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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

종이책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

By NICHOLAS CARR(니콜라스 카)

종이책을 사랑하는 애서가들이여 힘을 내자. 종이책에 내려졌던 시한부 판정은 과장이 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Brain Stauffer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책을 실제로 구입한 미국인은 16%에 불과했다.

5년 전 아마존이 인기 전자책 단말기(e-reader) ‘킨들’을 처음 선보였을 때 전문가들은 이제 출판의 미래는 디지털에 달려있다고 선언했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옮겨가는 속도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른 견해를 내놨다. 그러나 음악과 사진, 지도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때가 오면 책도 디지털화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었다. 어느 저널리스트는 2015년이 되면 전통적인 개념의 종이책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몇 년 전에 예측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전자책 혁명이 시작된 지 5년 정도가 흐른 현재, 종이책에 대한 전망이 갑자기 밝아지기 시작했다. 양장본 도서의 매출이 깜짝 놀랄 만큼 증가한 데 비해 전자책 매출은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는 것. 또한 소비자들이 전자책 단말기 대신 다용도로 활용 가능한 태블릿을 선호함에 따라 전자책 단말기 판매량도 줄고 있다. 전자책은 종이책을 대체하기보다는, 궁극적으로는 전통적인 책 읽기를 보완하는 오디오북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들의 종이책 사랑은 어느 정도일까? 퓨리서치센터가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한 해 전자책을 읽은 성인은 16%에서 23%로 소폭 증가세를 보였다. 그런데 일반적인 독자들 가운데 무려 89%가 지난 12개월 동안 종이책을 최소 1권은 읽었다고 답한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전자책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고 응답한 독자는 30%에 불과했다.

 

게다가 미국출판협회는 2012년 전자책 연간 성장률이 34%로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현 수준으로서는 우려할 만큼 낮은 것은 아니지만 2008~2011년에 성장률이 세자릿수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전자책은 최초로 등장한 이래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나 이제 그 성장세가 주춤하기 시작한 것이다. IT업계의 이른바 얼리 어답터들은 소수이지만 전자책이 출시된 이후 짧은 기간 동안 발 빠르게 몰려들었다. 얼리 어답터들이 훑고 지나간 이후에 그들만큼 열정적으로 전자책을 구입하는 소비자 집단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보커 마켓 리서치(Bowker Market Research)’가 2012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자책을 실제로 구입한 사람들은 전체 미국인들 가운데 겨우 16%에 지나지 않으며 전자책 구입 의사가 없다고 답한 사람들도 무려 59%나 됐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전자책 단말기에서 태블릿으로 옮겨가는 트렌드도 전자책 매출이 감소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IHS 아이서플라이는 2012년 태블릿 판매량은 급증한 반면, 전자책 단말기 매출이 36%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아이패드와 킨들 파이어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과 동영상, 페이스북과 같은 엔터테인먼트에 비해 전자책의 매력은 빛을 잃었다. 전자책은 다 읽은 다음에 중고책으로 팔거나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는 점도 제품의 ‘인지 가치(perceived value)’를 떨어뜨리는 데 한몫 했다.

 

전자책 성장률 감소에는 이처럼 실용적인 이유들이 존재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심오한 근본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전자책의 본질을 오판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자책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판매된 전자책 중에서 소설이 눈에 띄게 많은 기현상을 보였다. 소설은 전체 전자책 매출 가운데 3분의 2 가까이나 차지했다. 전자책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스릴러와 로맨스 등 장르소설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가벼운 읽을거리가 화면으로 독서를 하는 데 적합한 것 같다. 장르소설은 전통적으로는 수퍼마켓이나 공항 등에서 팔리는 ‘매스 마켓 페이퍼백(보급판 또는 문고판으로 번역되는, 표지가 종이로 제본된 책)’으로 분류돼왔다.

 

페이퍼백은 디자인 측면에서 볼 때 오랫동안 소장하기보다는 한 번 읽고 버려질 확률이 가장 높은 책이다. 우리는 이런 책은 재빨리 읽어버린 후,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는 여운을 오래 느끼며 간직하고 싶다는 기분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우리가 이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까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 타인이 눈치 채지 못할 디지털 버전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전자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 열풍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순수문학과 비소설 문학 등 진지하고 깊이 있는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은 전자책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이들은 서가에 꽂을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진짜 책’의 묵직함과 영원함을 사랑한다.

 

전자책은 어쩌면 또다른 포맷의 하나(가벼운 일회성 페이퍼백)로 판명될지도 모를 일이다. 전자책이 등장했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종이책 구입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전자책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시 모색해야할지도 모른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전자책을 구입하는 소비자들 중 거의 90%가 여전히 종이책도 함께 구입하고 있다고 한다. 종이책과 전자책이라는 두 가지 형태는 서로 보완재로서 역할하게 될 것이다.

 

지난 500년 세월동안 끊임없이 발전해온 기술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로 탄생한, 종이책은 이번에 몰아친 ‘디지털 혁명’의 시련도 견뎌낼 것으로 보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넘어가는 책장과 단단하고 아름답게 제본된 종이책의 매력은 그렇게 쉽사리 사라질 성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 기고문을 작성한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은 우리 뇌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The Shallows: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를 집필했다.

 

 

*본 기사는 월스트리트저널(한국판)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당연히 저작권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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