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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디자인하라

[인터뷰를 디자인하라] 인터뷰 시간은 짧은데 묻고 싶은 건 많을 때

 

'스티브 크로프트'라는 미국 언론인이 있습니다. 1989년부터 <60분>의 특파원으로 일해왔고, 에미상도 9회나 수상한 유능한 언론인이었습니다. 소위 학계에서 '전통적' 전문 언론인이라 부르는 에드워드 머로(CBS 방송인 겸 방송 저널리스트. 메카시즘 광기에 맞서 허위성을 밝힌 것으로 유명)와 월터 크롱카이드(CBS 뉴스진행자.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 아폴로 호 달착륙 순간 등을 신랄하게 비평) 정신을 계승해 취재방향을 직접 설정하고 원고와 인터뷰까지 도맡아 하는 책임감 있는 이였습니다. 크로프트는 또 베트남 전 당시 미 육군 종군기자였으며, 잉후에도 3년간 TV 리포터로 일했죠.


 

 

■ 빈 라덴 사살 소식 듣고 오바마 인터뷰 요청, 그러나 시간이...


<60분> 특파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 우연히 크로프트는 그러니까 2011년 5월 2일 일요일,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곧 그는 인맥을 총동원해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크로프트는 이미 대선후보이자, 현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를 열번이나 인터뷰한 경력 때문인지 인터뷰를 섭외하는 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제한적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이름처럼 방송분 60분을 확보하려면 적어도 45분 이상의 인터뷰 시간이 필요했고, 적어도 자신이 맡은 파트를 충분히 양질의 인터뷰로 메우기 위한 질문의 다양성도 요구됐던 터였습니다


결국 백악관은 크로프트에게 35분 정도만 허락합니다. 그 짧은 35분의 인터뷰 시간에 모든 것을 다루려면 매 초가 중요했습니다. 오바마와 마주한 자리에서 10분만 더 요청했지만 오바마는 아예 한술 더 뜹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은은한 미소로 이렇게 답했답니다.


"35분이면 충분하고, 대답을 짤막하게 할 테니 염려마십시오."


어쨌든 크로프트는 오바마와의 인터뷰가 결정되자 바로 약 60개의 질문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그러곤 방송팀들과 미팅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했죠. 다음은 크로프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크로프트의 타고난 재능은 바로 타이밍입니다. 12분이 한 파트인데 그 12분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그보다 잘 아는 이는 없죠. 인터뷰에서 무엇을 할지, 얼마나 길게 할지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 시간이 적다면, 처음부터 방향과 내용숙지 제대로 챙기자

 

보통 기자들, 주위에서 이런 평 받기 쉽지 않습니다. 크로프트는 인터뷰 전날 밤 9시부터 질문을 준비합니다. 그러곤 새벽 5시부터는 답변이 쓸데 없이 길어질 만한 것을 없애며 질문을 수정합니다. 아무래도 현직 대통령의 답을 중간에 끊을 수 없기에, 질문의 방향을 처음부터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했죠.


크로프트는 인터뷰하는 동안 준비한 질의서 외 즉석에서 순간 만들어내는 질문의 엄청나게 많습니다. 모든 기술을 총동원에 인터뷰 수위를 넘나들며 시청자로 하여금 방송을 보는 내내 긴장감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매력입니다.


시간은 없고, 질문은 많고, 중간에 대답을 끊을 수 없는 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객관적인 폐쇄형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대통령님, (이번 주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는데) 이번 주가 재임 기간 중 가장 만족스러운 주였습니까?" 

이 질문은 기자들의 의견보다는 사실을 유도하기 위한 전형적인 질문입니다. 하지만 크로프트는 인터뷰 문장 중간에 '만족스러운'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신중하게 골랐다고 하네요. 오바마는 곧 답변에서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이 '만족스러운'이라는 단어를 많이 구사하게 됩니다.


사실 재임 중 가장 만족스러운 주일 뿐 아니라 제가 최임한 이래 모든 미국 국민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주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략) 대량학살을 감행하고도 오랜 기간 정의의 심판을 피함으로써 수많은 희생자에게 절망감을 안겨 준 자라는 것입니다. 이번 승리는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크로프트가 짧은 폐쇄형 질문을 유지한 두 가지 이유

 

크포르트는 짧은 폐쇄형 질문을 유지함으로써 1)대통령 자신의 감정을 들어낼 수 있는 중간 길이의 대답과 2)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짧은 길이의 대답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는 또 중간 중간 짧은 침묵의 시간을 일부러 가짐으로써 인터뷰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도 했죠.

 

크로프트가 오바마에게 "작전 당시 많이 긴장됐던가?"하고 묻자 오바마는 "그렇다"고 한 마디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크로프트는 의식적으로 바로 1분 정도의 침묵을 가졌습니다. 앞서 질의가 하나 끝났다고 바로 다음 또 다른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정적이 흐르도록 함으로써 그 정적이 어떤 말보다 강렬했음으로 몸소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펜싱 경기의 찌르기와 피하기처럼 짧게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크로프트의 인터뷰를 보면 다분히 전략적입니다. 짧은 폐쇄성 답변을 유도해 질문을 최대한 담아내고, 침묵(타이밍)을 인터뷰에 계산해 넣습니다. 특히 이 침묵에 관해 잠시 떠올려보면, 빠르고 느린 타이밍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죠. 상대보다 빨라서 유리한 점이 있다면, 분명 느리거나 혹은 느린 척함으로써 적의 빠른 반응을 유도해 인터뷰의 우위를 점합니다. 오바마는 크로프트의 "사살 작전을 지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까?"하는 질문에 순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자칫 잘못 대답했다간 오바마는 대통령으로써 적절치 못한 반응에 시청자 모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오바마는 이것을 눈치채고 상대의 의도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글쎄요.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미군을 파병하거나 하는 등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저는 그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둡니다.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부분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 상황과 변수에 따른 오차를 감안한 융통성 돋보이다

 

크로프트는 이날 인터뷰는 하술의 두 고수들이 펼친 대접전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다 승리한 날이기도 하죠. 한 기자의 고심과 수십 년의 전문성이 반영된 저널리즘의 명작이자, 오바마의 심사숙고한 결단력이 동시에 잘 나타났다는 평입니다.

 

결국 전체 오바마 대통령 인터뷰 시간은 당초 35분에서 더욱 시간이 늘어나 결국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을 확보하는 데 성공합니다.

 

크로프트는 인터뷰의 수 많은 정석을 파괴하고 상황과 변수에 따른 오차를 잘 감안한 융통성이 돋보입니다. 게다가 논조의 핵심을 빗나가지 않습니다. 저명한 언론스쿨 <포인터 인스티튜트>의 앨 톰킨스는 "빈 라덴 관련 인터뷰의 모든 질문을 해부해 면밀히 연구한 후 다양한 유형의 질문과 인터뷰 방식을 조합한 기지가 돋보인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크로프트가 빈 라덴에 관한 오바마의 인터뷰 질문들을 즉석에서 압축하고 핵심을 뽑아 전개할 수 있었던 데는, 사전에 질문을 써보면서 내용을 충분히 심사숙고했기 때문입니다. 계속 인터뷰를 주도해야 하는 입장에서 시간과 내용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크로프트는 말합니다. 훌륭한 기자는 다양한 시간 범위에 익숙해야 한다고. 그가 강조하는 것은 시간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시간에 끌려다녀 내용을 왜곡보도하지 말고, 빠르고 다양한 뉴스거리가 쏟아지는 시대를 맞아 진정한 뉴스판단을 할 줄 아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가끔씩 시간이라는 변수가 중요한 정보를 싹뚝 잘라갈 때가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크로프트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기사를 반드시 끝내야 할 뿐만 아니라 완성도까지 높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변화구와 강속구를 동시에 쳐야 하는 상황인 거죠. 노련한 기자라면 완성도는 어느 정도라야 하는지, 시간은 얼마나 드는지 알고 그에 맞게 임무를 완수합니다. 인터뷰를 모니터링하고 편집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있다면, 그에 맞춰 계획해야 합니다.




*폐쇄형 질문

'예', '아니요'로 답변할 수밖에 없는 질문. 상대방의 어떤 결정이나 세부문제 처리가 

필요할 때 자주 사용. 단,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 질문이 쥐약이다.



*개방형 질문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가 들어가는 질문형태. 말 그대로 답변자에게 답변의 여지를 주는 질문방식.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상대에게 '변명의 여지'를 준다는 생각으로 질문하는 것이다. 너무 '왜'를 강조하다보면 상대가 공격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본 포스팅은 <속도의 배신>(추수밭)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