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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인과 제왕_마빈 해리스 저


식인과 제왕(NEXT 12)

저자
마빈 해리스 지음
출판사
한길사 | 1995-05-0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식인과 제왕』은 이제까지 나온 해리스의 다른 저서들과는 다른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우연히 헌책방에 들러 책 여러 권을 구입 후 계산하려는 찰나, 뭔가 잠깐 아쉬워서 다시 뒷걸음쳐 내 손에 걸린 귀한 책이다. 요즘 한창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도 꽤 읽을만 하겠지만(난 아직 읽지는 못 했다), 이 책 역시도 인류학을 바탕으로 꽤 진지하고 객관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첫 장을 넘기면 신선한 충격이 다가온다. 어쩌면 나도 그것이 눈에 띄어 이 책을 집어 들었을지도 모르리라. 먼저, 해리스는 현대의 풍요로움이 과연 바람직한가. 그렇다면 선사시대 시절보다 우리는 더 살기 좋아졌고, 기대수명도 크게 늘어났는가. 앞으로 인류가 닥칠지 모를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문제제기하고 있다. 더불어 이 책 안에 저자는 나름대로의 해석과 인류가 밟아오고 진화해왔던 근사치를 바탕으로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해리스는 '야만스러운' 우리 조상들은 곡물재배법을 알아낸 다음에야 비로소 편안한 주거생활을 하고 취락을 이뤄 정착을 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여유 식량을 저장할 수 있게 된 다음 비로소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었고, 그것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밝히며 "이것이 문자와 도시와 통치조직을 만들어 냈고, 예술과 학문이 꽃을 피우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또 "증기기관이 발명돼 보다 빠른 진보가 진행되는 새로운 국면, 즉 일손을 덜면서 동시에 대량으로 생산하고 생활을 향상시키는 기계와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기적과 같은 풍요로움의 산업혁명 시대를 열었다"고 했다.

 

하지만 해리스는 이 점에서부터 인류가 떠안아야 할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는 "산업사회라는 것은 속빈 강정이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한 마디로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몇몇 사치를 유지하자면 훨씬 더 많이 일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단순히 인류가 발전하고 전진하고 상승하는 낡은 빅토리아식 발전관을 맹신하지 말고 그 자리에 문화발전을 보다 사실대로 설명하는 발전관을 들여앉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장을 하나 더 살펴보자.

 

우리가 현대에 와서 이뤄놓았다고 생각하는 진보라는 것도 실은 많은 부분이 일찍이 선사시대에 널리 누렸던 것을 되찾은 것 뿐이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다음 시대의 대부분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살았다. 예를 들어 로마시대는 그 전 어느 때보다도 질병이 많았고, 심지어 19세기 초 영국마저도 어린이 평균수명이 2만 년 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이어 해리스는 선사시대 때 일하는 시간과 이유, 목적을 현대사회와 빗대 얘기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사냥꾼인 석기시대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일해야만 했던 시간은 전형적인 중국농민이나 이집트 농민들이 일해야만 했던 시간, 그리고 노동조합을 가졌다는 근대 공장노동자들의 일하는 시간보다 훨씬 짧았다. 또 좋은 음식, 오락, 미를 보는 즐거움 등 삶의 쾌적성을 볼 때 사냥과 채취활동으로 살아갔던 석기시대인들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리고 살았다. (중략) 창 너머로 과히 넓지 않은 잔디밭이나마 내다보며 사는 특권을 누리는 처지가 되려면, 온 식구가 30년 동안 뼈빠지게 일하고 저축해야 한다.

 

이밖에 내용 중에, 산업사회 이전 시대에 인구 자체를 효과적으로 억제해야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인구가 넘치면 더 먹을 것과 터전확보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바쳐야 하고, 집단과의 전쟁도 이어지며, 삶의 질이 그 만큼 하락한다고 봤기 때문), 실제로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사용했던 인구억제 방법이 바로 유아살해였다는 사실이었다.

 

질 좋은 식생활, 힘든 노역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방법은 이론적으로 생산의 증가가 아니라, 인구를 줄이는 일이었다. 인간의 통제능력을 벗어난 어떤 이유 때문에 천연자원의 1인당 공급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전보다 두 배로 일을 더 해야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인구를 그 만큼 줄이는 것이 상책이었는데, 그중 가장 대두됐던 그것이 바로 유아살해였던 셈이다.

 

해리스는 이것을 생식압력(인구증가)라고 봤다. 그리고 그에 따른 문화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다.

생식압력(인구증가 압력)-생산증강과정-생태환경 파괴/고갈-새로운 생산 양식 출현

 

어쩌면 저자의 말마따나 생삭을 억제하는 데 그와 같은 가혹한 대가가 없었다면 인류는 영원히 소집단을 이루어 비교적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효과적이고 부드러운 인구억제 방법 부재는 그러한 생활양식조차 불안정하게 했다. 아울러 생식압력은 석기시대 조상들로 하여금 생산강화를 서두르게 했다.

 

이어 빙하시대 말기에 들이닥친 기후의 변화로 사냥감이 감소하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수렵 및 채취라는 생산양식 강화가 농업채택을 위한 무대를 만들었다. 농경생활은 또 집단 간의 경쟁과 전쟁, 약탈, 살인 등으로 이어지고 뒤이어 국가라는 것을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마야, 잉카 문명의 인류학적 문화와 식인풍습, 그 후의 진화과정을 밟는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도 읽을만 하지만 이 책은 단 300여장에 인류학적 진화와 다양한 문화풍습을 닮고 있다. 어느 한 국가나 대륙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인류의 이야기 말이다. 앞으로도 저자가 밝힌 생식압력 과정과 인구억제 방법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인류 문화진화과정의 절반은 이해한 것이나 진배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