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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Storytelling

<잡지기자 클리닉> 프롤로그

prologue


1.


어쩌다보니 인턴기자나 신입기자가 입사하면 기자관련 업무 교육은 늘 내 몫이었다. 자리 앉는 월초부터 마감이 끝나고 책이 입고되는 월말까지 난 매일, 아니 매 시간 잠자리의 눈처럼 눈깔을 이리저리 돌리며 기자로서 그들이 과연 적합한지 예리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건 이제 습관이 됐다.

 

 

 

 


내가 늘 새로운 기자들(경력이든 신입이든 인턴이든 상관없이)이 입사하면 하는 말이 있다. 편집국은 막내기자를 보면 안다고. 더불어 막내기자한테는 챙겨주되 절대 무조건적으로 잘해주지 말라고 한다. 뭐, 이 글을 읽는 편집장 정도 되는 분이나 수석기자는 충분히 이 말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반대로 이 책의 주 독자층인 1~2년차 기자들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말일 수 있다.


하지만 결코 한 귀로 흘려서는 안 된다. 따뜻하고 양지에서 자란 기자는 결코 바깥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잡지사도 사회생활이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다. 기자들의 세계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이 존재한다.




2.


계절만 바뀔 뿐이다. 계절을 탓할 순 없다. 나는 늘 하는 말있었다. 제일 화가 나는 경우도 매월 같은 지적을 반복할 때다.

 

 

 

 

왜 공부를 하지 않는 걸까? 원고를 제출할 때 매번 비문 때문에 혼나는 걸 알면서도 왜 수정이 되지 않는 걸까? 이상한 기호나 문법과 단어는 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지 않는 걸까? 대체 교정은 어떻게 보는 것일까? 사진은 왜 손과 발이 잘린 것을 메인 컷으로 썼을까? 제목과 캡션은 왜 이리 지리멸렬할까? 인터뷰 기사마다 왜 이렇게 차이가 없는 것일까? 대체 뭘 스크랩하는 걸까? 타 매체는 다 알고 있는 특정 기자간담회를 왜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왜 사람을 만나지 않고 검색만 해서 섭외하는 것일까? 왜 한쪽 이야기만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일까?


조직 안에서도 잔소리할 것이 많았다. 막내기자가 왜 선배들 청소할 때 자리에만 앉아있는 것일까? 선배가 빗자루를 집으면 왜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빼앗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왜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걸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왜 직접 물어보지 않는 것일까? 취재 관련한 컨퍼런스나 세미나에 왜 욕심이 없는 것일까? 선배들이 봐주는 원고수정에 의지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키우고 취재지시를 맡겨야 할까? 전문지에 입사해서 수개월이 지나도록 아직도 그 용어를 모를까? 왜 원고를 기어가는 목소리로 부탁을 할까? 왜 당당하게 취재요청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말하자면 끝이 없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신입기자를 처음부터 가르치면서 했던 10여년  간의 잔소리를 책으로 녹인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아예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편집장에게 직접 잔소리 듣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리얼하게 썼다. 출판사 편집책임자분께 이러한 사실을 전달하면서 “제 잔소리하는 듯한 글맛을 잘 살려주세요. 그래야 리얼함을 살릴 수 있습니다.”하고 따로 부탁도 드렸다.




3.


오랜 기간동안 기자채용에 있어 때로는 면접관이 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아니 믿을 수 없다는 것. 또 하나는 구인구직 사이트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영국에서 유명한 저널리즘스쿨을 졸업 후 화려한 이력으로 중무장한 이를 채용했다가 웬 비문천지 때문에 수 개월을 선배기자들이 죽다 살아난 일, 패션지 어시스턴트 출신으로 마감의 중요성과 선후배 위계질서를 그 누구보다 절실히 배웠을 그가 정작 조직에서 겉돌며 마감이고 뭐고 자기 일만 마치고 칼퇴근하는 습관 때문에 조직력이나 소통이 되지 않았던 일, 그리 잘 알려지지 않는 전문지 기자 출신이지만 수년 간 편집장이 공석인 곳에서 직접 기획과 취재와 납품까지 도맡아 진행한 경력을 높이 샀지만 정작 기사진행과 리더십, 소통, 기사 펑크 등 4개월이 지나도록 문제점이 속속 들어나 대기발령까지 사례를 보며 도저히 남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반면 특정 기자교육을 받고 인턴기자부터 단계를 밟아 입사하는 이들은 내가 체감 가능할 정도로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며 기자로서 완성도를 높여갔다. 한 예로 A인턴기자는 입사 2개월 만에 기회를 잡았다. 내부 승진건과 맞물려 취재 꼭지의 일부 변동이 생겼는데, 내가 눈여겨봐도 언 그 A인턴기자에게 어려운 꼭지(4페이지)를 배정했다. 파격이었다. 내 딴에는 한번 그 기자를 키워보려는 심산이었다.

 

 

 

 

더불어 함께 입사한  B인턴기자에게는 하드웨어 리뷰 기사와 특집을, 평소 그림에 소질을 보이던 C인턴기자에게는 웹툰을 맡겼다. 겉으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 기사를 진행하는 하루하루, 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울 땐 컴퓨터 모니터를, 퇴근 후에는 그들의 책상을 보며 일의 진행상황과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체크했다. 더불어 매일 보고하는 업무보고서를 통해 다른 기사와의 진행률도 살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다른 매체와 신문기사와 블로그를 틈틈이 공부해가며 기사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리 없이 소화했다. 비문도, 미니 인터뷰도, 전문용어도, 웹툰도 잘 소화했다. 편집장 입장에서는 이렇게 기특한 순간이 없다. 그들은 이제 1년차가 지나 2년차로 접어들었고, 지금도 각 매체의 중심으로서 잡지의 완성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심이 됐다.




4.


이러한 차이는 왜 있을 것일까.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 했지만 문제는 마인드와 그리고 그들이 첫 발을 뗏을 당시 사수와 부사수 관계, 마지막으로 현실의 안주를 꼽고 싶다.


다른 곳에서 수습을 뗐든, 경력이 있든 없든 뼈에 사무칠 정도로 자신에게 일을 가르쳐 주고 챙겨줄 선배의 중요성이다. 후배는 선배를 보며 일을 배운다. 선배는 때로는 어려운 상사이기도 하고, 밖에서는 친구이자 동료다.

 

사실 일을 하다보면 타 잡지사 수년 경력자나, 잘 배운 수 개월차 신입기자나 업무 상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슬프다 못해 서글픈일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가 있지만 그건 극히 당연한 것이고. 말할 것도 못 된다. 그들에게 기자란 직업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냥 수단이 되는 걸까. 하루하루... why? way?


때로는 직원 간에 절친한 형, 누나, 혹은 친구가 될 수 있다. 후배가 능력 있는 선배를 만난다는 건 큰 행운이다. 그건 내로라할 잡지사에 입사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다. 부가 반드시 행복의 필요조건이 아니듯, 유명한 잡지가 업무력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선배를 잘 만나고 어디서 큰 경험을 쌓고 기회를 받아들였는지가 중요하다.


마인드 역시 중요하다. 순전히 내 경험을 바탕한 것이지만 한국잡지협회 기자과정 수료자든, 기자아카데미 수료자는 일단 잡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실무적인 체계를 배운다. 중요한 건 그 교육과정을 스스로 결정해 임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능동적인 자세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기자나 할까"하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 과정에서 걸러지고, 기자란 무엇인가,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래, 내가 직접 나서보자고 결심해 행동으로 보여준 이들이다.


처음부터 빼곡한 취재일정과 강철체력을 부르는 마감, 특정 이슈의 문제의식과 그 과정에서 질문을 뽑아내는 기획력, 낯선이와의 유쾌한 대화력까지 기자로서 강심장을 이곳저곳에서 요구받는데, 이 모든 걸 수 개월 간 간접경험하고 실무에서 잠재력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들은 기회를 안다. 직업으로서 기자가 아니라, 기자로서의 자신을 대입할 줄 안다. 그 마인드 하나가 타 매체 경력기자를 따로 잡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지만, 그런 교육을 통해 입사한 기자들은 기자로서 첫 발을 떼는 마인드부터 다르다는 걸 느꼈다. 지시하거나 기사방향, 취재방식을 조언해도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5.


이 책은 잡지기자로서 기사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잡지기자에게 필요한 소양과 조직, 기획, 마감, 편집 디자이너와의 소통, 선후배 과정 등 실무에 대한 리얼한 이야기로 녹였다. 이 때문에 홍보대행사의 언론담당자나 기자를 희망하는 예비기자, 기본적인 인터뷰와 글쓰기를 희망하는 일반인 등 모두 편하게 접할 수 있다. 아니, 읽을 때는 다소 매서울라나? 실무적인 잔소리가 적나라(?)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인터뷰는 상대를 배려하기보다 편하게 해줄 뿐이야. 어렵게 찾아갔는데 전화인터뷰와 별다를 게 없다면 어떤 차이가 있지? 그래서 기사에서 티를 내란 말이야. 그게 바로 현장감, 입체화, 형상화가 필요한 거야." "지난 기사는 참고만 하되 답습은 하지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예전에도 이렇게 했는데요?'야. 예전 것 따라하라고 누가 정해놓은 거지?"하고 말이다.




6.


이 책에서는 총 일곱 가지 챕터로 구성했다.

첫 번째 <잡지기자가 되기 전 살펴야 할 사항들>에서는 잡지기자가 무엇인지, 어떻게 입사하는지, 선배기자와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를,


두 번째 <한 단계 Up! 프로패셔널한 잡지기자되기>에서는 기자가 실수했을 때 어떤 클레임이 있고 어떠한 대처가 있는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잡지사 업무의 절반인 원고청탁 기법, 그리고 칼럼쓰기의 중요성과 한참 실무로 눈코뜰새 없이 바쁠 1년차 기자에 대한 조언을 담았다.


세 번째 <기획미팅 시 챙겨야 할 것들>에서는 잡지기획이 무엇이며 왜 명확해야 하는지, 좋은 기획사례는 무엇인지, 편집회의에 임하는 자세와 한달 취재 스케줄 노하우를 담았고,


<취재부터 기사작성까지 A to Z>에서는 인터뷰 섭외가 중요한 이유와 인터뷰 준비편, 실행편, 작성편, 그리고 기사적성 시 유의할 사항을 녹였다.


<마감, 도대체 뭐길래>에서는 정말 제대로 된 마감이 뭔지 현실적인 편집국 분위기를 담았는데, 마감 일주일 전부터 챙겨야 할 것과 무시무시한 기사 펑크에 관한 부분, 편집 디자이너와 소통해야 하는 이유와 실제 교정보는 법(실제 교정 사진포함), 마감 후 따로 챙겨야 할 사항에 대해 이야기 했다.


더불어 <필력 세우기 위한 노하우>와 마지막 챕터인 <잡지사도 하나의 조직이다>에서는 소셜미디어 대두로 인한 마와리(まわり) 뛰는 법과 통하는 기사 쓰기, 기사의 현장감과 입체감의 중요성, 근태가 왜 중요한지, 조직 내 소통이 중요한 이유, 동료기자의 중요성에 대해 하나하나 애절한 마음으로 풀었다.



 

7.


추가로 ‘한국잡지기자협회’ 운영자로 있는 고진우 편집장(전 스터프 한국판 초대편집장>과 박성일 기자(매경바이어스가이드 사보팀)의 칼럼을 통해 잡지기자만의 또 다른 현실 이야기를 담았다.


더불어 <bonus track>에서는 선배들에게 조금 묻기 망설여지는(?) 질문을 담았는데, 물론 정답은 아니지만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답변을 통해 조금이나마 잡지기자로서 품을 수 있는 망막함을 없애보고자 했다. 이 책의 목차만 봐도 대략 책의 방향과 수준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8.


이 책을 펴내는 동안 저자의 신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한 매체의 편집장에서 안주하지 않고 실무적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도전을 하기로 했다. 사보편집 출판대행사에서 현장을 누비는 리얼한 기자가 된 것이다. 굳이 차이를 들자면 ‘It's for sale’과 ‘It's not for sale’ 정도랄까. 팔고 팔지 않고의 차이 말이다. 어찌됐든 난 매월 기획할 때가 되면 서초동 국립도서관이나 한국잡지종합전시관에서 사는 것은 변함없을 테니. 혹시 저자를 보고 싶으신 분은 매월 초 이리로 오시라.


또 내 개인적인 브랜드를 위해 스스로 1인 기업을 세웠다. 회사에 종속되든 아니든,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이미 사회는 퇴사와 입사, 외주와 업무지시가 크게 다르진 않다고 본다.


내가 이 곳에서 내 이름을 걸고 일하지만, 마음은 1인 기업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바로 'K2미디어 파트너즈'라는 브랜드다. 이력서 대신 <회사소개서>, 자기소개서 대신 <과제실적증명서>로 대체하는 것이다. 사보든 잡지기자든 1인 기업이든 아니든, 한 매체에서 조직을 구성하고 취재하고 납품하는 과정은 매 한가지이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본다.





9.


결론적으로 늘 후배들과 소통하면서 글 쓰는 것 외에 ‘개론서 말고 잡지기자들이 볼 만한 실무적인 책은 왜 없을까?’하고 필요성을 느꼈기에 이 책을 썼다. 다소 급한 마음에 내용이 다소 덜 정제되거나 또 매체사마다 간극의 차이를 많이 좁히기 힘들었다. 분명한 건 기자로서 가져야 하는 소명의식과 기획, 취재, 마감하는 과정은 거의 대동소이하리라 본다. 이제 나도, 후배들도 다소 잔소리 하거나, 잔소리 듣거나 하는 일이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