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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_잡지기자 클리닉

[잡지기자 클리닉] 어렵게 취재한 티를 팍팍내라

쫀득쫀득한 기자, 맛깔나는 기사, 양념 팍팍 묻힌 기사

여기 두 개의 원고가 있다. 하나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메시지를 정리하는 것(A기자), 다른 하나는 추운 데도 직접 아날로그 제품 사진을 찍어가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에 선 현대인의 자화상을 재조명하는 기사(B기자)였다.

 

표면적으로는 두 원고 모두 크게 문제는 없었다. 교정교열 부분은 어차피 교정지를 통해 잡아내면 그만이다. 문제는 쫄깃한, 맛깔나는, 현장에서 바로 갓구운 빵같은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 마디로 공장에서 금방 찍어낸, 기존 원고와 큰 차이없는, 늘 똑같은 모양에 똑 같은 맛의 통조림 같은 기사가 문제였다. 같은 값이면 디테일에서 판가름이 난다.

 

독자는 치열한 승부를 자아내는 느낌의 기사를 좋아한다. 그저 그런 내용풀이식의 기사가 아닌, 취재원과 기자 간 어떤 기싸움이 있었는지 궁금해 한다. 분위기는 어땠고, 어떤 인삿말을 했으며, 인터뷰가 끝나고 어떻게 해어졌는지. 하물며 어디에서 인터뷰 했는지도 궁금해 하는 것이 독자다. 영화를 봐도, 뮤직비디오를 찍어도,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봐도 뒷이야기는 늘 독자의 관심대상이다.

 

바로 현장감이다. 어떻게 섭외했는지. 어렵게 자리했다면 그것마저도 독자에겐 충분히 기삿감이 된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이 바로 현장감, 생동감, 형상화다. 즉, 기사를 통해서 어렵게 취재한 티를 팍팍 내라는 것이다. TV 시리즈물일 경우 단순히 탈고하는 시점으로 마감할 것이 아니라, 마지막 교정보는 순간까지도 수정의 여지는 남아있다. 원고마감 후 교정 1, 2교 보는 시간까지 약 일주일의 시간이 더 있다. 그 사이에 한 번 더 방송되는 것을 보고 충분히 원고에 첨삭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독자를 기사 속으로 초대한다는 생각 가져라
A기자에게 스케치를 지시한 TV 프로그램을 나 역시 보고 있었다. 노트북으로 내려 받아 MP4로 변환한 후 아이폰에 옮겨 담았다. 좋은 자막이나 장면이 나오면 잠깐 정지를 터치한 후 화면을 캡처했다. 교정볼 때 그 기자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원고는 마지막까지 수정의 여지를 남겨 놓는 게 좋아. 마감했다고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야.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아. 마지막까지 원고에 아쉬움을 두지 않도록 해. 자다가도 번뜻 생각이 떠오르면 출근하자마자 고치란 말야. 기자들 보면 꼭 책 나오고 나서 후회하더라. 후회할짓을 왜 해? 이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쓰라고."

 

그러면서 내가 직접 캡처한 마지막 방송분을 보여줬다. 피날레를 장식하며 나오는 아련한 그 자막. 그러고나서 A기자에게 숙제를 남겼다. 결국 본인이 프로의식과 열정을 갖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원고도 마찬가지였다. 특집 때문에 추운 겨울날 카메라를 짊어지고 B기자는 혼자 재래시장을 누볐다. 취재다녀온 날 볼이 유난히 빨갛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얼마나 추웠는지 한동안 사무실에서 손을 녹이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고생해놓고 왜 사진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걸까. 본문은 더 아쉬웠다. 나 같으면 기사내용에 이러이러한 이유로 카메라를 짊어지고 어디를 찾았다, 그 주인은 내게 "아직도 여기 찾는 사람이 있어 나 조차도 신기하다"고 했다, 마치 그곳은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 아닌 공존하는 유일무이 공간이었다,고 추가했을 것이다. 헌데 이런 내용은 전부 빠져있고, 설명조의 기사만 잔뜩 나열한 상태이니 독자 누가 그 기자의 열의를 인정해 줄까? 아니 알아주기는 할까?

 

"생각해봐. B기자. 아까 A기자에게도 말했지만, 이렇게 마감하면 누가 B기자 메시지를 잘 받아줄까? 사진도 봐봐. 그 추운날 힘들께 찍어 놓고서는 사진을 본인이 찍은 건지, 인터넷에서 찾은 건지 나와있지 않아. 이럴 바에 뭐하러 생고생해서 사진찍어?. 독자는 오히려 별 것 아닌 것 같은 데 더 재미를 느끼는 편이다. 그건 B기자만이 전달할 수 있고. 나중에 이것이 전부 포트폴리오가 되는 건데 신경을 더 써야하지 않겠어? 같은 값이면 좀 더 고생한 티를 팍팍 내봐. 현장의 목소리, 본인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냄새와 목소리를 담으라고."

 

그제서야 B기자는 "저 바이라인에 사진 기명을 추가할래요."하고 말했다. 너무 겸손한 건지, 아예 모르는 건지 당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잡지를 보며 아무 의미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배울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아무리 대중적이지 않은 잡지라도 나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 잡지기자가 아무 것도 몰라서, 그걸 못 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 그 잡지는 잡지대로의 색깔이 녹아있다. 어느 잡지든 분명 배울 것은 존재한다. 기자는 어떤 경우에도 독자를 기사 속으로 초대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어제도 그 패턴, 오늘도 그 패턴, 내일도 그 패턴?

원고도 진화한다. 중제 스타일을 한 번 바꿨던 것이 기폭제가 돼 박스기사를 단다. 나아가 박스기사에 옅게 색을 넣을 줄 알고, 리드문에서 취재원과 줄다리기한 흔적을 뱉어낸다. 본문에서 중요한 문구는 발문으로 뺄 줄도 알게 된다. 기존에 시도하지 않었던, 본문의 중요한 구절은 따로 볼드처리해 가독성을 높인다. 이런 식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예전 '조선일보 토일섹션의 Why'에서 보도했던 강호동 기사를 기억해 냈다. 강호동과 최보식 기자 간 실랄한 현장감이 물쓴 느껴진 점, 기사를 문답과 설명을 함께 혼합한 점, 인기 연예인이 얼마나 섭외가 어려운지 리드문부터 팍팍 티를 낸 점이 최고였다. 내가 처음 이런 인터뷰 글쓰기 방식을 시도하고자 시도한 기사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방송사 간부 후배에게 '압력'을 넣고, 그 후배는 강호동에게 빌고 빌어, 넉 달 만에 성사된 인터뷰였다. 그러자 강호동은 "우하하하, 선생님"이라며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요즘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보다 더 어려운 게 스타 연예인이라고 한다. 그를 일식집에서 만났을 때 이점부터 따졌다.'

 

'찻잔을 꿀꺽 비운 그는 슬그머니 방송 진행자로 돌아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중략)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대답을 하세요. 답을 해야 인터뷰가 진행됩니다"라고 덤볐다. 결국 "힘들어 죽겠다"고 하자, 그는 "봐요, 선생님도 그렇잖아요"라며 깔깔거렸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문도 아닐 뿐더러, 문답과 기자의 설명기사를 중간중간 에피소드처럼 넣어 장면을 형상화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이것을 본 떠 흉내내 기사쓸 생각을 하니 취재원도 거물급으로 섭외하고 싶었다. 그렇게 섭외한 취재원이 바로 '중앙일보 고문이자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있는 이어령 선생님이었다. 그랬더니 자동적으로 페이지도 늘어나는 즐거운 참사(?)도 있었다.

 

어렵게 취재한 티를 내라는 말은 글의 군더더기를 쓰라는 말이 아니다. 기사에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라는 것이다. 취재원이 했던 말을 위주로 습관처럼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살리라는 것이다. 잡지기자는 그런 것이 매력이다.


by 허니문 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