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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5_율리우스 카이사르(하)_시오노 나나미 저

지난 4권에 이어 이번에는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며 로마 시내로 진입을 시도하게 되고, 폼페이우스와 키케로 등 원로원 인사 등이 여기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로마를 탈출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미드 ROME 시즌1의 첫 시작부분에 해당한다.

대기만성형 카이사르. 줄곧 카이사르의 병력은 상대군보다 많게는 절반, 적게는 2/3 정도, 기병도 상대보다 절반에 해당하는 전력으로 매번 승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쟤는 왜 만날 이겨?'라는 생각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니 연이은 승리의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될 듯하다. 바로 신속한 결정과 충분한 정보 분석력, 상하 간의 믿음, 주변 동맹국과의 협업 등이 지속적인 승리의 밑바탕이 된다.

책을 읽다보면, 적은 수의 군사로도 일단 '카이사르가 진격한다'는 글 속에 나 역시도 믿음이 절로 간다. 그러면 '우리는 무조건 이기는 구나'하고 최고사령관인 카이사르를 신뢰하게 되고,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한다. 나 역시도 그에 대한 믿음이 이럴진대 당시 현장에서 카이사르와 동고동락하며 승승장구하는 장군을 누가 불신할 것인가.

카이사르와 반목하는 원로원도 문제다.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는 그렇다 쳐도 막연히 카이사르보다 많은 군사력으로 승리를 장담한 원로원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전쟁을 '이겼다'고 자신하며 미리 자신들의 관직과 농공행상을 두고 싸우기까지 했으니 어찌 폼페이우스가 이기랴. 결과? 그렇다. 보기 좋게 패했다.

이야기야 어찌됐든 폼페이우스는 연일 계속된 패배에 일부 군사와 가솔만 이끌고 이집트를 찾아가 도움의 손길을 청하지만, 예전 자신의 군사에게 목이 달아나고 만다. 여기서 카이사르는 뒤늦게 이집트의 이런 행태에 분노를 표하고 그의 시체를 화장해 유해를 고국의 폼페이우스 가족에게 고이 보낸다.

하지만, 곧 그는 종신독재관이 되고 집정관마저 차지하자, 왕정에 몸을 떠는 원로원들(이라고 쓰지만 일부 카이사르 심복도 포함되어 있다)에게 무려 23차례의 칼에 찔려 사망하게 된다. 카이사르는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토가를 얼굴 끝까지 끌어 올려 가렸다고 한다.

하지만 민중은 분노하게 된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공개되고 암살자들이 모두 로마에서 탈출한다. 결국 카이사르의 양자가 된 옥타비아누스가 수년 뒤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로마로 들어와 안토니우스와 키케로와 잠시 손을 잡고(정적을 제거하는 법을 알고 일의 우선순위를 알고 있다) 다른 이들을 우선 처단한 뒤, 키케로와 안토니우스를 차례대로 멸한다.

그 옥타비아누스가 바로 팍스 로마나를 가져온 아우구스투스다. 카이사르가 제정의 기초를 닦고, 아우구스투스가 이 제정의 밑거름 속에서 로마의 평화를 가져온다. 훗날 아우구스투스가 세상을 떠날 때 로마 시민은 모두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대를 이어 티베리우스라는 양자를 황제에 명하니, 혈연보다 능력을 중시하고, 능력만 있다면 국적,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채용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카이사르는 로마에 돌아와서 각종 사회정책과 개혁 사업을 추진했다. 이것이 원로원의 눈밖에 난 것이다. 빈민 구제 사업과 식민지 건설, 동맹국 확대, 시민증 확대, 달력 개혁, 통화 개혁, 행정구역 개편, 속주 징세 개편 및 경감, 공징 등용 확대, 대규모 토목 사업으로 인한 도시 재정비 등 활발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달력의 경우, 능력만 있으면 출신은 따지지 않는 카이사르의 추진력이 바탕이 되어 이집트의 천문학자와 그리스 수학자를 초빙해 개정에 나섰다. 지구가 태양 한 바퀴 도는 데 365일 6시간으로 계산했으며, 1년마다 생기는 6시간의 오차를 4년에 한 번씩 청산하기로 했다. 이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고 하는데, 2000년 가까이 지나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365일 6시간이 아니라, 365일 5시간 48분 46초라고 하니, 기원전임에도 얼마나 완벽에 가까운 계산을 해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처럼 곳곳의 개혁을 원했지만 독재의 우려를 샀던 카이사르, 공화정을 원했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안위에만 몰입했던 원로원들. 그 사이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몇 몇 인간들. 과연 무엇이 정의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는 역사가 평가해주는 것이고, 민중이 우선시 되야 한다는 데 나는 동의한다. 그리고 그 역사는 2000년 후에 카이사르의 손을 들어준다. 책을 보며 일일이 포스트잇을 붙여 배우고 느낄 정도로 내게 많은 숙제와 깨달음을 준 이 책, 그리고 카이사르를 보며, 나의 앞날을 위해 행복한 고민을 더 이어나갈 생각. 

참, 카이사르는 전쟁 중에도, 여행 중에도 꾸준히 글을 쓰고 고민했는데,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수원지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행한 여행에서도 그는 <내전기> 책 3권을 탈고하는 열정을 보였다. 참고로, 카이사르는 미식이나 호화로운 생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 음식 까탈을 하면 "그러면 먹지 않으면 될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단다. 하루 종일 생각하고 글을 쓰고 그러니 클레오파트라가 어지간해서 카이스르를 구워삶을 수가 없었단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는 반대였다. 호화로운 장식과 궁궐, 미식에 관심이 많아 클레오파트라가 그에게 쉽게 접근해 그가 원하는대로 다 챙길 수가 있었다고 하니 이 어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한 가지 아쉬운 건, 옥타비아누스가 집정관이 됐을 때 카이사르가 남겼던 연설문이나 희곡, 시, 수필 등 모든 책과 글을 태우고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만 남겼다고 한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말에 따르면, 카이사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역사적 사료의 가치로 볼 때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참고로, 로마 이야기는 연표를 주요 사건 중심으로 머릿속에 몇 개만 외우고 읽으면 절로 정리가 된다. 여기에 여러 사건이 이어지니 대략 얼개는 갖춰지게 되는 셈.

로마 제국 : BC 753~AD 476(서로마제국 멸망)

카이사르 탄생 : BC 100 (외우기 좋다)

카이사르 사망 : BC 44 (죽을 '사')

카이사르 갈리아 원정 시작 : BC 58~ (오빠, 꼭 이기고 와~)

카이사르 루비콘 남하 : BC 49 (병사들이여, 살구 싶으면 날 따르라!)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