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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Storytelling

박성환 프리랜서 콘티라이터

박성환 프리랜서 콘티라이터
“인생은 승부, 인저리 타임(injury time)은 없다”

 

15초 혹은 30초 예술을 위해 더 짧은 시간과 촌각을 다투는 콘티라이터 박성환. 그도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목숨 건 광고인이다. 보기엔 연필 한 자루로 쓱쓱 그려내는 그림이지만, 돋보기로 봐야만 하는 지금의 디테일을 완성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왜 저 멀리서 추신수가 걸어오지? 광고계의 'Choo~ Choo~ Train~'을 시즌(?) 중에 만났다.

 

 

박성환 콘티라이터

 

 

올초 신시네티 레즈로 이적한 추신수. 박성환 콘티라이터와 많이 닮았다.


“하루 평균 3~4군데 정도 미팅해요. 시간 싸움이죠. 오늘 아침에는 휴대폰 광고 미팅을 했고, 오후에는 소주 광고 미팅이 있어요. 그림 톤도 상품 종류에 따라 다르게 그려야 해요. 화장품의 경우 최대한 뽀샤시하고 예쁘게 그려낸다면, 자동차나 전자품목은 연필선과 펜선을 적절히 섞어서 디테일하게 표현하죠. 참, 자동차도 용도에 따라 다르게 쳐냅니다. 매번 촌각을 다투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이 분야 매력인 듯싶네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그렇게 운 이유를 아는 이라면, 오늘처럼 매번 분주하게 사는 그도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왜 15초 내외의 광고영상을 위해 그는 부지런히 그 손을 놀렸던가를….


콘티라이터 박성환. 업계에서는 이미 콘티의 ‘달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감독이 의도하고자 하는 영상을 머릿속에서 정확히 캐치해 순간적으로 정확히 그려낸다. 여기에 자신의 응용력까지 양념을 쳐내면 그야말로 최고의 밥상이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광고미팅 중에도 부지런히 콘티를 그려내 시간과의 싸움에도 통달해야 한다고. 귀를 열고, 동시에 눈과 손은 부지런히 캔버스에 콘티를 수놓는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그의 콘티는 역시 감독과 제작진의 의도했던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 시각적인 디테일한 요소만 가미하면 이제 끝이다. 그렇게 그는 시간개념을 통달했다. 이처럼 스케줄도 물론이려니와 작업 시간도 마찬가지다. 한시라도 마음 편하게 미팅해본 기억이 없다. 아예 없다.

 

시간과 싸워 이겨라

 

콘티와 함께한 15년의 시간을 캔버스에 녹인 박성환 콘티라이터. 그가 말하는 광고 콘티라이터의 세계는 실력은 기본이요, 속도전은 필수다. 콘티라이터 이면에 보이는 달콤함에 반해 넙죽 이 길을 선택했다가 그 속도전에 뒤쳐져 포기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매번 광고기획자, 카피라이터, 아트 디렉터, 프로듀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온라인 광고기획자 등 개성과 역할이 오색찬란한 이들과 함께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자칫 시간싸움에서 밀리면 이 세계에서는 버티기 힘들다. 기자는 이를 ‘시간싸움’이라 넘겨 짚었지만 그는 ‘자신과의 싸움’이라 했다. 이것이 영화 콘티라이터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그는 오프라인 광고는 물론 얼마 전부터도 윈저 등 온라인 광고 콘티에도 참여해 자신의 영역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그가 직접 참여했던 ‘삼성 PAVV LED 론칭편(上)’과 ‘LIRIKOS’ 콘티.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콘티 하나하나에 갖가지 아이디어와 손길이 묻어난다. 이것이 추후 온라인 광고 콘티에 모티브가 된다.)

 


비록 콘티일지라도 무엇이든 한 방에 가야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세계에서는 시간을 더 주는 인저리 타임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 콘티라이터는 사전에 그려놓을 수 없을뿐더러 최종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고혈을 짜내듯이 쏟아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광고주와의 미팅 중에도 수정에 수정을 가해 최종 콘티를 완성한다.


콘티라이터 하면 박성환이라는 공식을 만들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생존’ 때문. 본래 극사실 테크니컬 광고일러스트였던 그가 지난 90년대 초 제대하고 보니 황당하게도 작업환경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난감했다. 그는 곧 지인을 통해 콘티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인연이 오늘날까지 이어왔다. 그가 처음 콘티를 맞게 되면서 생각한 것도 재밌다.


“처음엔 저도 ‘저렇게 그려도 돈을 주나’ 싶었어요. 저 정도면 나도 그리겠다 싶었죠. 아직 콘티라는 것에 대해 전문화가 덜 됐을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단순한 스케치와는 구분된다는 점이었어요. 단순히 러프 수준은 아니었던 거죠. 하다 보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조금 더 신경 써서 퀄리티를 높이면 혹시 경쟁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하다 보면서 좋은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재차 시도하기도 했죠. 제 분야에서 꾸준히 업그레이드 하면 저를 부리는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내 오른손은 박지성 왼발


인터뷰 중 기자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그가 갖고 다니는 콘티 재료를 쏟아 냈다. 진동 지우개, 흑연덩어리, 2B연필, 홀더, 스케치 샤프, 붓펜, 플러스펜, 네임펜 등은 기본적으로 꼭 갖고 다니는 필수 도구다. 갈수록 콘셉트와 분야가 다양해지는 만큼 실험적 표현을 위한 도구도 2~3개 된다. 콘티용지는 물론 캔버스, 캔트지 용지도 구비했다. 거의 장인수준이다. 한 마디로 “다양한 표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였다. 이것도 고객만족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튼튼한 건축물에는 단단한 못질이 필요한 법. 최종 결과물을 내기 위해 곳곳에 못처럼 박혀 있는 애환도 만만치 않았다.

 

 

 

(‘리바이스’와 ‘공진향 해윤선 파우더 일식편’ 최종 콘티. 마치 하나의 완성된 만화처럼 보인다. 단순한 러프를 넘어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해 보다 오프라인은 물론 향후 온라인 광고의 완성도를 높인다.)

 


“경력이 길어질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제 작품을 꾸준히 팔아야 하는 과정에서 오는 진통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광고라는 게 한 사람의 결과물이 아닌 여러 사람이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니만큼 그들과의 의견조율에도 신경 써야 하고요. 하다 보니 더 좋은 작품을 위한 연출에 욕심도 생기고요. 감독님이 고민하는 부분을 빨리 캐치해 지면으로 바로바로 옮겨야 하고요. 저를 부리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한 몸부림이 가장 어렵죠.(웃음).”


때로는 일이 몰려서 꼬박 20시간을 콘티에만 매달려 본 적도 있고, 사흘 동안 철야작업을 한 적도 있다. 그렇게 테이블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작업하다보면 고개를 위로 쳐들지 못할 정도로 목과 허리가 아프지만 자신의 연필 끝에서 태어나는 광고를 생각하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새벽에라도 업무로 누군가 호출하면 출동을 마다하지 않는 철저한 프로의식으로 중무장했지만, 주말엔 되도록 가족과 함께 보내려 애쓴다. 한참 아빠와 엄마 손길이 필요한 초등학교 2학년 쌍둥이와 이제 7달된 딸아이를 생각하면서 일 못지않게 아이들의 정서적인 측면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놓친 일도 더러 있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더 커서 친구들과 놀 때까지는 철저하게 주5일을 고수할 생각이다.


그는 콘티라이터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최대한 영상물을 많이 보고, 시간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말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70세까지 전성기를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분주히 뛰고 있다.


“박지성에게 왼발이 있다면 제겐 오른손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기자에게 보여준 오른손의 굳은살과 연필 받치기 좋게 툭 튀어나온 손가락 인대는 오늘날 그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본 기사는 허니문 차일드가 작성한 월간IM 2009년 5월호 <IM Creator>에 게재했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