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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디자인하라

[인터뷰를 디자인하라] 링컨의 반대심문에서 보는 질문법

"3미터 정도가 아닙니까?"

링컨의 반대심문에서 보는 질문법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처음 잡지사 기자로 있을 당시, 초면의 어떤 분이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광고를 하고 싶다는 얘기와 함께 본인이 이해관계로 있는 곳의 취재를 요청했다. 나는 그곳을 취재해 인터뷰를 게재했지만 광고는 깜깜무소식이었다. 바빠서 그랬겠지, 하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너무 시일이 많이 지체됐다. 광고는 둘째 치더라도 이유나 듣고 싶었다. 메일을 보내자 전화가 왔다. 그는 "광고는 생각해보겠다. 그 때도 그런 취지였는데 내가 확실히 말을 못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더 이상 어떤 얘기도 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광고를 하고 나서 진행하든, 계약서를 쓰든 확실히 하지 못한 내 실수였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히고설킨 비즈니스 세계를 거닐다보면 그때그때 제대로 얘기를 풀어가지 못해 정작 뒤돌아서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 때 묻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지나간 후다. 얘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강압적으로 풀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문제의 매듭은 더욱 조여질뿐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대답을 얻어내려면 이러한 성급함과 두서없는 대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내게 유리한 카드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상대가 느슨하게 대답할 수 없도록 퇴로를 끊는 질문이 필요하다. 질문이란 커뮤니케이션의 한 축이기도하지만, 상대를 내 틀에 가두는 기술이기도 하다.

 

내게 유리한 증거가 있어도 바로 오픈해 공개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흔히 ‘오리발’을 내미는 일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사전에 상대의 퇴로를 막은 후 증거를 내미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친구들에게 “그건 저번에 네가 내게 준다고 했잖아?”라고 물었을 때, “내가 언제?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하고 부인해버리면 끝이다. 이럴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질문력이다.

 

한 사람은 공격수, 한 사람은 수비수다. 두 사람 간의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며 오직 질문과 대답만으로 대결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고 가정하자. 나는 과연 상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물어서 내가 원하는 답을 얻어낼 수 있을까. 여기 ‘링컨의 반대심문’이 있다. ‘링컨의 반대심문’은 따로 일화를 소개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 질문법이다. 상대의 퇴로를 사전에 막아 원하는 답변을 얻어내는 특징이 있다.

 

링컨 : 그러면 당신은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피해자와 함께 있었고, 피고가 피해자를 권총으로 직접 쏘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지요?

증인 : 예. 그렇습니다.

링컨 : 당신은 그들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까?

증인 : 아니요. 한 6미터쯤 떨어져 있었습니다.

링컨 : ㉠3미터 정도가 아닙니까?

증인 : 아닙니다. 6미터 맞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링컨 : ㉡그곳은 시야가 확 트인 벌판이었습니까?

증인 : 아니요. 숲 속이었습니다.

링컨 : 어떤 숲이었습니까?

증인 : 참나무 숲이었습니다.

링컨 : ㉢8월이었으면 숲이 많이 우거졌겠습니다.

증인 : 네. 그렇습니다.

링컨 : (범행에 사용됐다는 권총을 증인에게 보여주며) 이 권총이 당시 사용된 총 맞습니까?

증인 : 그런 것 같습니다.

링컨 : 피고가 이 권총으로 피해자를 쏘는 모습이 보였습니까? 이 총열을 어떻게 잡고 있었는지 말입니다. 전부 보였습니까?

증인 : 네.

링컨 : ㉣범행 현장은 집회 장소에서 가까웠습니까?

증인 : 약 1.6킬로미터쯤 떨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링컨 : ㉤전등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증인 : 집회장 목사님 자리 옆 위쪽에 있었습니다.

링컨 : 1.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었다는 말씀이죠?

증인 :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링컨 : ㉥그런데 당신은 범행 현장에서 피고나 피해자가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 했습니까?

증인 : 네. 그런 곳에서 왜 촛불이 필요합니까?

링컨 : ㉦그러면 당신은 피고가 어떻게 피해자에게 권총을 쏜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증인 : 달빛 때문에 볼 수 있었습니다.

링컨 : 밤 10시에 총을 쏘는 모습이 보였나요? 전등이 달려 있는 곳에서 무려 1.6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참나무 숲속을 말입니다. 또 권총 총열이 보였습니까? 피고인이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을 확실히 봤습니까? 6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말입니다. 달빛 하나에 그런 모습이 전부 보였다는 말입니까?

증인 : 네. 전부 보였습니다.

 

이후 링컨은 자신의 가슴 속에서 파란 표지가 달린 달력을 꺼내 증거로 제출했다. 그리고 서류 한 장을 배심원과 재판관에게 보여줬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 달은 새벽 1시에 떠올랐던 것이다.

 

물론 이 링컨의 반대심문을 보고 혹자는 “그러면 앞에 모든 군더더기를 빼고 ‘그날 밤 10시에 어떻게 피고인이 총을 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까?’하고 물으면 되는 것 아닌가?”하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면 증인이 “달빛으로 봤습니다”하고 대답할 것이고 링컨이 바로 달력을 증거로 제출하면 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아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달빛으로 봤다는 건 제가 착각한 것입니다. 집회장의 전등 빛이 밝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혹은 “피고인이 촛불을 들고 있어서 볼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이 도망갈 때 가지고 갔습니다”하고 돌아가면 그뿐이다.

 

그러나 위 예에서 볼 수 있듯 링컨은 사전에 모든 퇴로를 차단했다(㉡에서 ㉦까지). 목격자와 피고인의 거리, 집회장부터의 거리, 전등과 촛불, 달빛 유무 등을 확인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중에 증인이 변명이나 궤변을 늘어놓으며 도망가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이 질문의 백미는 ㉠에 있다. 증인의 심리적 상태를 이용해 유도 질문을 했다는 사실이다. 심문을 보면 알겠지만 증인은 목격 당시 거리가 가까울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링컨은 이를 교묘히 이용해 전혀 반대의 질문을 함으로써 증인이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게 만든다.

 

링컨이 “6미터 정도가 아닙니까?”하고 물었다면 증인은 “아니요,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하고 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링컨의 질문이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의도라고 생각해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대답한 것이 오히려 함정에 걸려 불리한 답변을 하게 된 것이다. 어찌됐든 링컨은 반대 심문 초반부터 “난 거기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심리적 압박을 시도했다.

 

이러한 유도 심문은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을 경우에 효과적이다. 사실 궁금한 건 A이지만 이를 알아내기 위해 B를 묻는 식이다.

 

6월 항쟁의 불씨가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다. 처음 이 사건을 보도했던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는 우연히 한 검찰 간부가 “경찰, 큰 일 났어”라고 했던 한 마디에 단서를 잡고, 마치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그러게 말입니다. 경찰들이 요즘 너무 기세등등했거든요”하고 받아친다.

 

그러자 그 검찰 간부는 “서울대생이라지? 아마? 그 대학생이?” 그 말에 신 기자는 한 술 더 떠 “어디서 죽었대요?”하고 물었고 “남영동이라던가?”하는 답이 귓가를 울렸던 것이다.

 

이렇듯 질문은 자신이 알고 싶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묻기보다, 눈치껏 교묘히 숨기고 B를 논점으로 만들어 원하는 답을 듣는 것이 질문의 요령이자 핵심이다. 질문 자체가 어떤 핵심을 위한 틀을 던지는 것이기에 이런 유도 질문과 퇴로를 사전에 막는 질문법은 때론 예상 외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