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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디자인하라

[인터뷰를 디자인하라] 실리를 챙기는 직장인 질문법

"괜찮습니다. 종종 이런 일이 생기곤 합니다. 다시 보내드려도 될까요?"

실리를 챙기기 위한 직장인 질문법

 

앞서 설명했던 ‘링컨의 반대심문’이 상대의 퇴로를 사전에 막아 결정적인 증거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고 진실을 확인하는 방법이지만, 극한 상황까지 닥친 경우가 아니라면 실제 비즈니스에서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이론은 이해할 수 있지만, 죄의 유무와 사실 확인을 우선적으로 다뤄야 하는 법정과 실리를 우선으로 하는 비즈니스, 특히 직장은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에서 구두계약을 위반하거나, 사람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실무 담당자 간의 약속이 깨질 수 있는 부분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가령, 내가 특정 필자에게 원고를 하나 받는다고 하자. 혹은 중요한 세미나에 특별 강사로 초청했다. 그런데 상대의 사정이 있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했을 때 링컨의 반대심문으로 상대를 몰아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링컨의 반대심문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는 건 어떨까. 적당히 실리를 취하고 상대에게도 숨을 쉴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다. 즉, 도망갈 길을 하나 내주고 그 즈음에서 마무리한다. 6대4 정도면 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가급적이면 상대와 함께 살고 기도 살려주며 실리를 조금만 얻어내는 전략이다.

 

한 밤중에 도둑이 들었다고 가정하자. 선택은 두 가지다. 당장 도둑과 맞닥뜨려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인기척이나 소리를 내서 스스로 도망가게 할 것인지 순간 고민해야 한다. 가급적 이런 상황에서는 적당한 상황만 연출한 후 도둑이 물러서도록 하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

 

손자병법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위사필궐(圍師必闕), 즉 포위된 적은 탈출구를 열어줘서 도망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그럴 경우 마지막까지 목숨을 건 상대의 방어로 인해 오히려 이를 포위한 아군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혹은 상처뿐인 영광만 남을 소지도 충분하다.

 

기업 간의 비즈니스와 노사관계는 물론 직장 상하간의 관계 역시도 상대가 빠져나갈 곳은 어느 정도 열어주고 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직장생활에서는 상대보다 내 힘이 월등하다고 해도 오히려 적당히 압박하며 오히려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고 세워주면 그것이 오히려 승자의 여유가 된다.

 

내가 신입 기자였을 때다. 기자 생활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단연 데드라인(Dead Line, 마감일을 의미)이다. 아무리 기사가 좋아도 마감일을 지나버리면 휴지조각이다. 또 선배 기자들에게 깨지는 건 당연지사. 어쩌다보니 마감에 늦어버렸다. 기사 한 꼭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 저 기사 하나 못 썼는데 어떡하죠?”

“빨리 편집장님께 말씀드려. 대체 기사라도 빨리 생각하라고.”

정말이지 당시 편집장님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감 즈음에 신입 기자가 데스크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다면 이유는 두 가지다. 퇴사 의사를 내비치든지, 마감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실직고하든지. 난 후자였다. 그런데 편집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때, 그 꼭지 있잖아. 탈고 했어?”

기자들 원고를 모두 체크하고 있으니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쓰질 못했습니다. 바로 작성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맡은 원고를 구멍 내면 어쩌자는 거야. 다른 선배들은 다 써서 냈잖아.”

“……”

“연락이 잘 닿지 않았던 거야?"

"네. 죄송합니다."

"그래. 일단 마감부터 하고. 다음부턴 그런 일 없도록 하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신입 기자가 무슨 변명이 필요하랴. 못했으면 못 한 거다. 그런데 오히려 신입의 애로사항을 이해해주고 다음에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이해해줬다. 나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평생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직장에서는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제로섬(zero-sum)게임 전략으로는 당장은 승리할 수 있어 기쁠지 몰라도 그 승리가 성공은 아니다. 그 대상이 나와의 동료일 수도 있고, 거래처 손님일 수도 있다. 특히 사람 일은 단 하나의 앞길도 모르기에 포지티브섬(positive-sum) 전략을 우선하는 것이 더 낫다. 비즈니스는 모순의 예술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 다시 내일의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관의 협상 수칙과도 유사하다. 외교관 협상 수칙 1번은 ‘상대를 믿지 말라’다. 그러나 수칙 2번은 ‘상대와 신뢰관계를 형성하라’다. 믿으라고 해놓고서는 믿지 말란다. 이 무슨 얘기일까. 논리적으로 봐도 모순이다. 외교 협상에서는 상대를 무조건 믿어서는 국가의 운명이 송두리째 휘청거릴 수도 있다.

 

또 상호 신뢰가 바탕 하지 않으면 서로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힘들다. 훌륭한 외교 협상관은 99%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굳이 100%의 완승을 추구 하지 않는다. 그저 ‘51대49’면 족하다. 직장생활도 그런 면에서 외교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항상 자신이 좋은 것만을 가질 수는 없다. 때로는 적당히 양보하며 조금 손해 보는 듯한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도 많다. 내가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 가져도 큰 영향이 없는 것, 내가 살 때 큰 돈 들이지 않고 하나 더 살 수 있는 것, 남들이 충분히 인정하고 있기에 내가 동료들에게 공을 돌려도 되는 것, 남들이 직접적으로 그를 공격할 때도 때론 적당한 질문으로 그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면 그 은혜는 훗날 내게 복리로 돌아온다.

 

법정은 승패를 가늠한다. 죄가 있거나 죄가 없다. 그러나 직장 생활은 다르다. 때로는 적당한 질문, ‘내가 그 사실을 적당히 알고 있다’는 눈치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다. 직장 생활이라는 큰 숲을 볼 수 있다면 질문 하나도, 비즈니스 하나도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어지간하면 실리를 챙기고 상대에게 도망갈 수 있는 터주는 것이 좋다. 특히 직장 생활은 특정 문제를 해결한 후에도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기자와 홍보대행사간에 흔히 있는 일이다.

 

홍보대행사 : 기자님. 안녕하세요. 혹시 지난 주 금요일에 보내드렸던 기자간담회 메일 받으셨어요? 프레스(Press)석이 제한적이라 저희가 체크를 해야 해서요.

나 : (받았으면서도 깜빡했다.) 받지 못했는데요. 제가 확인을 못 했나 봐요. 죄송합니다.

홍보대행사 : 괜찮습니다. 저번에 동일한 주소로 보내드렸는데 뭔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괜찮습니다. 종종 이런 일이 생기곤 합니다. 다시 하나 보내드릴까요?

나 : 네. 감사합니다. 확인하고 바로 회신 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은 매일 관련 보도자료를 많게는 수통에서 수십여 통을 받는다. 대부분 메일 제목만 확인하거나, 특별히 관심 있는 이슈가 아니고서는 모두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자는 홍보대행사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모든 정보의 시작은 그들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기자 간담회도, 인터뷰이 소개건도 마찬가지고. 물론 기자와 홍보대행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 한하겠지만 홍보대행사의 열정과 노력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런 상황에서 메일이 와도 해당 날짜에 선약이 되어 있거나, 혹은 깜빡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홍보대행사 측에서는 자체 리스트에 오른 미디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해당 정보를 제공하거나 기자간담회 소식을 알리기도 한다. 이 때 기자는 정말로 확인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확인을 했지만 어떤 이유로 놓치는 경우가 많다.

 

또 참석을 했다가도 부득이한 경우에 불참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 같은 경우는 미안한 마음에 확인을 못 했다고 답하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는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기자들 이메일 주소를 특정 주소록에 저장하기 때문에 한두 명이 빠지기는 불가능하다), 일부러 모른 척하고 다시 보내주는 번거로움을 십분 감내한다.

 

나는 반대로 고마우면서도 문자 메시지로 감사하다고 답장을 모두 보내는 편이다. 그 홍보대행사 직원 분은 ‘나도 다 알아. 네가 놓친 걸. 그런데 괜찮아. 다시 메일 보내줄게’하는 마음으로 내게 퇴로를 열어준다. 그러면 나는 ‘고마워요. 퇴로를 열어줘서. 다음에 기회 되면 더 잘 게재해 줄게요’하고 서로 실리를 챙긴다. 나에 대한 악감정을 역이용하기 보다, 오히려 상대의 체면을 세워준다.

 

실리를 취하는 직장 생활의 질문 기술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상대의 긴장감을 잘 풀어주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기술은 십분 활용 가치가 있는 질문법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실리를 취하는 쪽이 승자이기에. 위 사례에서 승자는 단연 홍보대행사다. 그리고 나도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