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웃음 봉사인생, 원로 코미디언 한무
“봉사는 무슨, 그냥 함께 웃는 낙으로 사는 거지”
∎ 늘 이웃과 잘 지내라 강조하신 어머니
그는 인터뷰 도중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자신은 결코 이 모든 것을 굳이 봉사한다고 결부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두 어머님이 주신 사랑과 관심을 다시 이웃과 나눌 뿐이라고 했다. 바로 원로 코미디언 한무 씨 얘기다.
“우리가 일곱 형제였어. 아들 넷에 딸 셋이었지. 광복 후 몇 년 안 돼 남한으로 월남했어. 그러다 몇 년 후 한국전쟁이 일어났지.(한무 씨는 1940년생이다) 얼마나 먹고 싶은 것이 많았겠어. 한번은 집에 고구마가 조금 있었는데, 아버지, 어머니 것까지 아홉 개가 밥상에 있어야 맞거든. 그런데 일곱 개만 놓여있는 거야. 그 때는 정말 부모님이 고구마 안 드시는 줄 알았어. 그러다가 수돗물로 배 채우시는 걸 보게 된 거야.” 그러면서 그는 “그 때만 생각하면 왼쪽 가슴(심장)이 아프다”고 했다.
모니터에서는 늘 웃고 웃기며 즐거워 보였던 이. 그 뒤엔 그러한 마음의 쓰라린 상처를 안고 살아온, 어쩌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늘 웃고 웃겨야만 했던, 서사적인 투사였을지 모른다.
사실 한씨는 홍은동 시절, 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 동네에 소문난 효자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다. 방송에선 시청자를, 집에 와서는 어머니를, 밖에선 이웃을 즐겁게 하는 막내아들이었다. 그가 그런 효심과 마음을 갖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늘 자식들에게 내리사랑을 베푸시며 “늘 형제끼리 잘 지내고, 이웃과도 잘 지내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그에겐 아예 종교가 됐다.
∎ 선의가 뜻밖의 오해 살 때 마음 아파
노인정, 장애인복지관, 교도소, 소년원 등 가릴 것 없이 그는 자신을 찾는 곳이면 없는 시간을 짜내서라도 기꺼이 그들을 찾았다. “얼마 전에 교도소에서 위문공연한 뒤 출소하면 연락하라고 수감자에게 연락처를 줬지. 정말 연락이 왔어. 그래서 기분 좋게 밥 한끼 했지(웃음).”
그는 30년 가까이 소리 소문 없이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에게 봉사했고, 그 공로로 2005년에는 연예예술상(한국연예협회 주관) 시상식에서 연예봉사상을 수상했다. 적어도 매주 한 번씩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있는 곳을 찾아 자신의 전매특허인 ‘원맨쇼’로 잠시나마 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장애인이 먼저 다가오기 전에 먼저 달려가 손을 내미는 것도 이젠 습관이 됐다.
한씨는 오지랖도 넓다. 시간 날 때마다 재래시장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좌판 깔고 물건을 팔 때면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웃돈을 쥐어주기도 하고, 지하철 노숙자를 보면 주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 기어코 몇 푼이라도 쥐어준다. 하지만 마음이 아플 땐 자신의 진심이 오해를 받을 때다.
“오래 전에, 춘천이었을 거야. 딱한 사정이 있는 아이를 알게 됐는데, 마침 춘천에 공연이 잡혀 잘 됐다 싶었지. 적지만 매월 정기적인 후원도 했었고. 어느 날 방송에 그 아이가 출연하면 더 많이 도움 받을 거란 생각에 출연을 요청했어. 그랬더니 그 아이가 그러는 거야. ‘아저씨, 방송에 저 이용하시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 내가 경솔했던 거지. 그 애의 자존심도 생각했어야 했던 건데.”
인터뷰 도중 개그맨 엄용수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역시 전북 익산에서 봉사활동 중이었다. “애도 정말 성실히 살아. 모두 건강했으면 하는데 말이지.”
한무 씨는 늘 즐겁다. 갈수록 자신을 찾는 이가 많아서다. 그런 그가 이달 말 경에 백내장 수술을 받는다. 십수 년 전부터 앓던 당뇨로 합병증 증세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이제 진정한 공인이 되셨다. 자신보다 이웃을 위해 건강관리에 더 힘 쓰셔야 할 것”이라고 말하자 한씨는 “그러잖아도 의사선생님이 ‘강남스타일’로 잘 해줄 것이라고 하셔서 마음은 편하다”며 웃었다.
진정한 공인이 된 코미디언 한무. 그의 봉사는 바로 ‘웃음의 나눔’이었다.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무조건 무조건이야!”
*MG새마을금고 사보 10월호
글. 허니문 차일드 사진. 송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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