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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의 지구사_콜린 테일러 센 저

 

 

누구나 즐겨먹는 커리. 흔히 카레라고 부른다. 우리가 먹는 카레는 일본식이다. 돈가스와 단팥빵 등 일양절충식의 대가인 일본이 역시 영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커리를 자신들의 기호에 맞춰 다시 밥에 부어 먹는, 보다 단맛이 강하고 부드러운 커리를 카레로 발음했고, 우리도 그대로 카레라 부르고 있다.

 

정작 커리라는 말은 소위 카레를 지칭하지 않는 폭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커리를 '카릴' 혹은 '카리'라고 불렀고, 이 요리는 채소와 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요리를 가리켰다. 전통적으로 인도인들은 '커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음식마다 코르마, 로간 조시, 몰리, 도피아자 등 특정 이름을 붙여 사용했단다.

 

여하튼 강황과 강한 향신료를 고기 및 채소를 섞어 만든 커리는 당시 식민지배를 해왔던 영국에 전해지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주역은 요리책과 이민자들, 동인도회사 관료와 부인, 계약직 노예 등이었다. 이들은 또 영국으로 흘러가 그곳의 전통 식문화와 결합한 독특한 커리를 개발해 또 하나의 음식문화를 이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저번 <돈가스의 탄생>도 그렇고, 이번 <커리의 지구사>도 그렇고, 그 중심에는 다양한 요리법과 음식문화를 소개한 <요리책>이 두루 전해지면 발달했다는 사실에 눈길이 간다. 특히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18세기 후반에 직업훈련소도 존재했었고, 여기에 종사하던 한 직원이 서양빵조시라를 만나면서 6년여의 개발 끝에 '단팥빵'을 개발하지 않았는가. 요리책을 통해 돈가스와 단팥빵 등 다양한 요리법이 전수되며 곳곳으로 퍼졌고, 그만큼 음식문화를 발달에 발달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커리는 영국에서 변형되고 또 변형되며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 요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나아가 일본 등에도 두루 전파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사실, 15세기 후반에 포르투갈이 향신료 교역을 장악하던 때, 이 교역소를 중심으로 '콜럼버스 교환'이 이뤄지면서 서양의 고추가 인도 지역으로 흡수돼 더욱 맵고 향이 강한 커리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인도가 향신료를 즐기는 관습이 자리잡게 된 이유에 대해 "향신료에는 강한 상생제 구실을 하는 화학성분이 있어 음식을 상하지 않도록 박테리아와 세균을 죽이거나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이러한 항생제가 마늘과 양파와 어우러졌을 때 그 효과가 더욱 컸다고 한다. 또한 향신료의 가치도 언급하고 있는데, 향신료의 요리학적 가치는 요리에 맛과 질감,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며, 아울러 가난한 이들은 적은 비용으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후 커리는 영국은 물론 미국과 주변국으로 널리 퍼졌고, 영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까지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는 아이러니. 그도 부정만을 할 수 없는 것이, 인도가 먹었던 커리와는 다르게 변형해 자신들의 음식문화에 맞춰 진화했으니 일본하면 돈가스와 같은 취지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 부록에는 다양한 커리 요리법이 옛날 요리책에 맞춰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1900년대 초반부터 조선에서도 카레를 먹었던 신문기사를 소개하고 있어 새로웠다. 그리고 1925년 4월 8일자 <동아일보>에는 <서양 요리 제법, '카레라이스' 만드는 법>을 짧게 토막으로 소개하는 이미지도 볼거리다.

 

다만, 책의 많은 부분이 각국에 퍼져있는 카레소개와 요리책 출처에 할애해 자칫 지루하고 고루해질 수 있다는 것은 단점. 이 점이 앞서 2014년에 1독했고, 얼마 전 다시 2독했던 <돈가스의 탄생>과 비견되는 점이다. 총 9개의 챕터 중에 커리란 무엇인가, 제국의 향수, 영국의 커리, 식문지 커리의 발자취, 한국 카레는 일본 카레의 아류인가? 등 4개 챕터 외에는 대제목과 소제목만 훑어봐도 좋을 성 싶을 정도였다.

 

여하튼 이날 이 책을 읽으며, 마트에 가서 카레를 맛과 브랜드 별로 구입해 집에 진열했다. 그리고 하나를 까서 밥에 부어 먹었다. 음식의 맛은 그 역사를 알 때 더 혀로 느낄 수 없는 맛까지 느낄 수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