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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_후쿠자와 유키치 저

 

독서는 이렇기 때문에 심오하고도 무섭고, 대단한 자산이 되는 듯하다. 행간을 읽어내려가다보면, 눈길을 끄는 키워드나 인물, 혹은 언급된 소재나 도서를 찾아 그 끈을 다시 잇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독서의 힘이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이미 수년 전에 한 번 읽고, 일본 여행 관련해 읽었던 <돈가스의 탄생>(뿌리와이파리)를 읽어 내려가면서부터 였다. 1독 때 무심코 지나쳤던 내용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책 66페이지 하단에 '육식론자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중간제목의 한 챕터가 소개된다. 여기서 저자 오카다 데쓰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육식 추진의 또 다른 공로자는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후쿠자와는 1870년 쓰키치 우마회사로부터 선전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1,300자 분량의 '육식을 말한다'를 작성, 영양학적인 관점에서 육식과 우유의 효용을 강조했다. 마침 그 시기가 육식을 적극 권장한 메이지 유신, 문명개화(일명 문화)와 독집자존, 서양문물 적극 수용,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시기와 궤를 같이 하기에 <돈가스의 탄생>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사실, 자서전을 읽어가면서 그의 자세한 내막을 알기 전까지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일본의 근대화와 계몽주의에 앞장선 인물, 서양문물을 처음 받아들이고, 게이오 대학을 설립했으며, 1862년 스물 아홉의 나이로 유럽사절단에 통역관으로 파견되면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프러시아, 포르투갈 등 여섯 나라를 순방, 이것이 훗날 '독립자존'의 사상을 발전하게 된다. 곧, 탈아론의 시작이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변질이 된다. 하지만 자서전에는 그런 내용은 없다. 나중에 야스카와 주노스케 교수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역사비평사)를 통해 그의 민낯이 밝혀져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게 된다.

 

당시 하급무사였던 아버지의 차남으로 태어나 신분의 벽을 뼈저리게 느끼고, 봉건제의 폐해를 절감한 후쿠자와는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난학을 배우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를 보고 영어를 배우며, 서양문물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고, 교육과 번역, 출판, 신문사 경영에 나서면서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다. 이것이 훗날 게이오 대학의 엠블럼이 된다.

 

책에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생겼던 에피소드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다. 시가와 슈가를 구분하지 못해 설탕을 사오기도 하고, 일본 의사가 인삼으로 생각하고 사 온 것이 생강가루이기도 했다는 것.

 

나름 유럽 순회 중에 궁금했던 웬만한 것은 원서를 찾아 알아냈지만, 그중에서도 병원 유지비는 어떤 식으로 누가 내며, 은행에서의 돈의 출납은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 유편법이 시행되고 있는데 그 법은 어떤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프랑스 징병제는 어떤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정치상의 선거법은 무엇이며, 국회는 어떤 관공서인지 하고 말이다. 

 

신을 부정하는 얘기도 언급된다. 신의 이름이 적힌 부적을 밟으면 정말 벌을 받을까? 하는 생각에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이를 밟아봤지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다시 변소로 가져가 밟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신기한 것을 밝혀낸 기분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다고 한다.

 

책의 중간 중간에 보면, 도쿠가와 막부와 관료가 답답했는지 까는 얘기도 나온다. "지금의 막부는 무너져야만 한다"느니 "도쿠가와 정부를 판단하자면 칭찬할 부분이라곤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막부의 양이주의의 반감이 심했던 모양이다. 또 일본 최초로 수업료와 월급 개념을 탑재해 전국으로 확대시켰고, 돈주고 배우고, 싫으면 잡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으로 자리잡기 된다.

 

일본의 순사라는 단어의 시작도 후쿠자와와 연이 있다. 그가 갖가지 원서를 모아 경찰법에 대한 부분을 번역해 책을 엮은 뒤 도쿄부에서는 제번 병사들의 순찰을 중지하고, '순라'를 조직해 이것이 훗날 '순사'로 개명됐단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를 이어 받아 말단 '순경'이 탄생했다. 학교 내에서는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굳이 경례를 붙이지 말고, 간단히 목례만 하고 빨리 움직이는 것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허례허식을 없앤 것이다. 

 

하지만 그도 늘 암살걱정에 시달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쇄국과 양이론을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나름 개화파들은 종종 대낮이나 밤에 암살을 당하기도 했는데, 후쿠자와도 마루 밑에 도피처를 만들기도 하고, 밤늦게는 외출을 삼가기도 했다고 한다(무려 12~13년간). 여기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양학 동료들과 모여 얘기를 나누다 자정이 되어 헤어졌는데, 저 멀리 어두운 골목에서 누가 빠르게 다가오더란다. 후쿠자와는 이미 돌아서 도망가기엔 늦었다고 판단해 적극 대응하기로 마음먹고 둘이 서로 엇갈리는 찰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상대방도 서둘러 뛰어 도망가더란다. 즉, 둘 다 밤늦게 겁먹고 서로 오해를 부른 것이다.

 

그는 농민에 대해서도 질타를 하고 있다. 즉, 상대에 따른 태도변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농민(백성) 측에서 압제를 자초하는 면이 있다는 식이다. 우연히 그는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몇 가지 시험을 해보고자 마음 먹는다. 처음에는 아랫사람 하대하듯 묻자 굽실굽실 친절히 안내는 농민, 그 다음 만나는 농민에게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묻자 오히려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았다고. 다시 다음 사람에게는 하대하듯 물으니 역시 친절히 답하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하곤 맺은 결론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 사회에서도 부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책의 끝에가서는 조선인을 돈만 밝힌다거나 중국인은 문명개화가 무익하다는 글도 나온다. 중국인 비하라기 보다는 한학과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과 비판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의 구술로 작성된,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일 뿐 참고만 하면 그 뿐이고, 당시 근대화를 위한 시대적 상황과 세밀한 근대화 움직임을 살펴 당시 조선과 비교해가며 반성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앞서 잠시 얘기했지만, 근대화의 아버지이자 계몽주의의 대부로 일컬어지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사실은 전후 일본인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이미지를 탈색했다는 것이 바로 야스카와 주노스케 교수의 주장이다. 다시 말하면 후쿠자와 유키치는 아시아전쟁과 조선침략의 음모와 흉계를 갖췄으며, 실제로 "조선 침략의 목적은 일본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위한 게 아니라 일본을 위한 것이다" "조선은 사지가 마비되어 스스로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 병자와 같다" "조선과 중국 두 나라는 진보의 길을 모르고 구습에 연연해 도덕마져 땅에 떨어진 데다 몰염치는 극에 달해 오만방자하다" "일본 외의 국가가 조선을 먹게 해선 안 된다. 일본이 조선을 독차지 해야 하며, 이는 일본의 권리이자 의무" 등의 막말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후쿠자와를 미화한 인물은 바로 마루야마 마사오 도쿄대 교수. 일단 야스카와 주노스케 교수의 이 충격적인 발언과 책은 후쿠자와에 집단최면이 걸렸던 일본 국민을 지금도 하나 둘씩 깨어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1만엔 주인공 인물은 여전히 후쿠자와 유키치다.

 

그의 자서전에는 자신이 조선에서 터졌던 갑신정변으로 누가 일본에서 체포됐는데, 그 관병들이 자신의 집도 뒤졌다며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분명 후쿠자와는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주인공인 김옥균을 만나 금전적으로 지원한 역사적 사실이 있음에도 이를 세세히 자서전에서 밝히지 않고 있다.

 

어떤 분의 블로그에는 후쿠자와가 조선의 멸망을 반겼다는 건,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조선왕조가 멸망해야 백성의 안위가 평안해지리라는 뜻일 것이라는 데, 나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는 조선의 멸망을 수구적인 관점에서 침탈하려는 의욕과 탈아적인 입장에서 아시아를 먹고 서양과 맞장 뜨기 위해 조선을 먹기 위한 정치적 야심이 가득한 발언이라고 해석한다.

 

여러가지로 배우고, 느끼고, 암울하고, 여전히 발전 없는 한국의 정치사를 보며 이 책을 덮는다. 다음에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쓴 <학문의 권장>을 비판섞인 눈으로 읽어내려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