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소통'이다. 더더군다나 '독백(獨白)'도 아니다. 상대가 없는 인터뷰는 없다. 취재상대를 인터뷰 자리로 끌어내지 못하면 인터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는 인터뷰 자리를 전장터이며, 인터뷰이를 '반드시 꺾어야 할 적장(敵將)'으로 여기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사교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는 대답을 들어야 한다. 인터뷰할 때는 인터뷰이로 하여금 자신이 의도한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갖은 방법과 아이디어를 총동원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인터뷰 전에는 인터뷰이에 대한 사전조사를 통해 배경지식을 최대한 섭렵해서 인터뷰에 임해야 한다.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인물에 대해 독자가 과연 무엇을 궁금해 할지 정확히 알아내려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 때론 인터뷰어와 아슬아슬한 긴장을 타기도 한다.
인터뷰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다. 서로 어떤 목적에서 자리를 했든 간에 서로 어느 정도 인정하는, 인정할 수 있는 동기가 충만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심리야 어째됐든 기본적으로 소통에 장애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 소통의 장애가 곧 언어장애라는 점에서 볼 때, 소통의 벽을 지니고 있는 현대인은 모두 언어장애자이기도 하다. 언어장애자가 되지 않고, 소통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소통방식의 인터뷰 기법을 체득해야 한다. 그 기본뼈대가 바로 '질문'이다.
■ 좋은 질문은 좋은 답변을 끌어 낸다
우리가 실생활에 많이 접하는 고서인 논어와 성경, 도덕경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만일 우리가 기본적으로 질문이라는 형태를 띄지 않고 모두 자기의 입장만 떠들어 낸다면 우리의 생활은, 우리가 보는 책은 어떠한 모습을까. 적어도 논어와 성경, 도덕경은 지금과의 무척이나 다른 모양새일 것이다. 이 책들은 기본적으로 스승과 제자 간의 이야기를 그의 제자들이 엮은 책이다.
질문이 절묘했기에 현대까지도 그 정신과 이야기는 보배가 되어 21세기에도 반짝거리고 있는 셈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아무리 알찬 질문이 오가더라도 독자가 원하는 답변을 끌어내지 못 하거나 기사화하지 못 한다면 그 질문은 생명력을 잃은, 죽은 질문이 된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변을 끌어낸다.
위 책처럼 제자들이 모두 적극적인 질문을 통해 스승의 중요한 경험이 답변으로써 녹아내렸고, 제자들은 그들의 답변 하나하나를 모두 주워담아 후손들에게 길이 남을 명저로 탄생시킨 셈이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자동차 산업이 초기였을 때 수백 명의 기술자들은 손으로 모든 공정과정을 조립했다. 이때 당신이 이 자동차 공장을 취재한다고 하자. 보통 질문이라면 "손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차를 마들 수 있을까요?"하고 묻겠지만, 좀 더 근본이 있는 다른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자동차를 대량생산할 수 있을까요?"하고 물을 수 있다. 그 기사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건 '어떤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인 후 '메시지를 뽑아낼 질문'을 하느냐에 달렸다.
좋은 질문은 좋은 인터뷰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인터뷰어는 자신이 하는 질문으로 하여금 인터뷰어를 그 방향으로 몰아간다. 주도권은 인터뷰어가 쥐고 있다. 주도권, 즉 주제장악력을 인터뷰이에게 빼앗기지 않고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그 질문의 순도를 올려야 한다. 따분한 질문, 잠시 인터넷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는 대답, 신변잡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질문 등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모두 짜증나고 답답하게 할 뿐이다.
한 번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던 인터뷰이가 있었다. "때로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일지라도 좋은 말만, 너무 예의를 차린 질문보다는 가끔씩 좋은 질문, 나를 당황시킬 지문을 하는 기자가 반가울 때가 더 많다. 그 만큼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조사를 해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라고.
"역사 속에서 근대화의 주역이었다는 점은 평가한다. A총재는 1985년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무대가 바뀌면 배우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A총재의 무대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우리는 맹렬하게 치고 받았다. 이로 인해 차별성 있는 인터뷰가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 질문은 인터뷰이로 하여금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자칫하면 마지막 카운터 펀치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다. 만약 기자가 여기서 A총재의 지난 발언을 알지 못 했다면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그 만큼 A총재에 대한 지난 행적을 속속들이 사전에 파헤친 덕분에 타이밍에 맞춰 적절한 질문을 던졌고, 이후 두 사람은 말 그대로 '맹렬하게 치고 받으며' 다른 매체와 달리 차별성을 지닌 기사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질문은 거의 프로의 경지에 오른 기자들이 인터뷰이와 묘한 신경싸움을 하면서 툭 하고 미끼를 던지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 기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노하우가 생긴 것이 아니다. 평생을 인터뷰하면서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인터뷰이를 관찰한 결과다. 그들은 한 건의 인터뷰를 위해 인터뷰 시간의 몇 배에 달하는 시간을 투자해 그들이 밟아왔던 행적들, 발언들, 각종 기사, 블로그, 커뮤니티, 주변인의 코멘트 등을 철저히 조사한 산물이다.
웬만한 기사는 온라인으로 검색하면, 서점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때, 독자의 시선을 끄는 인터뷰 한 건, 사진 한 컷을 위해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기사를 쓰기에 편리해진 것이지, 기사를 팔기에는 더 촘촘한 그물망이 필요하다.
요즘에는 흔히 곰탕 기사가 많이 등장한다. TV를 봐도 채널을 돌리면 그 사람이고, 또 그 사람이다. 신문, 잡지매체를 봐도 표지모델은 늘 정해져 있다. 커버스토리도, 화제의 인물도, 이달의 이슈도 모든 매체가 순서를 알아서 자연스레 정한 후 파도를 탄다. 독자는 기사공해에 시달린다. 여기서 봤던 기사, 저기 또 등장한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차별화시킬까. 한 번쯤 고민해볼 문제다.
독자가 가장 흥미를 잃기 쉬운 인터뷰는 쉴새 없이 인터뷰에 등장한 인물이다. 이는 자칫 판에 박히 인터뷰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면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없고, 좋은 답변을 끌어낼 수 없다. 자칫 그런 인터뷰가 인터뷰이의 자위행위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시 이런 질문 던질 수 있는 기자가 있을까?
"당신은 식상한 배우이다. 그런 배우를 어떻게 식상하지 않게 인터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그것이 헛걸음이 됐다"고. 그러면 상대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돼서 되 묻겠지. "왜 그런가?"하고. 그러면 "정말 그걸 모르는가. 너무 많은 CF로 당신의 이미지가 변질이 됐다. 당신은 영화배우이지 CF모델이 아니지 않은가?"
결국 기사의 완성도는 질문이다. 철저하고 빈틈 없는 질문이 수준 있는 기사를 생산한다. 인터뷰어는 취재원에게 올바른 질문을 끊임 없이 할 때 가장 읽을거리 있는 기사를 생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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