장본인입니다.

 

이 상은 물리, 문학, 평화, 환경보호 등 열 가지 분야에서 획기적이고 이색적인 연구업적을 이뤄낸 이를 수상하며 기념 상패는 주지만 상금은 없어요. 시상식은 매년 미국 하버드대 샌더스홀에서 열리며 실제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그노벨상의 시상을 돕습니다.

 

질문. 심사위원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마크 에이브러햄스 수상자는 시상하는 순간까지 비밀로 부쳐진다. 시상식에서 수상자를 한명 한명 호명하면 한 명씩 일어나 단상에 오르고 반대편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도 한 명씩 올라온다. 무대 한 가운데서 만나 서로의 눈을 쳐다보는 그 순간은 마치 우주의 양 끝이 만나는 짜릿함이 있다. 서로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웃게 된다.


그는 스스로도 유머 과학잡지 ‘기발한 과학연구(AIR)’를 통해 수십 년 동안 황당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담은 잡지인데 그가 이 잡지를 배포하는 방법도 독특합니다. 갑자기 책을 대중 앞에 집어 던집니다. 아무리 괴짜상을 제정한 장본인이라고 해도 책을 던질 줄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요. 그런데 청중의 반응이 더 우낍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한두 명씩 다리를 꼬기도 하고, 옆으로 비스듬히 앉으며 그의 얘기를 각자 편한 자세로 봅니다. 선입견이나 감정을 무장해제 당하는 것이죠. 그는 늘 이런 식입니다. 웃기기보다 생각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합니다.

 

질문. 개인적으로 어떤 수상작이 마음에 드나.


마크 에이브러햄스 물론 굉장히 많다. 매년 열 개씩 20년을 봐왔으니. 부득이 그중 하나를 꼽자면 트로이 헐터비스라는 캐나다 남자를 들 수 있다. 정말 특이한 것이, 그는 숲 속에서 회색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몇 년 간 방호복을 입고 실험했다. 실험이 더 커져서 나중에는 야구방망이로 맞아보기도 하고, 심지어 지프차 한 대가 시속 40마일로 달려와 그를 열일곱 번이나 치지만 그는 멀쩡하게 살아있다. 살신성인인 셈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봅시다. 과연 어떤 연구들이 이그노벨상을 수상했을까요. '단체사진 찍을 때 눈 감는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게 하려면 몇 장의 사진을 찍어야 할까' '딱따구리가 두통을 앓지 않는 이유는 뭘까' 듣기만 해도 피식~ 하고 큭큭 웃음이 나오는 이 연구는 실제 이그노벨상을 받은 연구사례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이그노벨상 선정기준은 뭘까요.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진제공=SBS


“실제로 사람을 웃게 하는 것인지를 봅니다. 그 다음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인지 중요하게 따집니다. 작은 생각의 발로가 나중에 큰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어요. 어떤 연구든지 그 대상만으로 최악이냐 최고냐 가치를 매길 수가 없어요.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는 모두 처음엔 황당하고 웃기지요.”


 

만약 이 글을 보고 계신 당신이 브래지어로 얼굴 마스크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심사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 연구가 그 어떤 상이라도 수상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실제로 비상시를 대비한 이 연구는 ‘브래지어 방독면’으로 2009년 이그노벨상 공중보건상을 받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 주인공인 우크라이나 출신 과학자인 옐레나 보드나르 박사의 이 아이디어는 나중에 특허까지 받았는데요, 어쩌면 더 황당할 수 있는 ‘자석을 이용한 개구리 공중부양 연구’로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받은 두 명의 수상자 중 한 명인 영국 멘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는 2010년 그래핀 소재 연구를 통해 노벨상(이그노벨상이 아님) 물리학상을 받은 바 있어서 놀랍습니다.

 

질문. 이그노벨상은 단지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게 하는 것 같은데.


마크 에이브러햄스 맞다. 그것이 목표다. 그러려고 지금껏 노력하는 것이다. 적어도 일 년에 열 개는 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그 수상작 중에는 좋은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다만 이 수상작들이 세상에 흥미로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한 과학자는 어느 날 스파게티 면 한 가닥으로 양쪽 끝을 잡고 서서히 구부렸다. 매번 세 조각 이상 부러지는 걸 발견했다. 그는 이점을 궁금해 했고, 여기에 물리적인, 수학적인 공식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이 발견으로 다양한 결과물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영화나 만화영화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이었다. 머리카락 한올한올이 정말 잘 표현됐다면 바로 그 스파게티 면 한 개에 골몰하던 과학자 덕분이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이그노벨상 수상자에 대해 사뭇 진지한 표정입니다. 연구 자체야 웃음이 나오는 소재와 연구로 임했을지라도 연구하는 사람은 단지 대중을 웃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에이브러햄스는 “연구는 학자의 기본이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연구하는 것이 인간사의 기본이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나무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네요.

그가 이그노벨상을 제정한 이유는 이처럼 대중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학자들이 공들여 연구하는 업적들이(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이대로 묻히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결과를 내보인 수많은 연구도, 사실은 그에 몇 배에 달하는 다양한 연구를 거듭 거듭한 발로인데요. 그는 창의성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곤 합니다. “창의성은 강제로 쥐어짠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오래 고심하다보면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고 말이죠.

 

질문. 한국은 대단히 빠른 첨단통신 기술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은 어느 지점까지 와 있다고 보는가.


마크 에이브러햄스 한국은 생각보다 촘촘하고 조밀조밀한 트렌드가 있다. 그래서 자칫하면 다양한 생각들이 튕겨나갈 우려가 있다. 이런 특징은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진행되는 것 같다. 역으로 한국에서는 다양한 생각이 그 만큼 빨리 퍼져나간다. 오히려 나는 이런 현상이 있어 왔기 때문에 그 많은 정보를 어떻게 대중이 걸러내는지 궁금하다. 한국에 살면 매일 새로운 정보에 의해 매일 공격 받는 느낌이다. 좋은 능력과 기술을 가진 한국의 인재 덕분에 나는 한국이 좋은 아이디어든 나쁜 아이디어든 많은 아이디어를 발굴해 내고 사람들을 웃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과 이그노벨상의 미래를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인 이그노벨상 수상자는 없는 것일까요. 현재 FnC코오롱 부장으로 재직 중인 권혁호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실제로 권씨는 향기 나는 캡슐을 정장에 내장한 후 이를 문지르면 절로 향기가 나는 연구로 1999년 한국인 최초로 이그노벨상 환경보호상을 받았습니다. 고기집에서 냄새가 옷에 밸 경우 유용할 것으로 생각되네요. 또 향수사용이 자연스러운 이에게 안성맞춤일테죠.


마크가 이그노벨상을 통해 이루고 싶은 건 한 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물이나 생각에 대해 결론을 내기 전에 스스로 먼저 생각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얼핏 보고나서 “저거 왜 저래?” 혹은 “저게 무슨 아이디어야. 황당하게”하고 선을 긋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죠. 더러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부정을 하지 말라는 뜻일 겁니다. 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그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조언하는데요. 그 말에는 “조금이라도 주관적인 판단이 우선해야 한다”는 전제가 자연스레 깔려있기도 하죠.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에이브러햄스는 그러한 모습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갈합니다. 학교에 배우는 많은 것이 지루하고도 너무 복잡해서 천재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과 함께 말이죠.


“아주 간단한 이야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돼요. 그리고 그것이 흥미가 있으면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되죠. 그 얘기가 재미없다면 그 분야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 세상 자체를 색다르게 보는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도 관심 없던 것에 대해 눈길이 가고 신경이 쓰이죠. 이런 것들이 제 잡지(‘기발한 연구연보’)에 실리고 이그노벨상을 타게 됩니다.”


이처럼 이그노벨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산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매년 약 9,000명의 후보가 이그노벨상을 신청합니다. 실제 노벨상이 아님에도 대중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매년 열 개 업적을 선택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도록 하는 것이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정말 웃기고 생각하게 만드는 열 가지 말입니다.

 

질문. 아마 당신이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잘 알지 못 하겠지만, 이상적으로 여기는 교육방법에 대해 듣고 싶다. 한국은 그간 입시와 암기위주의 교육이 주였다. 이런 교육방식이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될까.


마크 에이브러햄스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지금 그 교육방법은 의심할 바 없이 매우 좋다. 물론 그것이 전부가 되면 문제가 된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실제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웠던 것들과 다른,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개개별로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관은 지금의 그 암기식 교육과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는 기회의 조합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봉착하게 되면 누구나 이 난관을 해쳐나가야 한다. 그 경험을 쌓아야 한다. 누구나 그 때가 되면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갖게 된다. 때문에 배움도 중요하지만, 어떤 학교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천재가 나오지 않는다. 혼란스럽고 바보스러울 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도 요청하면서 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