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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Storytelling

꽃보다 크리에이티브

꽃보다 크리에이티브

박홍식 브이더블유 스타일 익스펜션 디비전팀 팀장

 

접근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쉽게 말하면, 관계의 친소나 지위 고하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달라지는 걸 연구하는 분야다. 길을 걷는 두 남녀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까울 때 우리는 둘이 애정을 느끼고 있다고 짐작한다. 사귀면 사귈수록 두 사람의 거리는 좁아져 언젠가 ‘제로’에 도달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크리에이티브에 작업을 건다. 다가가기 위해. 그 방법이 특이하다. 능청스럽다고 할까? 어찌됐든 둘 사이가 좁아져 '제로'가 되면 그만 아닌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순서로 감각의 위계를 고집했다. 이 사람은 그중에서도 시각-청각을 자신이 작업하는 데 유용이 써먹고 있다. 때로는 지위하는 강마에가 되기도 해 주변을 놀라게 하는 건 기본. 궁금하다. 그는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지….

 

기자와 박홍식 팀장은 회의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름대로 좁은 거리를 유지했다. 나름대로 접근학을 써먹었다.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박 팀장은 손짓 발짓 해가며 차분하게 이야기 실타래를 풀었다. 미리 보낸 사전질의서의 답변도 기재해서 따로 챙겨줄 줄 알았는데, 모두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덕분에 기자만 바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신이 인간에게 준 오감을 잘 활용한다는 느낌이 앞선다.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활용이라는 단어로 대체했지만, 오래 사용하지 않아 감각이 퇴화(?)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래서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전체적인 디자인 아우라만이 아닌, 모션적인 측면, 리듬, 흐름이 흠뻑 세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또 무엇보다 너무 잘 하려는 욕심으로 인해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시각적인 해이를 경고한다. 그 때문에 그가 누누이 강조하는 건 ‘청소력’이다. 채워 넣은 것만큼 다시 비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지론과 함께 늘 절제와 군더더기 없는 모션을 추구한다.

 

오해는 금물, 일하는 중입니다

 

그의 아이디어 원천은 거꾸로 ‘절제 없고 군더더기 있는’ 메모에 기인한다. 그에겐 꿈속에서 얻은 아이디어도 아이템이 된다. 그 아이템들이 모여 스스로의 내공을 높임은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히든카드가 되기도 한다.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상명하복식 업무로는 자신은 물론 조직도 발전이 없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제가 그랬거든요. 그냥 열심히만 하면 성장하고 배울 게 있겠다 싶었죠. 어느 순간 그 생각이 변하더라고요. 제 욕심이었는지, 주어진 일 이상을 넘어야 한다는 비장감이 들었어요. 막무가내였죠. 그게 아마 제가 3년차가 됐을 때였을 거예요. 밤도 많이 샜죠. 하하”


본의 아니게 일에 집중하다가 한 번 두 번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아지면서 주변에는 그를 속칭 ‘야그너’로 칭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그저 시간가는 줄 몰랐을 뿐이고, 그게 마치 마약처럼 온 몸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남겼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감히 수동적 야그너라는 호칭에는 반기를 들었다. 반대로 해석하면 능동적 야그너,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야그너라면 당장 기쁘게 받아들이겠다는 투다.


그에게는 특이한 업무 습관이 있다. 작업 중에 혼잣말로 음향효과(?)를 마다하지 않는다. 입으로는 “휙~ 확~ 뿅”하는 말투와 함께 손짓은 마치 지휘자처럼 박자를 맞춘다. 정신을 집중하고 디자인을 비롯한 전체적인 레이아웃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이유인즉슨 어떤 작품을 가꾸기 위한 느낌은 소름처럼 피부에 배어있는데, 그 느낌이 확실하지 않아서 그걸 스스로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란다. 그 만의 무기였던 셈. 그는 한 번 더 강조했다. “저 미친 사람 아닙니다. 일하는 중이었어요.”

 

아직 배도 고프고, 갈 길이 멀다

 

그에게도 물론 까다로운 클라이언트가 있다. 웬만한 건 자신이 스스로 그들을 설득한다. 전은 이렇고, 후는 이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강하게, 어떤 때는 약하게 해야 한다고 차분히 설명한다. 그러면 백이면 칠팔십은 믿고 맡겨 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안 될 때는? 방법은 하나다. 대표님께 슬쩍 토스해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는 스킬 아닌 스킬도 적절하게 발휘(?)하기도 한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웹 크리에이터로 사는 게 행복해요. 100%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 모자란 부분을 찾는 것이 제가 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라고 봐요. 한 번에 오케이 되면 재미없잖아요. 참, 빠른 피드백도 이쪽부분에 있어서 매력이기도 하죠.”


그 피드백에 내일 눈물 흘릴지라도 하늘을 우러러 한결 부끄럼 없이 작품을 잉태하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때로는 오프라인과 달리 자신이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이 1년이 지나 새로운 것으로 바뀔 때 마음 한켠에는 씁쓸함이 남기도 한다. “자식이 어느 날부터 안 보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하지만 영원한 건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고 자위할 줄 아는 그는 자신을 더욱 사랑한다.


사실 인터뷰 첫 머리에서 밝혔어야 했지만, 기자의 질문 중 그를 수일간 괴롭게 했던 것이 있었다. 자신의 색깔과 웹 크리에이터가 자신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하지만 이 부분은 그의 말마따나 여백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건 그가 영원히 찾아야 하는 목표와 같은 의미일 테니까. 5년이 지나고 아니 10년이 지나 그가 이루고자 했던 건, 지금 그의 이메일 아이디와 같이 일인분(ilinboon), 즉 자기의 몫은 거뜬히 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 아닐까. 그러면서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지친 표정 속에서도 기자를 향해 활짝 웃어 재꼈다.

 

<profile>
박홍식
직업 : 스타일 익스펜션 디비전팀 팀장 / VW Interactive Director
Web Award Korea 2008 디자인 이노베이션 대상(WDC SEOUL 2010) / Web Award Korea 2007 디자인 이노베이션 대상(삼성 에버랜드) / 산업자원부 장관상(삼성 에버랜드) / Favourite Website Awards(기아자동차 Cee'd) / Web Award Korea 2006 대기업일반 최우수상(SK Group) / Web Award Korea 2006 최고대상(SK Telecom Global MOMU) 외

 

 

 


‘2010 세계디자인수도 서울’ 공식 웹사이트는 레드·화이트·블랙 등 강렬하면서도 심플한 느낌을 콘셉트로 독특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인터넷 경험을 제공했다.

 

 

 


리조트 사업으로 대표되는 삼성에버랜드를 폭넓게 재조명함으로써 삼성에버랜드의 다양한 사업영역(Energy&Asset, Food culture, Environment, Golf)을 영상을 통해 소개하고 기업의 진면모를 보이는 데 집중했다.

 

 

*본 기사는 허니문 차일드가 작성한 월간 아이엠 2009년 4월호 <IM creator>를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