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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_잡지기자 클리닉

[잡지기자 클리닉] 같은 기사이면서도 책과 인터넷 기사의 느낌, 왜 다를까

모처럼 분주했던 월요일.


저녁 늦게 퇴근 후 집에 와서 가방을 내려 놓고, 늦은 저녁식사를 위해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요량으로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놓고서는 제 방 자리로 돌아와 책을 펼쳤습니다.

이번에 진행하는 집필을 위해 예전 기자 초년병 시절 때 읽었던 인터뷰 서적을 먼지 낀 책장에서 꺼내 들었죠.

서문부터, 목차부터, 한장 한장... 10년 전, 그 때의 열정과 '이렇게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여과 없이, 다시 그 감각이 꿈틀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보다 10년 전 글이 더 재미있고 나은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는 앞에 앉아 있는 인물에 대해 독자가 무엇을 궁금해할까를 정확히 알아내려고 나 자신을 괴롭혔다.

-독자가 궁금하고 내가 궁금한 것을 나는 가능한 한 끝까지 물었다.

-인터뷰는 서로 사교하려고 만난 자리가 아니다. 인터뷰에 들어가면 상대의 입장을 크게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이따금 내게 인터뷰의 상대는 꺾어야 할 적장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들쑤신다.

-상대의 입장에 대해 너무 신경 쓰는 인터뷰는 무엇보다 결과가 불만스럽다. 상대방도 인터뷰를 위해 자신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시간낭비만 하는 셈이 된다.

-인터뷰어라고 해서 질문의 자유가 무작정 보장된 것은 아니다. 자칫 횡설수설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상대는 내심 경멸할 것이다.



그러면서 책을 쓴 기자의 당돌하지만, 각이 있는 질문과 기사방식에 혼자 감탄하며 "이런 인터뷰가 있었네"하고 그의 글을 따라 쓰고, 기사 형식을 한줄 한줄 따라하던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당시 책 한 권을 보면서 배웠던 것들이 요즘처럼 수 많은 인터넷에 나와 있음에도 느낌과 받아들이는 자세마저 다름을 느낍니다. "똑같은 기사인데도 왜 책에서 볼 때와, 인터넷으로 볼 때의 느낌이 다른 것일까?"


자기 직전 양치질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인터넷이 무형의 가치만 제공한다면, 책은 유/무형의 가치를 모두 제공하기 때문 아닐까. 그것은 나아가 특정 사물을 눈으로만 익힐 때와 오감으로 사물을 보고 익힐 때와의 차이와 비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닐는지, 하고 말이죠.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며, 펜으로 줄을 그으며, 포스트잇을 붙이며, 종이 냄새를 맡으며 공부하는 것은 아날로그 기법이 아닌, 우리 몸의 감각을 동원한 최적의 최고의 공부법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디지털을 결코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디지털이 가져다주는 효용성이 편리함과 간편함, 실시간이라는 네트워크와 물질적인 것에 비해, 우리는 사람의 기본인 세포의 구성인 바로 감각이 무뎌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지요.


사실 저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전자책 교육법을 그리 탐탁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굳이 전자책 수업을 하면서, 우리가 얻는 것이 얼마나 될까? 그 기회비용은 과연 주판으로 튕길 정도로 적은 액수가 아닐진대...

책을 펼치고 직접 손으로 써가며 공부하고, 대신 전자책은 자료 스크랩이나 부가적인 검색도구로 활용하며, 인터랙티브적인 면을 살려 부가적인 소통도구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겠지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소셜미디어를 하고. 비단 그런 기능적인 편리함과 소통의 다양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를 이루는 부분의 합이어야지, 그것이 곧 전체인냥 획일화해서는 곤란할 겁니다. 나아가 인간의 감각 또한 소멸, 혹은 퇴화되는 일이 없기를 소원할 뿐입니다.


옛날 선배들이 한자 한자 종이에 써가는 동안 생각을 많이 하고, 기사를 썼다는 사실은 현대에 이르러 결코 옛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고, 현재는 미래의 과거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