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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침의 해우소

[No.26] 저녁 식사모임의 딜레마

 

서울의 어느 레스토랑에 모처럼 동창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모인 자리라 이런 저런 안부도 묻고 할 얘기가 많다. 어느덧 식사주문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동창들은 모두 메뉴판으로 보며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 저녁 식대는 계산서에 나온 총액을 시람 머릿수로 나눠 분담하기로 했다. 이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으리라.

 

"무엇을 먹을가? 내가 굳이 싼 것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모두 똑같이 돈을 걷을 텐데 말이지."

 

이 안에도 딜레마가 숨어 있다. 다른 친구들이 싼 것을 시킨다면, 나는 비싸고 맛있는 것을 주문해 그 비용을 상대방과 함께 부담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가 비싼 음식을 주문하면, 굳이 나도 싼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에 그 자리에 모인 모두, 그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음식을 주문했다.

 

이렇게 상황을 극도로 몰고가보면,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것을 시키고, 결국 그 모두는 지갑들 톡톡 털어버린 후 다시는 동창회에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버먼(Hubeman)과 글랜스(Glance)가 주장한 저녁식사 모임의 딜레마(Dinner's problem)'이다. 한 마디로 서로의 이해와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모두 똑같이 파멸된다는 의미다. 이 이론은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이 1968년 <사이언스>지에 공개했던 '공유지의 비극'과도 유사하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하나가 결국 모두에게 초래되는 비극이 된다.

 

죄수의 딜레마 역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경기자가 '협조' 전략을 펴는 것이 사회적으로 최적이라고 할 때, 모두에게 가장 좋은 상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이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다. 목초 공유지를 제대로 유지해야 모두에게 이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절체할 줄도 알아야 하고, 배신보다 협조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협업할 수 있는 부분을 협업하는 것이 각자의 각개전투보다 훨씬 더 이득이라는 점이다. 인류는 종종 이러한 보편타당한 가치를 망각한채 본인만을 위한 선택을 지향하다 결국 파멸로 이끄는 경우를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