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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_잡지기자 클리닉

[잡지기자 클리닉] 경력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간절해라(2)

기사도 마찬가지다. 기사의 기본적인 구성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 경력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메이저 신문사 시스템을 부러워만 할 게 아니다. 인터넷과 오프라인 도처에 모범답안이 널렸는데 기자를 희망하는 사람이 대체 그동안 뭘 했단 말인가. 그저 사회적으로 대우 받고 식사하고, 명함 들이밀며, 공짜 참관만 기대해서 될 일인가?

 

간절함에 대해서는, 학벌도 소용없다. 한 예로 A기자는 외국 유학경험과 관련 전공자라는 프라이드만 무성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입기자로 입사했다. 속으론 "유학경험과 프리토킹 실력을 갖춘 친구가 오래도록 취직을 못 했을까. 우리회사 복지와 급여에 만족할까?"하고 의구심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면접을 보면 액면과 실제 실력이 확연이 다를 때가 다반사다. 그럴 때마다 편집장으로서 처음 우려했던 사항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잔소리하기에 바쁜 모드로 바뀐다.

 

A기자는 거대한 포부를 지니고 입사했다. 그래도 막내 기자라 하나하나 차례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뉴스, 스케치 등 간단한 원고정리와 기업 홍보담당자에게 필요한 자료 받는 일부터 시켰다. 전화통화는 잘 하길래 속으로 잘 하고 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마감 당일. 결국 반신반의하던 일이 터졌다. 뉴스나 행사 스케치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인 스트레이트 기사 정리법부터 겹말, 수동태, 조사, 호응, 비문 등 원고를 당월호에서 아예 기사를 뺐으면 뺐지 도무지 게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선배들을 불러 수정하도록 했다. 마감 기간에 자신의 원고를 선배들이 봐주다니 이것보다 팀에 누를 끼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속으로 너무 화가 나서 대학생 기자도 이렇게는 쓰지 않겠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간신히 참았다. 그 날 마감은 새벽 늦게 무사히 끝났다.

 

그래도 공부는 늘 하겠지 싶어서 이번에는 한 페이지짜리 간단한 인터뷰를 시켰다. 원고를 봤다. 비문 천지였다. 어느 것 하나 말이 되는 것이 없었다. 한 페이지짜리 원고를, 그것도 반 페이지를 사진으로 덮으면 실제 글자 수도 반으로 줄어든다. 한 페이지에 글자가 약 1,500자 내외로 들어가니, 700자 내외로 작성하면 된다. 200자 원고지 9장이 조금 안 되는 분량이다. 선배들을 불렀다. 완벽하게 가르치라고 한 뒤, 혹시나 해서 전에 고친 원고들을 되짚어 봤다. 한 번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결국 내가 나서서 불필요한 문장 지우고, 첨삭했다. 그리고 담당기자를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작은 페이지로 진행되는 꼭지이니 만큼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다 담으려 하지 말고, 꼭 필요한 부분, 독자가 궁금한 부분을 찾아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또 “문장은 처음 시작 3줄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지 못 하면 실패한 기사이므로 처음 리드를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지 다른 기사를 보든가, 유행어를 반영하든가 해서 작성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도 수 시간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 기자의 정신력은 강했다. 틈틈이 내가 신입 시절부터 봐오던 바이블(?)과 콘셉트 잡는 법, 레이아웃 기본 설정 등 틈나는 대로 교정지를 보며 가르쳤다. 선배기자들이 앞서 봤던 교정지를 챙겨 다음엔 그런 실수 없도록 반복하도록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물론 지금도 매번 반복되는 실수는 있지만 당시에 비하면 많은 발전을 했다. 이제 교정지를 볼 때면 내가 그때처럼 시시콜콜 지적했던 비문을 많이 좋아졌다. 덕분에 나도 빨간펜 선생님(?)이라는 달갑지 않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기자들이 새로 입사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여기는 일일이 기사 작성법과 취재하는 요령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아니라고. 그리고 가르쳐줄 시간 역시 없다, 바로 현장 투입될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간절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한다. 그리고 끈기와 노력을 별첨으로 뿌려주며, 약간의 질투를 입가심으로 내놓는다. 그래서 간절함은 남들보다 두세 곱절 더 노력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원이 된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필즈상(Fields Medal) 수상자이자 <학문의 즐거움> 저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어떤 일을 부딪치면 간절함을 갖고 남들보다 두세 곱 더 노력할 각오를 한다고 한다. 안철수 교수가 곧잘 인용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실력이 없으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어쩌면 그 당연한 논리를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며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지만, 후배가 깨우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도 선배로서의 도리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후배들이여, 더욱 간절해지자. 간절함에 목맬 수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자.

 

어느 책에 인상 깊었던 글귀가 있다. 간절함을 원하는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다.

‘바다에 나가 풍랑을 만나거든 한 손으로 기도를 올리고, 한 손으론 노를 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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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5 - [잡지기자 클리닉] - 경력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간절해라(1)

 


by 허니문 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