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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Storytelling

김석일 충북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이제 2개월여 남았습니다. 올 4월이면 ‘장애인 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 시행으로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뺀 모든 법인 등록한 웹사이트와 공공기관 웹사이트는 장애인도 주요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웹 접근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지난 2008년 4월 발효된 이 법률을 통해 조금이나마 온라인상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을 없애고, 장애인들도 똑같이 온라인 쇼핑과 포털을 이용하고 기업정보를 얻는 데 불편함을 해소하자는 취지죠. 이 외로운 길을 올곧게 걸고 있는 김석일 교수를 만나 지난 20여 년 간 그가 느낀 웹 접근성의 실태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올 4월, 당신은 장차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충북대 김석일 교수


 

장차법 발효(2008년 4월) 후 4년하고도 9개월이 흐른 지금, 과연 기업과 공공기관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장애인들은 아직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해 김석일 교수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달고 있는 느낌이랄까. 김 교수의 말에는 많은 뜻이 내포돼 있다. 장차법 시행일이 턱밑까지 차올랐는데도 아직 웹 접근성에 대한 대처방식과 인식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부랴부랴 대응책을 마련하려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한 번 더 터지는 것일까. 문제는 공공기관이나 직원 300명이 넘는 기업이 아니다. 소규모의 영세한 기업이나 종교법인, 학원법인 등이다. 파파라치 대량 등장도 예고된다. 이 과정에서 신고를 무마하길 원하는 불법거래도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이 법인기관들이 웹사이트 개발과 관리를 맡기는 디지털 대행사와 웹호스팅 업체 간의 불협화음도 불 보듯 뻔하다.


내부 전산망인 인트라넷도 지적 대상이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사내 인트라넷도 엄연히 장차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내부 인트라이기 때문에 쉬쉬하는 경향이 짙다. 누가 내부고발하지 않는 이상 감사받을 일도, 밖으로 드러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갈수록 장애인 특별취업 문이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때문에 웹을 이용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시각, 청각 장애인이 역차별 받을 소지도 있다. 장애인이라 해도 조직생활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덜 겪는, 경중 장애인 위주로 채용해 ‘장애인 특별채용’이라는 보기 좋은 문패만 달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까. 여전히 장차법의 눈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엄연히 존재한다.


비단 이 문제가 국가와 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초기 설계 당시부터 인트라넷은 이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 컸다. 여러 응용프로그램과 맞물려 있는 특성으로 볼 때, 아예 새로히 구축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웹 접근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석일 교수가 1995년 개발한 시각장애인용 워드프로세서 ‘소리문’. 1998년에는 문광부 지원으로 ‘새소리문’을 내놓았다. 당시 국내 시각장애인치고 ‘소리문’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윈도우95가 출시되면서 시각장애인용 소프트웨어는 또 한 번 벽에 부딪쳐야 했다.>


김석일 교수가 염려하는 부분은 정작 다른 곳에 있다. 단순히 장차법이 적용된 웹 접근성 뿐 아닌, 보편적 접근성에 대한 문제다. 장차법에서도 접근성 지원 대상을 웹에 한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소프트웨어 등 정보통신기기 전반으로 접근성을 확대하지 않았다. 또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의 접근성 역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다.

 

중요한 점은 미국이 지난 2010년 10월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이하 21세기법)’이 통과됨에 따른 우리나라 수출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이 법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전화, TV 등 장애인접근성을 보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을 지키지 않은 제품은 미국 수출이 금지된다. 단순히 국내 문제로 바라볼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국내 다수 사용자 유입률을 기록하는 포털이나 쇼핑몰의 경우는 어떨까. 김 교수는 “포털의 웹 접근성은 그나마 제일 낫다. 문제는 여기서 쇼핑몰로 접근했을 때”라며 “쇼핑은 누구나 손쉽게, 언제 어디라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함께 취재에 응한 문현주 박사(충북대 모비즈랩 정보통신 접근성센터)도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같이 했다. “장차법을 적용하더라도 온라인 상에서 장애인의 차별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문 박사는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며 “관련 주체에 따라 의견이 다른데, 단순히 기술을 넘어 상대를 배려하고 접근성을 이해하는 모습이 절실하다. 나아가 이것을 올곧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김석일 교수는 20년 넘게 이 길을 걷고 있다. 돈 되는 일도, 누가 크게 반기는 일도 아니다. 그는 왜 올곧게 이 길을 고집하는 것일까. 김 교수에게 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을 때는 인터뷰 후 터미널에 다다를 때였다. 그는 말했다. “국가에 대한 빛 때문”이라고. “아마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올해 스마트워크 장애인 접근성 가이드북을 개발, 여성,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한 사용자 맞춤형 UI 동적 제공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웹 접근성 자동 평가도구 개발, 고령자 및 장애인의 IT 기기 접근성 향상을 위한 표준화 연구 등에 매진해 왔다.

 

-지난 6월, 구글 ‘인터넷 개방성 포럼’에서 강연했는데.
‘인터넷 복지화 및 인터넷 접근성 보장’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갖고 강연했지만, 내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웹 접근성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얘기를 들으면 모두 그 중요성과 취지에 공감한다. 웹2.0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가. 개방, 공유, 참여 아닌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난 기본에 충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경계를 두고 싶지 않다. 사실 장애인의 웹 접근성이 더 대두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예비 장애인 아닌가. 남의 일이 아니다.

 

 

 

-가전제품의 접근성, 나아가 유비쿼터스 시대를 대비한 다양한 경로의 접근성도 대두되는데.


장애인 접근성은 시대적 흐름의 하나다. 이것은 그 큰 그림의 보편적 설계인 셈이다. 가전제품, 정보통신제품, 인터넷 등 모든 IT 영역이 보편적 디자인이나 접근성 영역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에 직접 드라이브를 거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사실 미국 외에는 실질적으로 이 문제를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나라가 드물다.


하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다. 미국은 이제 의료장비까지 접근성을 논하고 있을 정도로 선진화됐다. 최근에는 긴급재난차량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에 대해서도 논했더라. 우리나라와는 상당한 격차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주변국가에 비해 비교적 빨리 대응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직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


-이 일에 전념하기 앞서 청주맹학교와의 인연이 남다른 경험으로 다가왔다고 알고 있다.


1990년에 충북대 교수로 부임 중 우연히 청주맹학교 교장선생님(故 강영호 박사)과 만난 자리에서 장애인들의 컴퓨터 활용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마침 청주맹학교가 한국IBM 사회공헌사업재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시각장애인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교장선생님이 내게 연락을 주셨다. 그래서 1995년 마침내 ‘소리문’이라는 시각장애인용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했다. 1998년에는 문광부 지원으로 ‘새소리문’을 내놓았다. 아마 당시 국내 시각장애인치고 ‘소리문’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윈도우95가 처음 출시되면서 물길이 바뀌기 시작했다. 장애인들은 사실 누군가 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주지 않으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IT 트렌드에 따라갈 수가 없다.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마 이때부터 내 길은 이리로 정해졌다. 거의 주전공이 된 셈이다(웃음).

 

-이런 열의가 어느 정도 열매를 맺었다고 보는지.


내년 4월 장차법이 본격적으로 모두 시행되면 분명 큰 혼란이 우려된다. 웹 접근성을 당장 논하기 전에 그 뒤편이 더 걱정이다. 불법거래, 파파라치, 기업과 웹 호스팅 업체 간의 마찰 등. 준비가 늦는 만큼 사회적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기업자원관리(ERP)와 사내 인트라넷 등도 접근성을 지켜야 한다. 엄연히 장차법에 적혀있다.

 


-장애인에게 인터넷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글을 읽는 독자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인터넷은 삶의 창구역할을 한다. 예전엔 장애인에게 누군가 의식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만 얻을 수 있었다. 책을 읽어준다든가, 음성파일을 준다든가. 여하튼 스스로 정보를 얻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있지 않은가.


인터넷으로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 안에는 차별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장애인에게 인터넷을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것은 삶의 정보를 박탈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인터넷은 기본권이다. 누구나 차별 없이 누려야 한다. 어쩌면 우리나라 헌법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접근성은 기본권이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다.

 

-인터넷은 이제 생존의 수단이 됐다. ‘인터넷=인프라’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다. 아마 인터넷이 차단되면 우린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중간에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해보자.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인터넷 사용 현황을 영역별로 조사한 자료를 봤다. 거의 95% 이상이 웹 기반의 인터넷 사용이 대부분이다. 요즘 ‘인터넷’하면 거의 ‘웹’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웹이 거의 인터넷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중 40%가 정보검색이다.

 

-장애인 복지법 시행령에 나와 있는 장애인 유형은 정보통신 접근성하고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데.


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이런 말을 했죠. ‘이제 웹에, 인터넷에 접근하는 것은 인권의 하나다’ ‘웹이 파워풀한 것은 누구나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웹을 발명하고 나서 특허권을 포기함으로써 이를 스스로 지켜냈다. 이를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접근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 사실 대부분의 지체장애인들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능숙하다.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문제는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다.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의 현황을 보면, 지체장애가 53%, 시각, 청각, 뇌병변 장애인이 10%로 거의 동일하다. 지체장애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따른 어려움을 해결해주면 53%의 장애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들이 사용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자. 말씀대로 장애인 복지법 시행령에 따라 장차법을 적용한다고 치자. 현실하고는 괴리감이 있다. 저는 추가적으로 정보통신 장애 영역의 조사가 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정보통신 장애를 우선으로 인지가능성에 따른 감각수단이나 어려운 용어와 이미지 문제, 문서편집 등 고려할 사항이 많다.

 

-모바일 접근성 측면은 어떤가.


모바일 콘텐츠 접근성은 웹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사용하면 된다. 그동안 모바일 웹 접근성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었지만, 금년 하반기에 정부에서 나서서 조사한다고 한다. 웹 접근성보다 나을 것 같진 않다. 내가 우선 샘플 조사를 해봤는데, 모바일 접근성은 거의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번에 여러 경로로 개선의 여지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 이렇게 접근성이 낮은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가.


전체적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낮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이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얘기다. 또 이 영역이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영역에다 접근성을 고려해 추가로 자금을 투입해야 할 상황인데 이에 적극적인 기업이나 정부기관이 있겠나, 하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인식의 문제와 비용의 문제가 상충돼 있지만, 쇼핑몰 사이트든, 검색서비스든, 언론 사이트든 웹 접근성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최근 디도스 사태 이후 정보보호 차원에서 웹의 정신이 훼손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가령 코딩을 다시 짜서 한 번 우회하는 경로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홈페이지를 보면 무지하게 복잡하고 이상하게 돼 있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차이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외국의 홈페이지는 사용자가 접근하면 원하는 정보가 한 번에 다 나와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첫 페이지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이 흔하다. 한 번 더 거쳐야 필요한 정보가 랜더링 된다.


왜 그럴까. 말씀대로 디도스 문제 때문에 직접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한 번 돌아서 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것이 선례가 되면 모두 이런 점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홈페이지는 모두 똑같다. 웹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다. 웹은 공개를 기본으로 하고 누구에게나 소스를 개방하고 참여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이 말이 되나. 또 이렇게 한다고 진화하는 해킹을 피할 수 있나? 접근성 차원에서 보면 이를 별개의 웹사이트로 구분한다.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웹 접근성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접근성이라는 것은 인터넷 뿐 아니라 정보통신 전반에 걸쳐 준수하거나 적용해야 하는 시대의 한 흐름이다.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수용해 기술발전시켜야 하는 분야다. 어쩌면 현재 웹 비즈니스 영역에서 한계를 느낀 이가 있다면, 접근성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도 창출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분명 주변국가에서도 근 시일 내 이 문제가 부각될 것이다. 훌륭한 비즈니스 영역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추가비용이 드는 영역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접근성을 토대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보자. 새롭게 기회를 여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불어 관련 대학 학과나 장애인 관련 교육에 종사하는 분이 있다면, 적어도 접근성에 대해 학생들이 한 번쯤 들을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차이가 분명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참, 웹 접근성의 중요성에 비해 큰돈이 되거나 크게 환영받는 일도 아님에도 20년 가까이 이를 지속한 이유는 뭔가.


내겐 나라에 대한 부채가 있다. 빚이다. 지난 1985년, 국가가 달러가 많지 않을 때 정부로부터 ‘유학’이라는 수혜를 입었다. 가서 돈 걱정, 먹을 걱정 없이 공부했다. 그래서 오늘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길이 바로 이 분야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 기사는 허니문 차일드가 작성한 월간 웹 2012년 8월호 <trend maker>를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