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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침의 해우소

[No.24] 임진왜란에서 일본군대가 스님들을 대동한 이유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과 일전을 앞둔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 왼쪽 두 번째가 종군승 겐소.(KBS 2TV '징비록' 캡처화면)

 

 

신립 장군(가운데)이 고니시 유키나가와의 일전에 앞서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KBS 2TV '징비록' 캡처화면)

 

KBS 2TV에서 방영중인 '징비록'이 한참 인기몰이중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는데 어디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권력욕과 보신주의는 늘상 존재한다. 물론 자신의 안위만을 우선하는 어리석은 왕도 늘 자리한다. 애꿎은 백성들만 죽어난다. 정세에 어두운 관료들과 왕이 문제다.

 

이번 15화에서는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과 제1진을 지휘하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충주 탄금대에서 만났다. 이 전투에 대해 특히 말이 많은 듯 하다. 왜 하필 달천과 남한강을 뒤로 한 탄금대였는가, 왜 조령이 아니었는가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어느 사이트에서는 기마전을 위해 탄금대를 선택했다는 얘기와 또 다른 곳에서는 작전상 충주를 막지 못하면 곧장 한양이기 때문에 이를 저지해야 했기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설이 분분하다. 이후 모두가 알고 있듯이 신립은 탄금대가 당시 습지였던 터에 기마전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숨을 거둔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피해도 커 당시 병력의 절반 가량인 8,000명이 사상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다보면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나온다. 조선군대와 달리 일본군대는 종군승이 있다는 사실이다. 위 첫 화면에서도 볼 수 있듯 고니시 유키나가 옆에 겐소가 있다. 늘 이것이 궁금했었는데 마침 집에 고이 모셔두었던 김성한 작가의 <7년 전쟁>(산천재) 2권에서 그 이유가 나왔다. 이 책은 상당부분 역사적 사료를 기반으로 쓰여졌고, 첫 출간했을 당시(1980년대였는지 기억이 잘 안남) 제목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임진왜란'으로 변경됐다고 알고 있다. 그러다 다시 복간하면서 원제인 '7년 전쟁'으로 재탄생했다.

 

종군승 제도가 적힌 부분은 다음과 같다.(p.201) 임진왜란 발발 직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시다 미쓰나리와의 대화 중 일부다.

 

"그 뿐이 아닙니다.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죽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장례를 치를 때 경을 욀 스님이 있어야 합니다."

"......"

"또 있습니다. 스님들은 대개 의술에 능합니다. 부상한 자들을 고치자면 스님들이 가야 합니다."

"알아들었다. 스님들도 종군하라고 해라."

이리하여 종군승 제도가 생겼는데 고니시 유키나가와 그 휘하의 소 요시토시는 누구보다도 많은 스님을 거니리고 있었다. 전에 사신으로 조선에 다녀온 덴케이와 겐소, 산겐, 그리고 소이쓰.

 

이제 궁금증이 풀렸다. 의술과 죽은 자들에 대한 경을 외기 위해 종군승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징비록, 그리고 임진왜란, 참으로 많은 것을 이 시대에도 일깨워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