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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_잡지기자 클리닉

[잡지기자 클리닉] 편집디자이너와 아름답게 마감하기

 

기자가 기사작성에 모든 신경을 쓰는 만큼 디자이너 역시 자신 진행하는 디자인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예기치 않은 부분에서 마찰이 생길 수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기자 입장에서는 기사에 놓은 사진 한 컷을 보더라도 자신의 의도와 다르면 “왜 사진을 트리밍을 했지?” 혹은 “왜 사진을 굳이 흑백으로 처리했지?”, “표를 그리기 위한 텍스트를 따로 줬는데 왜 틀린 거야?”, “교정지는 왜 이리 늦게 나와”, “이거 1교 때 수정 체크했는데, 2교에 수정되지 않았네?”, “누끼가 이게 뭐야?”, “자간을 조금 좁히면 밑에 한 글자가 충분히 윗줄에 붙을 수 있잖아?” 등 생각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직접 작성한 기사의 경우는 사진 하나도, 앉힌 이미지도, 글자 폰트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당연하다. 자신이 애정을 갖고 취재한 기사니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듯 이런 문제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기자를 10년 할 생각이라면 10년 동안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원만한 매체 진행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담당기자는 자신이 작성한 기사의 1차 책임자다. 디자이너와 가장 진실한 소통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조건 디자이너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전 조판하던 시절의 경우는 기자가 직접 구상한 기사의 레이아웃까지 구상해 사전에 디자이너와 미팅을 통해 작업을 진행했다. 이것이 기자가 디자인을 알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였다. 그러한 개념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디자이너와 기자가 한배를 탄만큼, 원활한 디자인 작업과 피드백, 수정을 위해 원만한 소통과 관계가 필요한 때다.

 

모 선배가 있는 어떤 잡지사는 편집디자이너와 기자들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대화를 하지 않고 거의 이메일로 내용을 주고받거나 교정지에 무뚝뚝하게 써내려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할 말이 있을 경우 포스트잇으로 대신했다. 서로 불편했다.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더욱 발전적인 방안은커녕 쓸 데 없는 줄다리기에 가뜩이나 체력소모가 심한 마감 때면 배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형국이었다. 화해모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때로는 선배들 때문에 자칫 후배들도 덩달아 고생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디자이너도 사람이다. 기자들처럼 디자이너도 밤새우며 일한다. 모두 똑같이 고생한다. 책이 잘 나와 칭찬받으면 기자나 디자이너 모두 기분 좋기 마련이다. 디자이너와 원만한 소통이 훌륭한 매체를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건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와 아름답게 공존하는 법은 무엇일까.

 

 

디자인 실장 “제가 오탈자 하나 잡았어요. 잘 했죠?”

 

A잡지사도 처음엔 디자이너와 대화가 많이 없었다. 결국엔 기자는 기사만,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신경 쓰는 형국이 됐다. 매체에 기자가 디자인에,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도 그 어떤 의견을 표명하기 어려웠다. 기사와 디자인이 딱 봐도 따로 놀았다. 서로의 의견이 상대에게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기자가 작성한 기사의 콘셉트가 잘 반영되지 않았고, 기자도 디자인의 취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둘은 평행선이었다.

 

교정지를 주고받는 시간까지도 갈등이었다. 기자가 오전오후 근무시간에 교정을 보다가, 퇴근 무렵 교정지를 준다. 디자인팀은 “그럼 우리는 밤 새워서 이를 수정하라는 말이냐”며 좀처럼 갈등은 식을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잡지사의 편집장이 바뀌었다. 그는 디자인 실장과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그쪽 업무 환경과 스케줄 관리, 디자이너마다 실력 편차, 마감 후 광고데이터 관리 등 많은 얘기를 들었다. 디자인 실장은 그에게 말했다. “저도 편집국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마감이 늦거나, 디자인에 대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요. 그 때는 제게 한 번이라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좀 가르치듯이 말씀하시지 않았으면 해요. 앞으로 차차 나아지겠죠.”

 

그렇게 시간이 지났더니 그 실장이 어느 날 편집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편집장님. 실은 이번 호 디자인할 때 제가 오탈자 하나 발견해서 수정했어요. 사람 이름이었는데, 큰 일 날뻔 했어요.”

 

편집장은 ‘이제 됐다’하고 비로소 다행히 여겼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웃으며 대화하면 떡 하나가 더 생긴다. 이후 그 편집장은 디자이너 한명 한명과도 소소한 얘기라도 함께 나누고 있다. 원고가 추가로 늦게 들어오게 될 때, 내 원고의 콘셉트 방향을 잡아야 할 때, 하물며 인물사진을 잘못 찍었을 때 포토샵 부탁에 디자인 아이디어까지 일부러 대화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그 실장은 언제나처럼 밤새서 작업한 교정지를 아침에 기자들이 출근하면 바로 볼 수 있도록 편집장 책상에 출력해 놓고 퇴근한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정규 근무시간에 교정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럼 그는 다시 교정지를 퇴근 무렵 디자인 실장에게 주면서, 또 밤새서 수정작업할 디자인 실장에게 일부러 한 번 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퇴근할 때 교정지 드리면 디자인 팀은 또 밤새서 수정해야 하네요.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그러면 디자인 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예요. 우리가 하는 일인데요. 뭐. 나중에 대휴를 쓰면 되지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후 디자인 실장은 최대한 기자들이 휴일에 출근하지 않도록 교정 일정까지도 최대한 맞춰 작업한다. 일종의 배려라면 배려인 셈이다.

 

디자인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함께 책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기자와 마찬가지로 디자이너도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자부심과 자존심이 있다. 어느 한쪽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서로의 목소리만 높이다가 굳이 감정이 상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의 주관을 갖되 충분히 대화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전제한다면 이후의 작업도 원만히 진행할 수 있다. 평소 기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적극 다가서는 모습도 필요하다.

 

디자이너도 기사에 애정이 있다. 원고를 한 번 읽어보고 그 느낌을 살려 디자인한다. 제목 어디를 강조할지, 사진을 어떻게 배치해야 글이 살지, 박스기사는 어디에 넣어야 할지 고민한다. 이 때문에 기자는 기사를 넘길 때 추가로 하고픈 말이 있다면 메모하는 것도 좋다. “이 취재원은 광고와 연계돼 있습니다.”, “업계에서 내로라할 분인데 멋진 디자인 기대합니다. 책 나오면 PDF로도 보내줄 생각입니다.”, “사진 포토샵 좀 해주세요. 기미와 주근깨도 없애주세요.”, “처음엔 4페이지 기획했는데, 글이 많으면 5페이지도 가능합니다”, “밑에 프로필은 예쁜 색깔 있는 박스로 채워주시고, 부제 임팩트 부탁합니다” 등 다양한 메시지를 적극 적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디자이너는 해당 기자의 꼭지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세심한 신경을 쓸 수 있다. 어떻게 취재했고, 그 기자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도 그 기사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인물을 섭외했고, 어렵게 취재하고, 글을 썼는지 안다.

 

더러 다른 원고를 마감하더라도 한두 꼭지는 이미지나 원고를 추가 보충하느라 하루 이틀 늦을 수 있다. 편집장 재가를 얻었다면 디자이너에게 다시 한 번 알려주자. 그래야 디자이너도 디자인을 우선해야 할 꼭지를 구분하고 진행할 수 있다. 늦는 꼭지는 따로 체크해 나중에 작업할 수 있도록 계획표에서 목록을 구분해주면 작업에 용이하다.

 

 

교정지도 프로답게 체크하자. 낙서가 돼선 안 된다

 

기자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교정지 체크하는 부분이다. 교정지는 편집국의 얼굴이다. 누구나 알아 볼 수 있도록 교정부호를 잘 써가며 오탈자 및 윤문을 체크해야 한다.

 

교정부호가 이웃한 글자에 걸쳐 있어도 안 되며 수정한 글자를 채차 확인해야 알아볼 수 있는 필체는 지양해야 옳다. 편집장이 교정지를 최종확인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를 보고 수정하는 디자이너에게는 교정지도 뚫어지게 한참 바라봐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해당 기자에게 다시 물어봐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발생할 수 있다. 다른 것이 배려가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업무를 좀더 디테일하고 세심히 진행하는 것도 상대를 위한 배려가 될 수 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1교 때 수정한 글자가 2교 때 수정되지 않았다고 신경질 적으로 빨간펜으로 쫙쫙 긋지 말자. 펜의 눌림과 글자의 흘림으로 디자이너는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자신에게 불만이 있음을. 차라리 알아볼 수 있게 잘 수정한 후 형광펜으로 따로 체크하면 좋다. 교정도 프로처럼 멋지게 표시 하자. 절대 낙서가 돼서는 안 된다.

 

밤새서 작업하는 디자이너와 식사라도 함께 하며 작업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 그러다보면 또 다른 아이디어나 이해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독자를 위한 훌륭한 매체는 이렇듯 복잡한 이해관계와 과정에 의해 탄생한다. 누구 한 사람이 잘 한다고, 편집장이 능력이 출중하다고, 디자이너가 실력만 좋다고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직력이 발휘되는 순간, 매체는 독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근간이 되고, 독자가 찾는 매체가 될 수 있다. 내부고객에게 잘 해야, 외부고객에게도 잘 할 수 있다. 이건 내가 10년 넘게 기자생활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다. 디자이너와 기자는 한 배를 탔다. 이점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