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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ing Man

하얀거탑 전 4권_야마자키 도요코 저

 

 

자이젠 고로라는 이름의 한 외과의사의 권력과 명성, 영광을 갖기 위한 몸부림부터 한 순간에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하얀거탑>. 2003년 일본 후지TV에서(21부작), 그리고 2007년 한국 MBC TV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다. 

 

사실 이 책은 오래 전에 사두고 일본, 한국 드라마를 먼저 보는 바람에 책은 이번 기회에 읽게 됐다. 그것도 일본 드라마를 한 번 더 보고나서 원서와 어떤 면이 다른가를 찾기 위해서라고 할까. 대략적인 이야기와 줄거리는 다른 부분에서 많이 언급됐으니 여기서는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주인공 자이젠 고로는 어려서 어머니만을 모시고 홀로 고학하여 자이젠 마다이치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간다. 이때부터 이름도 구로가와 고로에서 자이젠 고로로 바뀐다.

 

오로지 환자만을 살리고자 하는 그의 초심이 어느 순간에 자신의 야망에 짓눌려 자신이 모시던 아즈마 제1외과 교수와의 마찰이 빚어지고, 후에 우가이 제1내과 교수 겸 의학부장과 장인 자이젠 마다이치 등의 힘으로 교수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의료소송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자이젠 고로와 그의 대학 시절 친구였던 사토미 슈지와의 갈등은 물론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과 마찰이 빚어지고, 자신을 따르더 야나기하라라는 신참 의사의 진실 고백 등에 의해 마침내 그는 1심과 달리 2심에 패하며 자신의 마지막 생명의 끝을 향해 내달린다. 암의 최고 권위자라 불렸던 그가 위암에서 폐암으로 번진다. 뒤늦게 자이젠의 옛 상사였던 아즈마 교수가 자이젠을 위해 메스를 잡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고 되고. 차츰 자이젠 고로는 간성혼수가 이어지며 정신이 혼탁해지며 마지막 숨을 거둔다.

 

과연 나라면, 사토미 슈지처럼 자신의 거취는 물론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도 선뜻 진실을 위해 증언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라면, 사사키 요시에처럼 장사가 거덜나고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과 수년이라는 재판 시간을 감내해가며 의료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까?

과연 나라면, 세키구치 변호사처럼 집념과 사명감을 갖고 1심 기각을 딛고 2심을 위한 항소를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라면, 야나기하라처럼 1심 때처럼 거짓을 증언하면 모든 부와 학위가 보장되는 순간에도 2심에서 양심선언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라면, 제자 자이젠 고로를 위해 기꺼이 메스를 든 아즈마 교수처럼 제자를 위해 수술대에 설 수 있을까?

 

처음 이 책을 읽어나갈 땐 의료소송의 구체적인 오진과 세세한 재판 상황을 써내려가려 했지만, 시대에 따라 수술법이 진보되고 다양화되기에 그런 이야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 내가 간간히 나 자신을 대입하며 느낀 점을 적어내고 싶다. 과연 나라면, 그들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내 이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고 농락하는 우가이 교수나 자이젠 마다이치 역할은 쉽게 할 수 있겠지만, 대의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상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은 쉽지 않을까 싶다.

 

물론 드라마와 책은 이야기 전개에 중간 요소요소에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니, 차이가 좀 있다고 할까. 일드에서는 자이젠 고로가 아즈마 교수 퇴직일에 맞춰 수술하다가 이것이 의료사고의 계기가 됐다면, 책은 그가 국제외과학회에 나가기 위해 거기에 집중하다 의료사고가 난다. 또 책에는 학회 후 일본 외과학회이사 자리에 출마하는 이야기도 나오고(이 분량도 꽤 된다.), 2심 재판의 중요한 증거가 되는 사시키 요오헤이(사망자, 사사키 요시에의 남편)의 위암 표본병도 등장, 압수되는 장면도 언급된다.

 

또 하나, 드라마에서는 자이젠 고로와 사토미 슈지 간의 진한 우정과 아쉬움도 이따금 양념처럼 묘사되는데, 책에서는 그냥 차가운 남남처럼 그려지지 서로를 그리워하거나 달래는 장면은 없다. 특히 자이젠 고로 입장에서. 일드에서는 그가 사토미의 임상 실력을 우수하게 평가해 추후 암센터 완공시 외과 교수로 스카우트하려는 장면도 나오던데.(물론 사토미가 이를 정중하게 반려하지만.)

 

마지막 장면도 압권이다. 아마 남자든 여자든 시청자 누구든 이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본다. 특히 한국 드라마에서는 원서에 맞게 신문을 거꾸로 들고 장준혁이 보는 시늉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부터 온 몸에 전이된 암으로 인해 간성혼수가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국내판이 원서에 세밀한 구성면에서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또 원서에서는 자이젠 고로가 이미 두 아들의 아버지이며, 그의 아내 역시도 드라마처럼 그렇게 차갑지는 않다.

 

지금은 일본 1978년 판 하얀거탑을 자막 없이 유튜브로 보고 있다. 당시 일본 병원 배경에 맞췄기에 원서 분위기와도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오프닝 음악도 조금 언밸런스 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듯하고. 

 

명품 드라마에, 명품 책. 그 기준이 따로 있을까? 내게 사유할 꺼리를 던져주면 난 잠시 걸음을 멈춰서서 한 번쯤 살아온 날을 되돌아 볼 계기를 준다면 그것이 최고가 아닐까. 하얀거탑, 두고두고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다. 야마자키 토요코 책 정주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