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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Storytelling

봉사는 무슨, 그냥 함께 웃는 낙으로 사는 거지

30년 웃음 봉사인생, 원로 코미디언 한무

 

“봉사는 무슨, 그냥 함께 웃는 낙으로 사는 거지”

 

 

 

그를 섭외하기 위해 대여섯 번은 통화했나보다. 겨우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렸다. “네, 여보세요” “여기 새마을금고 사보팀입니다” 이렇게 맺어진 그와의 인연, 그리고 이야기. 1976년 MBC TV ‘청춘만세’로 데뷔, 올해로 37년째인 코미디언 한무는 30년 가까이 자신만의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일. 그가 전하는 참사랑에 대한 파노라마를 서울 중구 황학동 그의 자택에서 담았다.

 

 

 

 

 

 

 

늘 이웃과 잘 지내라 강조하신 어머니

 

그는 인터뷰 도중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자신은 결코 이 모든 것을 굳이 봉사한다고 결부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두 어머님이 주신 사랑과 관심을 다시 이웃과 나눌 뿐이라고 했다. 바로 원로 코미디언 한무 씨 얘기다.

 

“우리가 일곱 형제였어. 아들 넷에 딸 셋이었지. 광복 후 몇 년 안 돼 남한으로 월남했어. 그러다 몇 년 후 한국전쟁이 일어났지.(한무 씨는 1940년생이다) 얼마나 먹고 싶은 것이 많았겠어. 한번은 집에 고구마가 조금 있었는데, 아버지, 어머니 것까지 아홉 개가 밥상에 있어야 맞거든. 그런데 일곱 개만 놓여있는 거야. 그 때는 정말 부모님이 고구마 안 드시는 줄 알았어. 그러다가 수돗물로 배 채우시는 걸 보게 된 거야.” 그러면서 그는 “그 때만 생각하면 왼쪽 가슴(심장)이 아프다”고 했다.

 

모니터에서는 늘 웃고 웃기며 즐거워 보였던 이. 그 뒤엔 그러한 마음의 쓰라린 상처를 안고 살아온, 어쩌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늘 웃고 웃겨야만 했던, 서사적인 투사였을지 모른다.

 

사실 한씨는 홍은동 시절, 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 동네에 소문난 효자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다. 방송에선 시청자를, 집에 와서는 어머니를, 밖에선 이웃을 즐겁게 하는 막내아들이었다. 그가 그런 효심과 마음을 갖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늘 자식들에게 내리사랑을 베푸시며 “늘 형제끼리 잘 지내고, 이웃과도 잘 지내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그에겐 아예 종교가 됐다.

 

 

 

 

 

 

∎ 선의가 뜻밖의 오해 살 때 마음 아파

 

노인정, 장애인복지관, 교도소, 소년원 등 가릴 것 없이 그는 자신을 찾는 곳이면 없는 시간을 짜내서라도 기꺼이 그들을 찾았다. “얼마 전에 교도소에서 위문공연한 뒤 출소하면 연락하라고 수감자에게 연락처를 줬지. 정말 연락이 왔어. 그래서 기분 좋게 밥 한끼 했지(웃음).”

 

그는 30년 가까이 소리 소문 없이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에게 봉사했고, 그 공로로 2005년에는 연예예술상(한국연예협회 주관) 시상식에서 연예봉사상을 수상했다. 적어도 매주 한 번씩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있는 곳을 찾아 자신의 전매특허인 ‘원맨쇼’로 잠시나마 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장애인이 먼저 다가오기 전에 먼저 달려가 손을 내미는 것도 이젠 습관이 됐다.

 

한씨는 오지랖도 넓다. 시간 날 때마다 재래시장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좌판 깔고 물건을 팔 때면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웃돈을 쥐어주기도 하고, 지하철 노숙자를 보면 주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 기어코 몇 푼이라도 쥐어준다. 하지만 마음이 아플 땐 자신의 진심이 오해를 받을 때다.

 

 

 

 

 

“오래 전에, 춘천이었을 거야. 딱한 사정이 있는 아이를 알게 됐는데, 마침 춘천에 공연이 잡혀 잘 됐다 싶었지. 적지만 매월 정기적인 후원도 했었고. 어느 날 방송에 그 아이가 출연하면 더 많이 도움 받을 거란 생각에 출연을 요청했어. 그랬더니 그 아이가 그러는 거야. ‘아저씨, 방송에 저 이용하시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 내가 경솔했던 거지. 그 애의 자존심도 생각했어야 했던 건데.”

 

인터뷰 도중 개그맨 엄용수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역시 전북 익산에서 봉사활동 중이었다. “애도 정말 성실히 살아. 모두 건강했으면 하는데 말이지.”

 

한무 씨는 늘 즐겁다. 갈수록 자신을 찾는 이가 많아서다. 그런 그가 이달 말 경에 백내장 수술을 받는다. 십수 년 전부터 앓던 당뇨로 합병증 증세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이제 진정한 공인이 되셨다. 자신보다 이웃을 위해 건강관리에 더 힘 쓰셔야 할 것”이라고 말하자 한씨는 “그러잖아도 의사선생님이 ‘강남스타일’로 잘 해줄 것이라고 하셔서 마음은 편하다”며 웃었다.

 

진정한 공인이 된 코미디언 한무. 그의 봉사는 바로 ‘웃음의 나눔’이었다.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무조건 무조건이야!”

 

 

 

*MG새마을금고  사보 10월호

글. 허니문 차일드    사진. 송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