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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Storytelling

“당신은 대통령이 ‘왕’이 되길 바라는가?”_故 헬렌 토머스 기자

 

 

 

“당신은 대통령이 ‘왕’이 되길 바라는가?”
美 대통령 10명 인터뷰한 故 헬렌 토머스 백악관 출입기자

 

 

● 권력자에겐 거칠 질문이 결코 무례하지 않다

 

차라리 심문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을 법한 분위기가 더 어울린다. 기자회견이 아니다. 그할머니가 질문하면 백악관은 늘 쥐죽은 듯 조용했다.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 가운데 자리는 늘 그가 도맡아 앉았다. 그 할머니는 칼이 아닌 질문을 마구 휘둘렀다. 어떤 대변인은 기자회견이 시작되면 아예 그 할머니를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90세의 나이에도 전혀 무뎌지지 않은 날카로운 질문으로 50년 동안 존 F 케네디 대통령부터 현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 10명을 괴롭힌 그는 바로 92살의 나이로 타계한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 헬렌 토머스였다.


헬렌은 늘 ‘권력자에겐 거친 질문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신조로 삼았다. 평소 후배기자들에게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정권에 대해선 매서운 눈초리로 감시의 끈을 잠시도 놓지 않았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겐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지미 카터 대통령에겐 이란 인질 사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겐 그레나다 침공과 이라크전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에는 그 음모의 계획서를 봤던 법무장관의 아내와 밤마다 통화하며 단독기사까지 쓰는 등 특종 하면 토머스였을 정도로 기자정신이 투철했다.

 

 

 


● 조시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출입금지도

 

그런 그는 확실한 자기노선을 걷는 동안 주관적인 평도 곁들였다. 기자로서 자신의 가치기준을 늘 잃지 않았고, 사물을 꿰뚫어보는 시각을 확실히 다져나갔다. 자신이 취재했던 역대 대통령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평을 내놓음은 당연지사.

 

케네디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미국인이 더 높은 곳을 보도록 만든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호평한 반면, 닉슨 전 대통령은 “두 갈래 길에서 항상 잘못된 길을 택하는 인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자기파괴적인 인물”로, 조시 W 부시 대통령은 “정오의 암흑을 선사했던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참으로 비밀이 많은 비밀스런 인물”로 혹평했다. 하지만 린든 존슨 대통령에 대해 “기본적으로 말을 많이 하고 때론 감정적이기도 하지만 항상 무슨 일어나는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예전 뉴욕타임즈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대통령이 언론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왜 매일 백악관 브리핑룸에 가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래도 나는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싶다”고 말해 기자로서의 자세와 의욕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질문은 단도직입적이다. 헬렌 역시 사람인지라 현 정부 대통령에 대한 평을 거침없이 하고 다녔다. 한번은 “내가 겪은 대통령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알게 됐다. 곧 백악관은 헬렌을 3년간이나 기자회견장에 초청하지 않았다. 그가 출입금지가 풀린 날, 기다렸다는 듯이 헬렌은 이렇게 질문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당신의 이라크 침공 결정은 수천명의 미국인과 이라크인의 죽음을 초래했고, 미국과 이라크인들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최소한 공개적으로 주어진 모든 이유는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내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왜 전쟁을 원했는가? 당신은 석유는 아니라고 했다. 이스라엘 또는 다른 것도 아니라고 햇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을 시작으로 헬렌은 부시대통령과 한바탕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헬렌은 노골적인 또 한 번 백악관의 왕따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이 기자회견 때 그를 제외한 모든 기자에게 질문기회를 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후배기자가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토머스가 말한 소감은 예상대로였다. “대통령은 겁쟁이다”고 운을 뗀 헬렌은 “부시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에게는 덤벼도 내게는 못 덤빈다”며 대범하게 웃어넘기는 담대함까지 보였다. 후배 기자들은 그런 그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기자는 질문할 ‘권리’를, 대통령은 대답할 ‘의무’를 지녔다

 

그렇다면 기자로서 의혹을 규명하는 것과 무례한 질문의 차이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헬렌은 이에 대해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면서 “기자들이 질문 말미에 꼬박꼬박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기자는 질문하는 것이 특권이고, 대통령은 기자의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언론의 퍼스트레이디’ ‘기자들의 전설’ ‘백악관의 고정자산’으로 불릴 정도로 안팎으로 기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그였지만 취재원으로부터 종종 조롱을 당할 때도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 정부 시절 콜린 파월이 국무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파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헬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파월에게 다가간 그는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가 당신을 새 국무장관으로 임명한다는데 사실인가”하고 물었더니 파월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뒤에 서 있는 사람에게 귀띔했다. “저 여자를 보낼 만한 전쟁터는 없을까?”


헬렌은 어떠한 칭찬도 한 귀로 흘려버렸다. 1974년 헬렌이 <유피아이> 백악관 지국장으로 승진했을 때다. 닉슨 대통령은 그에게 “이건 대단한 일이다. 여성이 이 자리에 발탁된 것은 처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헬렌은 이를 깨끗이 무시해 버린채 첫 질문을 이렇게 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당신이 워터게이트 피고인들의 입막음을 하려고 돈을 건넸다는 말은 틀린 것이라고 말했다는 백악관 최고위 보좌관이 위증죄로 기소됐다….” 순간 닉슨 대통령의 얼굴은 미소가 사라진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 브리핑룸, 후배들 합의로 다시 맨앞 가운데로 복귀

 

토머스가 시종일관 이처럼 올곧은 자세로 비판정신을 유지했던 비결은 투철한 기자정신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현실과 타협하며 조용히 살길 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헬렌은 예외였다.

 

30년 동안 줄곧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자리 가운데에서 첫 질문자로 나섰던 그였지만 2000년 <유피아이>가 통일교로 인수되면서 <허스트 뉴스서비스>로 자리를 옮겼고 그는 워싱턴 주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백악관에 발길을 끊었다. 그러다 7년 후 다시 백악관의 초청으로 다시 첫째 줄로 복귀했다.

 

그러다 2007년, 신축 브리핑룸 완공을 앞두고 다시 좌석배치 문제가 대두됐다. 백악관이 기자실을 개축하면서 기존 8열 6좌석(총 48석)이던 브리핑룸 좌석구조를 7열 7석(49석)으로 재배치한 것.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있던 AP와 ABC, CBS,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통신과 방송, 신문사 소속 기자 중 한 명이 뒷좌석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 자연스레 헬렌의 자리까지 거론됐고 헬렌은 백악관 기자단의 요청대로 뒷좌석으로 순순히 가고자 했다. “동료들의 결정이라면 흔쾌히 따르겠다.”


그렇게 자리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백악관 기자단은 당시 허스트 신문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헬렌은 종전대로 맨 앞 가운데 지정석에 그대로 앉히기로 결정했다. 백악관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헬렌은 30년 가까이 백악관을 취재했고, 이는 곧 백악관 기자단의 상징일 뿐 아니라 백악관 최장수 출입기자”라는 점을 꼽았다. 후배기자들에게도 그의 열정과 기자정신을 인정받은 것이다.

 

 

 


● 권력자 눈치 보는 후배들에게도 따끔한 일침

 

그렇다면 헬렌이 기자회견 자체를 중요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유일하게 대통령을 직접 만나 특정 사안에 대해 자세한 육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취재방식인 인터뷰를 중요시 한 것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1960년대)만 해도 기자들은 대통령에게 접근할 기회가 다양했다. 대통령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대변인을 통하면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대통령과 함께 리무진을 타며 인터뷰도 가능했다. 하지만 언론매체가 많아지고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지 이런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마침내 기자회견만이 직접 대통령을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하게 기회가 됐다.”

 

헬렌은 어려운 질문을 피하는 후배기자들에게도 비판을 가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왜 대통령과 대변인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냐”고 일침을 놨다. 그는 후배기자들에게 “대통령 눈치를 보지 말라. 조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에 대해 마음을 쉽게 굳힌 이유도 기자들이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뉴스 전문 영상매체들이 기자회견이나 브리핑룸을 실시간으로 촬영하자 “기자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질문도 못 하는 것 아니냐”며 꼬집기도 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이러한 헬렌에 대해 “헬렌은 당대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도 대범한 질문을 서슴지 않는다. 이는 소심한 기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 60년 백악관 터줏대감, 이렇게 세상을 떠나다

 

1943년 <워싱턴 데일리 뉴스>에서 복사와 커피 심부름을 하는 사환으로 언론사에 첫 발을 내딛었던 헬렌. 남성 중심의 금녀의 문을 환히 열어젖힌 것도 모자라 늘 백악관 브리핑룸 맨앞 한 가운데 자리를 30년간 지키며 무려 60년 동안 백악관에 출입한 터줏대감.

 

후배기자들은 눈치를 볼 때 맨 먼저 손들어 돌직구를 날리던 여장부. 그런 그가 2013년 7월 20일 워싱턴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레바논 이민 2세로 무려 10명의 전․현직 대통령을 취재한 베테랑 기자. 그가 이처럼 세계 언론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큰 족적을 남긴 이유는 그 어떤 현실과 권력에도 굴하지 않은 점, 독자의 알 권리를 통해 다양한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후배기자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최고의 여기자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오리아나 팔라치가 “인터뷰란 상대와 자신이 발가벗고 인격 전부를 걸고 하는 맞서는 싸움”이란 어록을 남겼다면 헬렌은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도 왕이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그를 잃은 오늘이 슬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