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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침몰_고마스 사쿄

 

 


"소련, 한국, 중국 등 일본과 제일 가까운 나라에 마음대로 피난갈 수 없다니 딱한 일이군"

한 위원이 중얼거렸다.

"그러기에 그런 나라들과 좀더 일찍부터 우호관계와 상호교류를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메이지 이후로 우리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들을 적으로 삼아왔어요. 경제성장이 아니면 군사침략을 일삼았고 냉전왹에 말려들거나 군사기지를 두었소 (중략) 단 한 번이라도 선린외교를 자주적으로 전개해 본 일 있소? (중략) 스스로 아시아의 고아가 되게끔 행동해왔으니 자승자박인 거요." -하권 155p-


이날, 3월 12일 오후 1시 11분 수상의 국회연설이 한창이던 때 호오에이 화구의 바로 밑인 해발 2,500여미터 지점인 산중턱에서 후지산의 대폭발이 시작됐다. 맨 먼저 남동쪽 기슭 2,700여미터 지점에 있는 측화산인 호오에이 산이 공중으로 날아갔고, 이어 고덴바 방면 산중턱에서 차례차례로 20여개의 화구가 터지더니 일제히 가스, 재, 화산탄을  품어내기 시작했다. 호오에이 4년(1707년)이 대폭발 이후 2백 수십 년만에 후지 휴화산이 대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권 147p-


일본침몰.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사뒀다가 읽지 못 했는데, 며칠 전에 우연히 책상에서 눈에 띄어 일독했다. 1997년 국내 초판이다. 찾기 쉽지 않다. 당시 정가도 4,000원.

 

사실 누구나 일본이 특유의 섬나라인 점과 빈번한 지진 때문에 한 번쯤 '일본에 지진이 난다면, 혹은 가라앉는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비단 일본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 역시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오래된 문헌에도 간헐적으로 지진이 있었다는 사료가 적혀있다. 수년 전 민방위 때 들은 얘기인데, 우리나라도 서울에 진도 4 이상의 지진이 한 번 일어나면 거의 불바다가 된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있다. 또 1백년 내에 경기 북부에서 충청, 경주를 가로지르는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2년 전에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 적이 있는데, 그날 뉴스에서 경기도 부근에 지진이 약하게 일어났다고 보도한바 있다.

 

비록 이 책이 소설이지만 작가의 오랜 자료를 통한 통찰이 묻어난다. 작가 고마스 싸쿄는 유명한  SF작가이지만 모험소설에도 일가견이 있다. 이 작품은 그의 필력이 여실히 담겨 있다.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무려 원고지만 3,000여장에 달한다. 1964년 처음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무려 9년여에 걸쳐 원고를 썼고, 마침내 1973년 이 세상에 태어났다. 당시 판매부수만 상/하 합쳐서 400만 부.

 

책을 자세히 보니 지질학에 대한 전문용어와 해설이 많이 나온다. 작가는 집필하는 동안 이 부분에 대해 거듭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가령 '암장대류'는 '맨틀대류'로 바뀌는 식이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지만 실상 무시무시하다. 어느 날 일본의 먼 바다의 한 섬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해저탐사에 나선 지구물리학자 다도코로와 잠수함 운전기사 오노데라는 해저탐사 중에 거대한 지각변동의 조짐을 예상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무시한다. 마침내 일본의 거물인 한 노인과 내각수상의 지원으로 이 연구 프로젝트를 지속하지만 일본의 지진은 일어나고 만다. 그것도 3차에 한해서. 두 동강이 난다.

 

1억 2,000만 명이 넘는 일본인구에 대한 국제사회 원조와 망명신청 등에 관한 사항도 눈여겨볼만 하다. 다이 세계인구 40억 명 대비 일본인구는 2.8%. 고로 국가별 인구에 비례해 각국이 2.8%씩 일본국민의 망명을 허하자고 국제사회가 권유하지만 국가별 이해관계, 즉 국민총생산, 개도국, 내전 등을 이유로 쉽지 만은 않다.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골몰한다.

 

작가는 비단 일본이 시각으로 책을 써내려가지 않는다. 왜 일본이 그동안 한국,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해 모질게 대하고 반성의 의지가 없었는지, 그 벌을 이제야 받는다며 여러모로 회개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책에는 일본국민 망명선이 한반도에 다다르자 한국군대가 대포로 경계하는 모습도 묘사된다. 지극히 객관적인 서술이어서 책 발간 당시의 분위기로 봤을 때 작가가 상당히 굳은 지조가 담겨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지진. 이제 남의 일만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내진설계와 응급훈련 등 지진에 대비한 훈련이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나부터도 지진다면 어떻게 하냐고 누가 질문한다면 시원스레 답변할 자신이 없다.

 

이 책 한 권이 주는 메시지는 무시무시하면서,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할 숙제임에는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