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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가스의 탄생_오카다 데쓰 저

 


돈가스의 탄생

저자
오카다 데쓰 지음
출판사
뿌리와이파리 | 2006-06-2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일본의 대표음식 돈가스를 매개로 하여 살펴보는 맛있고 풍성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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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의 탄색 한국판(좌, 2006)과 일본 원서(2000)

 

 

 

일본의 근대화과정은 참으로 놀랍다. 서양문물을 배척하느라 쇄국정책에만 매달렸던 당시 조선과 달리, 일본은 서양의 압박에 어떻게 대쳐해야 하는지 실익을 장기적으로 판단했다.

 

메이지 유신과 함께 서양요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그것은 위(정부와 지식인)에서 아래(서민)로 전해졌다. 1872년(메이지 5년)에 메이치 전황이 앞장서서 육고기를 먹으면서 바야흐로 육식이야말로 문명개화의 상징인 시대를 맞았다. p11


그리고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 메이지 천황은 서양문물을 통한 근대화와 선진국가 대열에 끼기 위해 7세기 텐무천황부터 이어오던 육고기 금식을 1200년만에 과감히 깨는 결단력을 보인다. 그의 나이 21세.

 

메이지 시대의 서양요리는 1. 초기의 서양화 시기 2. 중기의 흡수/동화기 3. 후기 일양정출형 '양식'의 시기(돈가스, 단팥빵, 고로케, 라이스카레 등)를 그쳐 이윽고 다이쇼/쇼와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p104 


한편으론 당시 서양인들과 비교했을 때 체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도 있어다. 메이지 천황은 이 때문에 스스로 우유를 마셨고. 1872년에는 메이지 천황이 직접 쇠고기 통조리을 맛을 보기도 한다. 뛰어난 음식문화와 나아가서는 문명을 섭취, 흡수, 동화하려는 당시로써는 무시무시한 깊은 혜안이 돋보이는 과감한 결단력이다.

 

육식이 해금되고 60년의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서민들에 의해 '돈가스'가 탄생하게 됐다. 한편 빵은 16세기 일본에 전해지지만, 오랜 쇄국정책으로 빛을 보지 못 했다. 그러다 막부 말이 되면서 각 지방의 번은 앞을 다투어 군용 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코앞에 닥친 국방상의 필요 때문에 빵을 긴급식량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p150

 

그러한 과정 속에서 서양식에만 몰두하는 하는 ...것이 아닌, 화혼양재 흐름, 즉 극단적인 서구화와 일본전통에 대한 절충안을 마련해 곧 자기문화로 만들어 버리는 실력, 그것이 곧 돈가스와 단팥빵, 고로케가 탄생하는 이유가 된다. 한 마디로 일본인들이 개척한 일양절충형의 일본양식인 셈이다.

 

1921년에 당시 와세다 고등학교 학생이던 나카니시 게이지로가 '가스돈(돈가스덮밥)'을 만들었고, 8년 후 1929년(쇼와 4년)에는 도쿄 우에노에 있는 폰치켄의 시마다 신지로가 두툼한 돼지고기를 튀긴 본격적인 '돈가스'를 팔기 시작했다. p195

 

당시 서양음식과 근대화 관련한 책이 무수히 쏟아졌는데, 그중에는 서양음식 먹는 법이 그림과 함께 출간되기도 했다. 당시의 그 서양음식 교육법이 지금도 일본 학교에서는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세계화를 지향하는 그들의 전략과 시선, 지조가 느껴지고, 본인들이 먼저 한 발 나아가 상대를 배우려는 욕심이 여실히 느껴진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은 근대화시켜가는 정치적인 혁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1200여년의 금기를 깨뜨리는 '음식혁명'이기도 했다. 일본은 6세기에 전래된 불교의 영향을 받아 내내 육식을 금기시해왔다.

돈가스는 서양의 커틀릿을 일본식으로 바꿔 일본인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단팥빵 역시 서양의 빵을 일본 전통의 술로 반죽 발효시키고 그 속에 오랫동안 일본인 입맛에 길들여진 단팥을 넣어 일본식으로 바꾼 것이다. p275~276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나도 모르게 나만 잘났다고, 내가 중심이라고 쇄국정책을 펴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문을 열면, 내가 먼저 다가서면 더 많이 보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