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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_해리 G. 프랭크퍼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러분들은 애국심이 충만하고 리더십이 있고 사회에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서 힘을 합쳐 가야한다. 그런 동참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해달라." -2015. 8. 7 학군단 대표단과의 대화에서, 박근혜

 

"그런 아름다운 꿈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여기 있는 우리 어린이 모두가 갖고 있는 꿈도 꼭 이뤄지도록 응원하겠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2015. 5. 15 어린이날 꿈나들이 중에서, 박근혜

 

"국가가 가장 기본적 임무인 국민의 생명고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갖게 됐다." -2004년,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 중, 박근혜

 

"우리의 핵심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2015. 5. 12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이상의 모든 말은 모두 개소리(Bullshit)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교수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콘셉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불쉿(Bullshit!)!"

 

그렇다. 불쉿, 즉 개소리는 비속어다. 하지만 널리 통용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자주 사용하다보면 표준어로 채택될 여지도 있다.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해리 G. 프랭크퍼트는 자신의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를 통해 '개소리'와 '거짓말'에 대한 명확한 구분, 그리고 왜 거짓말보다 개소리가 위험한지 해답을 제시했다.

 

저자에 따르면 개소리는 헛소리나 거짓말과는 다르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위험하다. 개소리의 본질은 질리에 무관한, 즉 거짓이 아닌 가짜(phony)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된 이유다. 거짓말은 참인 것을 일부러 틀리게 말하는 것이다. 이 명제에 대한 진실은 누구나 진실값을 들이대면 된다. 또한 거짓말 하는 이도 참된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거짓말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과관계와 논리 등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더욱 편리하다. 투입대비 결과가 상상 그 이상이다. 가짜이기에 증명할 길도, 증명할 수도 없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개소리가 나중에 허위임이 밝혀져도 누구나 개소리로 치부해버릴 뿐이다. 도덕적인 책임과 민형사상의 소송도 필요 없다. 특정한 사실을 뒷받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상대를 기만하고 고의적으로 부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며 허세로 자신을 무장한다. 이를 벗길만한, 혹은 증명할, 요구할 방법이 없다. 대중은 개소리에 너그럽다. 거짓말은 종종 대중에게 모욕감이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개소리는 불쾌하거나 거슬리는 정도에서 그치며 어깨를 한번 으쓱하면 끝이다.

 

또 개소리는 들통났을 때 결과면에서 거짓말쟁이보다 덜 치명적이다. 우리나라 현재 정치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거짓은 아니지만 가짜다. 참된 것이 없다. 진리를 고려해야 할 책임 의식이나 소명이 없다. 그래서 개소리가 무섭다.

 

진실의 진위여부를 가리기에 좋은 것이 바로 '개소리'다. 바로 이 글의 맨 위에 예로 든 지문처럼 말이다. 저자는 "허세 역시도 개소리에 포함되며, 주로 광고나 홍보, 정치 등이 이 영역에 속한다"고 일갈한다.

 

저자는 "연설자는 이러한 개소리를 내뱉으며 이러한 진술이 자신에 대한 어떤 인상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것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책을 보면 개소리와 관련해 비트켄슈타인과 그의 러시아 과외 선생이기도 했던 파니아 파스칼(Fania Pascal)과의 재미있는 사례도 하나 꼽고 있다. 파스칼은 1930년대에 케임브리지에서 비트겐슈타인을 잘 알고 지내던 터였다. 어느 날 파스칼이 목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은 후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비트겐슈타인이 문병을 왔다.

 

파스칼 : (죽는 시늉을 하며) 마치 차에 치인 개가 된 느낌이에요...

비트겐슈타인 : (정색하며) 당신은 차에 치인 개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소(그는 이 말과 함께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왜 비트겐슈타인이 파스칼의 말에 진지하게 반론을 했을까. 물론 파스칼이 말한 의도는 개처럼 아프다, 몸이 그만큼 몹시 좋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비트켄슈타인은 그런 수사의 찬미보다 그녀의 부정확한 표현과 진술 때문에 정색을 한 것이다. 아픈 것이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개처럼 아픈 것은 증명할 길이 없다. 아니면 말고.

 

저자는 이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 파스칼을 꾸짖은 것은 바로 '생각 없음' 때문이라고. 그가 역겨워한 까닭은 파스칼이 심지어 자기 발언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즉, '최고의 섬세함을 기울여 공들여 만들어낸'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려 할 때 요구되는 제약에 성실히 따르지 않은 채 어떤 사태를 묘사했다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한 이러한 부분이 바로 멀리 보면 우리 정치인이나 주변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가 IS를 창설했다. 사기꾼 힐러리는 공동 창설자자. IS는 힐러리에게 MVP 상을 줄 것이다. 힐러리의 유일한 경쟁자는 버락 오바마다. 

 

어쩌면 우리는 뉴욕타임즈의 취재자격을 박탈해야 하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그들이 곤란해질 것이다.

 

 이것 역시 개소리다. 증명할 길이 없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그래서 개소리는 거짓말과는 달리 굳이 공들여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저자의 말대로 약간의 뻔뻔함만 갖추면 된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실패의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강력하다. 그래서 대중을 선도하는 개소리가 위험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개소리는 거짓말과는 다른, 진위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 언어게임이다. 따라서 팩트를 갖고 대응해서는 트럼프 류의 뻔뻔한 개소리쟁이를 이길 수 없다."

 

개소리가 정치를 넘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 서평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보니 역대 대통령 대부분과 내가 인터뷰를 하고자 했던 모범답안들 대부분 추상적이고 명확하지 않다. 공약을 수없이 도중에 파기해도, 지키지 않아도, 보도가 허위로 판명나도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 하고 치부하고 만다. 그러한 자세가 우리 스스로를 수렁에 빠지게 한다. 그렇다면 모두 개소리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또 나도 누군가에게 개소리를 많이 내뱉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어조작은 언론에게 그 만큼 위험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해야 하는 걸까.

 

말은 내뱉긴 쉬워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인터넷이다 SNS다 뭐다 해서 수많은 가면을 쓴 글들이 여기저기 떠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언어깔대기를 스스로 장착하고 정확성과 진정성 어린 말을 나눌 수 있도록 해야겠다. 말도 소금과 같아서 적당히 쓰면 약이지만 장황하면, 듣기 좋으면 곧 독약이 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이런 말이 기억 남는다.

 

오늘 날의 개소리의 확산은 다양한 형태의 회의주의 속에 보다 깊은 원천을 두고 있다. 회의주의는 우리가 객관적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신뢰할 만한 방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것은 사태의 진상이 어떠한지를 인식할 가능성을 부인한다.

 

참, 이 말도 좋다. 비트켄슈타인이 롱펠로의 시를 인용한 부분이다.

 

더 오래전 예술의 시대에는

건축가들이 최고의 섬세함을 기울여 공들여 만들었지

매순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신들이 모든 곳에 계셨으므로.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옛날에 장인은 일할 때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고 한다. 옛 장인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보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들에 대해서조차 사려 깊은 자기 규율을 느슨히 하지 않았다. 장인은 신을 향한 양심 때문에 괴로웠을 것이다. 디테일과 완성도에 대한 기분 좋은 충고는 보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