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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좀비 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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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3 - [Human Storytelling] - 안철수 교수 "우리나라는 IT강국 아닌 IT소비 강국"

 

 

좀비 이코노미


 

요즘 같은 무더운 날씨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영화 단골소재 ‘좀비’.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죽여도 죽지 않아 그 도시의 시민들은 불안함에 몸을 떤다. 이 좀비는 멀쩡한 사람을 깨물거나 공격하면 좀비 바이러스를 통해 그들까지도 좀비를 만든다. 그러고 나면 그 도시는 한 순간에 아득한 좀비들의 세계가 된다. 그 좀비의 보통명사가 경제용어로까지 파고들었다. IT산업은 물론 벤처에 이르기까지 좀비는 우리 곁에서 조금씩 조금씩 다가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산채로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좀비 이코노미…. 그런 면에서 공포스럽고 무시무시한 말이다.


매월 초 습관대로 편집 기획안을 토대로 취재하고, 기사작성하고 마지막 배열표를 짜다보면 분명 웹 에이전시에 대한 한달 동향이 대략 파악된다. 새롭게 광고를 시작하거나, 갑자기 광고를 끊게 되는 에이전시. 나름 사정은 있다. 귀동냥으로 듣긴 하지만 기자와 마케팅부서와 함께 의견을 모으다보면 정보 액기스만 끈적하게 남는다. 대부분 그 액기스는 사실에 준한다.

 

취재시, 혹은 인사차 에이전시에 방문해 일부러 시장파악을 위해 떠보는 경우도 있다. 더러 놀랄 일도 듣곤 한다. 요즘, 아니 올해 웹 산업은 분명 쉽지 않은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 연말과 올초에 걸쳐 많은 에이전시가 생겼다. 포털에서 퇴사, UX/UI 관련 디자인 회사를 차린 곳도 꽤 있다. 디지털 에이전시를 모방하지만 모바일 관련 마켓으로 시장을 확대한 경우도 많다. 한 마디로 벤처가 많이 생겼다. 하지만 이렇다 할 벤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최근 유력 일간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기업 패망론을 들고 나와 이슈가 됐다. 안 원장의 대기업 패망론은 전 세계 불고 있는 IT 기업 창어열풍 속에서 왜 한국만 비켜갔는지 설명한 도중 나온 것. 우리나라 전반에 불고 있는 ‘결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이 보다 먼저 치고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IT 창업열풍과 괴리돼 있는 이유로 ▲창업자의 실력 부족 ▲열악한 창업 인프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마지막으로 ▲좀비 이코노미를 들었다.


왜 하필 좀비 이코노미일까. 대충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벤처투자가 부진하다. 그러면 대표이사는 연대보증으로 은행 빚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부진하면 빚 때문에 차마 접을 수 없다. 그 대신 덤핑, 혹은 정부의 눈먼 돈(지원금 등)을 받아가며 일종의 좀비 기업이 돼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이다. 안 원장의 IT산업에 대한 쓴소리와 대기업과의 불공정 거래 등은 이미 본지 2010년 10월호에 게재한 바 있다. 당시 본지는 독자들로부터 안 원장의 “우리나라는 IT강국이 아닌, IT 소비강국”이라는 기사 내용에 대해 많은 동의를 얻은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유독 ‘한 방’이라는 표현을 즐긴다.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어” “남자는 한 방이야” “이번 한 방만 터지면 돼”…. 세계적인 천재도 10개 아이디어 중 하나만 성공시키는데, 우리는 천재 한 명이 아이디어 하나 냈다가 실패하면 바로 생매장 당한다. 안 원장 말대로 “싹수있는 사회일수록 리스크 테이킹(위험감수)을 하지만, 우리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를 피한다”는 표현이 맞다.


세상이 안 바뀌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안철수 원장. 우스갯소리로 벤처가 성공하면 벤츠타고, 실패하면 벤치에 앉는다는데, 벤처의 성공을 신화로 받아들이기 전에, 모든 리스크를 벤처기업이 모두 떠안는 관행(?)보다, 어떻게 공유하느냐를 되짚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간 웹 2011. 8월호 <editor's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