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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김재규 평전-

 

한 번쯤 제대로 알아야지, 공부해야지 했던 터였다. 마침 시국이 어수선할 때 페친 한 분께서 이 책을 공유하며 타임라인에 글을 하나 올리셨길래 마침 건대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딱 한 권 남아있던 이 책을 손에 넣었다.

 

<전태일 평전>부터 <이현상 평전>까지 여러 권 읽어봤는데, 이 책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피겠나 -김재규 평전->(이하 김재규 평전)은 처음 서두를 소설처럼 매듭을 푼다. 1978년 10월 18일 새벽 2시, 유신이 선포된 지 7년째 되던 해 어느 날. 김재규 일행(김재유와 박흥주 수행비서관)이 부마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헬기를 타고 부산으로 간다. 그곳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시위규모와 사람들을 두눈으로 목격하고서는 이를 이튿 날 새벽 박정희에게 보고하지만 묵살된다.

 

"각하, 제가 시위대 속에서 직접 들어가서 시위대의 성분을 체크하고 왔습니다. 노동자도 있었지만 사무직 종사자도 있고, 상인도 있었습니다. (중략) 시위대가 밀리면 시민들이 음식을 날라주면서 격려하고, 쫓기면 숨겨줍니다. 시위대와 시민이 완전히 한몸입니다. 어제 160명을 연행했는데 학생은 16명 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일반 시민입니다. 각하! 이번 시위는 일종의 시민봉기로 판단됩니다. 체제에 대한 저항과 정책에 대한 불신, 물가고와 조세 저항까지 겹처러 민란의 셩걱을 띠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김재규-

 

이때 차지철이 끼어든다. 

 

"데모한다고 자꾸 밀리면 앞으로 신민당 놈들하고 학생 놈들, 불순세력이 손잡고 무슨 요구를 할지 모릅니다.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쏴죽이고도 까딱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한 100만 명이나 200만 명 처치하는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이 차지철이가 탱크로 다 밀어버리겠습니다." -차지철 비서실장-

 

이후 김재규의 갈등하는 모습과 10.26 혁명이 일어나기까지의 상황을 자세히 보여준다. 그 다음에는 김재규의 체포와 함께 재판받는 과정을 마치 녹취풀듯 서술했다.

 

한 가지 의외의 상황인 건, 이 책을 본 후 관련 다큐멘터리 등 방송자료를 봤는데 거의 길가 시민들이 목놓아 울며 부모 장례 치르듯 하던 장면이었다. 분명 부마사태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영구 제명과 구속 등이 맞물려 국민 불만이 팽배했는데 어떻게 이런 의외의 상황이 나왔을까.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마 그때까지도 국부에 대한 존경과 지아비 같은 마음? 미워도, 그래도 우리의 국부에 대한 애잔한 마음의 표출이랄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한 나라의 왕도 아니고.

 

"그는 유신의 심장을 쏘았지만 자기 자신도 유신의 일부였다. 김재규 자신도 동시에 무너진 것이다. 박정희는 자기에게 권력을 부여한 원천이었다. 김재규의 머리는 유신에 항거했지만 김재규의 몸뚱이는 유신의 몸통이었다. 박정희의 죽음은 이런 김재규에게 충격적인 상실감을 안겼다. 김재규의 역설은 박정희의 죽음을 접하게 된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도 그대로 나타났다. 유신독재 정권의 폭압에 대한 국민적 저항과 최루탄 냄새가 전국을 뒤덮고 있는데,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갑자기 애도의 물결이 바로 그 거리에 넘쳐났다."

 

 읽다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안타까운 장면도 묘사되어 있다. 김재규가 거사 후 중앙정보부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갔다는 점, 그래서 자신의 지휘체계에 대한 수습과 혁명 후 대책에 대해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익히 알던대로 전투환과 노태우의 빠른 몸놀림으로 국정과 국군통수권은 대부분 전두환에게도 넘어가버렸다.

 

이후 김재규의 재판은 발빠르게 진행된다. 말이 3심이었지, 상식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있을 수도 없는 재판이 진행된다. 일단 김재규는 군인신분이 아님에도 군사법정(다만, 수행비서였던 박흥주는 당시 대령 신분이었기에 군인 1심재판으로 사형 확정)에 서게된다. 책 서문에는 "대한민국 법정이 그에게 부여한 죄목은 내란목적살인죄와 내란수괴미수죄였다. 김재규를 이런 죄목으로 사형에 처하도록 군사재판을 주도한 것은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김재규는 유신의 핵을 제거했고, 이후 자신의 마지막 유언처럼 "국민들이여, 이제 민주주의를 만끽하시라"하고 민주주의의 도래를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김재규 사후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 공백을 전두환이 차지함으로써 박정희 시절 유신 잔재세력들이 대부분 전두환에게 붙어버렸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재판정에서 김재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나는 체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이다"라고. 책에도 밝히고 있지만 그가 진정 자신이 대통령이 되려 했지만 왜 박정희 살해 후 육본으로 갈지, 중정으로 갈지 그 짧은 시간동안 고민했을까, 그리고 굳이 혁명 30분 전에 이르러서야 부하들에게 명령하고 총을 들고 직접 살해했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는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우발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재규가 박정희 살해를 자신의 집권까지 끌고 가려했다면, 전두환처럼 행동했어야 했다. 그러나 김재규는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 책의 중후반을 장식하고 있는 내용, 즉 법정에서의 내용은 다큐멘터리에서 공개된 실제 육성과 같다. 거의 사실(팩트)로 썼다. 물론 항간에는 차지철과의 2인자 싸움에서 밀렸다느지, 미국의 사주를 받았다느니 얘기가 많다. 확인할 수 없으니 생각하는 이 자유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건 김재규는 자신이 집권하려는 계획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부분에서는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 실제 증언과 재판기록에서 많이 드러난다. 이것은 법정에서만 자백한다고 해서 드러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함세웅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친일 반민족, 군부독재 반통일 분자들은 침략국 일본이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고, 벅정희 유신독재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지금도 펼치고 있다. 이것은 강도살인자가 내놓은 몇 푼의 돈을 자선이라고 예찬하는 것과 같은 모순이다. 김재규 장군은 부마항쟁의 원인이 개발독재를 통해 재벌중심 경제체제에 희생당한 서민들의 분노라고 법정 진술했다. 지금 우리 시대 가장 심각한 양극화 문제는 개발독재시기 노동자와 사회구성원 모두를 희생으로 삼아 재벌에게 인적, 물적 지원과 토대를 만들어준 박정희 군부독재의 불의한 정치 때문이다."

 

또 이 책의 작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열변한다.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는 비 오는 동안 방안을 점령한 곰팡이와 같다. 과거의 군가권력이 저지른 폭력을 직시하고 그것이 현재 드리우고 있는 그림자를 몰아내야만 한다. 잘못된 과거사는 고통스러워도 다 꺼내어 햇빛에 말려야 한다,. 그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 당분간은 혼란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시기를 견뎌야 좋은 날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밖에도 많은 실체적 진실을 담아내고 있다. 한 달에 열 번도 더 있는 연회와 박정희의 여성편력, 그의 가려진 뒷 이야기 등. 사육신은 충신으로 인정받기까지 2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물론 김재규의 박정희를 향한 살해가 정당화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의 전후 과정과 이념, 독재와 유신의 폐해, 부조리 등을 다시 현대에 이르려 면밀히 재검토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길 바라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