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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Zine

정말 댓글 이 따위로 달래?

한국어가 세계 그 어떤 언어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반대로 배우기 힘든 언어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형용사’에 있다. ‘파랗다’의 경우 영어로 ‘Blue’, 일본어로 ‘あおい(아오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새파랗다는 어떻게 부를까. 퍼렇다. 시퍼렇다. 푸르다는….

 

우리나라처럼 풍부한 욕설은 세계 그 어느 국가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각 지방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토속적인 욕부터(구수한~),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를 반영한 은근히 노골적인,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 등 수 만 가지다. 한국어는 너무 과학적이고 체계적이기에 각 단어마다 크로스 체킹이 가능하고, 사용자에 따라 변칙적으로 운용할 수 있으며, 세대들끼리만 통할 수 있는, 마치 암호처럼 들리는 욕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욕설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포털사이트다. 우리나라 포털은 각 신문매체들이 모인 해우소 같은 역할을 하는데, 기사를 보다보면 ‘어떻게 이런 욕설을 할 수 있나’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 정도다. 기분 나빠지는 것도 나빠지는 것이지만, 한편으론 신기하기까지 하다. 어떤 학부모는 "이처럼 난무하는 욕설을 자녀들이 매일 접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라며 토로하기도 한다.

 

인터넷 댓글에 달린 욕설은 사람의 소중한 생명까지도 좌지우지 한다. 얼마 전 아까운 목숨을 버린 아나운서부터 수많은 연예인의 죽음을 봐왔지 않은가. 이영자가 지방흡입수술을 했든 말든, 그것이 10년 동안 사람을 매장시킬 일인가.

 

마침 평소 기사만 읽고, 댓글은 귀찮아서 달지 않는 성격인 내가, 지난주에 어떤 기사를 읽고 냉정하게 분석한 댓글을 짧게 남긴 적이 있었다. 그 밑에 욕설이 3개나 달렸다. 한 사람을 매도하는 욕설부터 인신공격, 하물며 가족까지 들먹였다. ‘차라리 보지 않고 말지….’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또 다른 댓글이 달렸나 하고 재차 확인하는 걸 발견했다. 심장과 손이 떨릴 정도로 기분 나빠 바로 ‘현피(온라인상에서 일어난 다툼이나 분쟁이 비화돼 분쟁의 당사자들이 현실에서 직접 만나 물리적 충돌을 벌이는 일)’ 뜨고 싶을 정도였다.

 

하여튼 가까스로 참은 것 같다. 앞으로 내 인생에 댓글 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안티의 대명사였던 문희준은 인신공격성 댓글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낸바 있다. 댄스가수에서 소위 ‘락’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참다못한 그가 이를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그는 놀랐다. 대부분 초등학생, 중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소를 취하하고 씁쓸히 웃었다.

 

우리나라 포털은 누구나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포털의 경우, 기사를 제공한 각 매체마다 댓글 허용 여부가 다르다. 기본적으로 일본에서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나,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댓글을 신뢰하지도, 읽지도 않는다. 자신의 관한 댓글은 보지 않는 게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물론 댓글 속에서도 당사자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유익한 내용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 글을 본 후 마음속에 남을 상처를 생각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

 

우리나라 포털 검색에 ‘자살’이라고 치면, 바로 자살예방협회가 뜬다. 또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도 지난 3월 제정돼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다. 하지만 이 효과는 두과 봐야 한다. 이 모든 댓글문화는 ‘원인’이 아닌 ‘결과’론 적이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오프라인)은 충분히 험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매일 키보드를 맞대며 살고 있는 온라인 공간까지 굳이 험할 필요가 있을까. 때로는 욕설 없는 젠틀한 한 마디가 소중한 생명을 건질 수 있다. ‘맑고 깨끗하고 자신 있는’ 인터넷 댓글 문화를 기대한다. 백성을 어엿비 여겨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취지에 엇박자를 내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이 나가고 나면 또 욕설이 달릴라나?

"차라리 만나서 차 한잔 합시다."

 

월간 웹 2011년 7월호 <editor's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