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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_잡지기자 클리닉

[에디터 클리닉] "경찰들 큰일났어..." "그러게요... " 때론 능청스런 연기가 특종을 끌어낸다

글을 올리기 전에 먼저 5공 말기에 숨 가빴던 정국변화의 흐름 속에 안타깝게 희생되신 박종철 님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이런 억울한 고문치사 사건과 축소조작 은폐 등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고 진실과 청렴이 외면 받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봅니다.

 

경찰들 큰일났어.”

 

기자는 동물과 같은 촉이 중요하다. 이리저리 많은 사람을 만나고 현장 취재에 나서다보면, 이러한 촉이 특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나도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하던 중에 일부러 얘기 하나를 넘겨짚고 더 많은 얘기를 끌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정보는 추후에 보강해서 하나의 기사로 작성되기도 한다. 그런 촉을 제대로 발동시키려면, 상대의 한 마디 한 마디를 허투루 듣지 말고, 하나의 가공되지 않은 정보의 원석으로 다가서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예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한국을 뒤흔든 특종>(도서출판 공간)이라는 책을 주목했다. 이 책은 1980년부터 1993년까지 급변하고 있는 국내 상황 속에서 각 매체의 기자들이 특종을 하게 된 연유와 당시 상황에 대해 비교적 세세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한 마디로 에피소드와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114,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 군을 불법 체포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치니 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로 더 잘 알려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최초로 기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진 계기도 바로 한 기자의 본능적인 후각 때문이었다. 당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최초 보도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는 사건이 일어난 하루 뒤인 115, 여느 때처럼 법조를 출입하고 있었다. 이날도 오전 체크를 위해 검찰 간부들의 방을 돌고 있었다. 그때 막 신 기자와 찻잔을 기울이던 간부 A씨가 한 마디 했다.

 

경찰들 큰일났어.”

 

본능적으로 뭔가 사고가 있다고 직감한 신 기자는 섣불리 덤벼들지 않고, 담담하게 그 말을 되받았다.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 경찰이 너무 기세등등했어요.”

 

그는 사고가 틀림없다는 판단 하에 아무 내용도 모른 체 거들고 나선 것이다. 이 예상은 적중했고, 검찰 간부 A씨는 이어,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라는 말에 신 기자는 또,

 

아침에 들으니 그렇다고 하데요.”

 

라고 되받았다. 이 말을 들은 A씨는,

 

시끄럽게 생겼어. 어떻게 조사를 했길래 사람이 죽는 거야. 더구나 남영동에서...”

 

결국 희미하게나마 사건의 윤곽을 잡은 신 기자는 이후 그 방을 나와 데스크에 1차 보고를 하고 결국 사망한 박종철 군(당시 21)의 신상을 파악했다. 이후 대검의 검찰 간부 관계자들을 몰아쳐 마침내 사건의 모든 정황을 파악, <중앙일보> 사회면 2단 기사로 게재됐다.

 

당시 사건을 최초 보도한 <중앙일보>, 1987년 1월 15일자 기자(이미지 출처 : 민족신문)

 

자칫 묻히거나 혹은 뒤늦게 사태가 다른 사건과 얽혀 본질이 흐려지기 전에 한 기자의 기지에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점은 높게 평가해야 할 일이다. 특종의 시작은 멀리 있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것, 별 거 아닌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 첫 걸음에서 사회의 변화도 시작된다고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